[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국내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지난 1월20일. 옅은 갈색 단발머리에 단정한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언론의 카메라 앞에 처음 섰던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의 모습은 불과 두 달 만에 흰머리가 가득하고, 다크서클이 짙어진 초췌한 모습으로 변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연일 강행군을 이어온 탓에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했지만, 눈빛만은 여느 때와 같이 힘이 실려 있다. 머리 감을 시간도 아깝다며 단발머리를 숭덩 잘라낸 그의 모습은 마치 여전사를 방불케 한다.
그 덕분일까. 국내 코로나19 사태는 조금씩 진정세로 돌아서고 있다. 현재 한국의 코로나19 환자 발생 그래프는 어느 나라보다도 낮고 완만하다. 세계 각국의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런 그래프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 본부장의 이런 의연한 모습은 최근 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실신 사태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은 26일 대구시의회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긴급 생계자금 지급 문제를 두고 대구시의원과 마찰을 빚다가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권 시장이 6599억원의 코로나19 긴급생계자금을 4·15 총선 이후 지급한다고 한 것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어려운 대구시민들을 위해 당장 지급해야한다’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확진자가 가장 많은 대구시이기에 권 시장의 과도한 업무와 이에 따른 스트레스는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일 것이다. 과로로 인해 실신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상당수 국민들은 권 시장의 이번 실신 사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우선 이번 긴급생계자금은 권시장이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코로나사태로 삶이 막혀버린 대구시민들에게는 하루가 급한 생명수 같은 돈이다. 그럼에도 권시장이 지급시기를 총선 이후로 미루려고 하자, 시민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지원 긴급자금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번 지자체장 선거에서도 혼자 쓰러지며 일명 '장풍사건'의 쇼를 벌이더니 이번에 또다시 헐리우드 액션을 연출했다는 비판여론도 쇄도하고 있다.
반면, 정은경 본부장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응원의 말과 글이 쇄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근황'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물은 요즘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공무원들의 노고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밤낮이 따로없다.
해당 게시글에는 두 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새벽 1시와 새벽 5시에 각각 찍은 세종정부청사의 야경이다. 모든 청사 건물에 불이 꺼진 가운데 유독 한 건물에만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24시간 비상 근무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다. '불철주야'(不撤晝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공무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형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식약처는 시장에 마스크 부족 현상이 일어나자, 안정적인 마스크 수급을 위해 최근까지 본부는 물론,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전 인원을 동원해 총력전을 펼쳤다.
실제 얼마 전 취재 과정에서 본지와 통화한 식약처의 여러 관계자는 "식약처 전체가 지금 마스크 수급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난리가 났다"며 "부서를 가리지 않고 모두 동원돼 최선을 다하고 있다. 회의가 줄을 잇고 있는 데다 전화통에도 불이 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진단키트와 백신, 치료제 등의 개발에 나선 제약사들이 급증하면서 개발 지원, 임상시험 계획서 평가 등 관련 업무가 더욱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코로나19 사태가 이들 공무원의 노력만으로 진정되는 것은 아니다. 방역 최전선에 있는 의료인들의 구슬땀이 있고 국민과 기업들도 확진자를 더 늘리지 않기 위해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발을 맞추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국가 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큰 틀에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이들 공무원이고, 그들의 수고가 한국이 코로나19라는 블랙홀에서 탈출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흔히 공무원에 대해 '철밥통'이나 '무사안일주의' 등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 실제로도 지금 어디에선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으로 폭탄 떠넘기기를 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보건당국 공무원들의 노고에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한다. 잘해야 본전인 것이 공무원이다. 우리가 알아주지 않으면, 그들의 노력은 퇴색되고, 이는 곧 의욕 저하로 이어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했다. 2개월간 쉬지 않고 코로나19에 온몸으로 맞서고 있는 그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