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미국 연방정부가 고가 의약품 약가 인하를 위해 특허 압류라는 칼을 빼들고 있다. 이에 따라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에게 수혜가 돌아갈 지 이목이 쏠린다.
지난 7일(현지 시간) 업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고가 의약품의 약가를 인하하기 위해 ‘특허 개입권’(March-in rights)을 행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정부 지원으로 개발된 의약품의 가격이 비합리적으로 높을 경우, 해당 특허를 압류한다는 내용이다.
이날 라엘 브레이너드(Lael Brainard) 백악관 고문은 기자회견에서 “시민의 세금을 토대로 개발된 의약품이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되지 않는다면, 더 낮은 가격의 제품이 출시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허 무효화를 통해 복제약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정책을 수립하기 전, 업계 종사자와 학계 전문가들로부터 60일 간 의렴을 수렴한 뒤 이를 기반으로 이니셔티브를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특허 개입권, 美정부 최후 무기 ... 업계, 거센 반발
‘특허 개입권’(March-in rights)이란 미국 연방정부의 지원 하에 개발된 민간 기관 및 조직의 성과물에 대해 연방정부가 광범위하게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다. 이 권한은 1980년 제정된 베이-돌법(Bayh-Dole Act)에 의해 규정된다. 베이-돌법은 정부 지원을 토대로 혁신적인 발명품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수립됐다.
쉽게 말해,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은 비정부 기관 혹은 기업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성과물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고 라이선스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 ‘특허 개입권’은 이에 대해 차후 연방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부여하는 권한이다.
연방정부의 지원 하에 개발된 대표적인 제품은 미국 모더나(Moderna)의 코로나19 백신 ‘스파이크백스’(Spikevax)다. ‘스파이크백스’는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보건원(NIH)과 모더나가 공동 개발했으며, 미국 연방정부는 코로나19 백신 연구·개발비로 모더나에 14억 달러(한화로 약 1조 7000억 원)를 지원한 바 있다.
‘특허 개입권’이 규정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단 한번도 이 권한은 행사된 적이 없다. 연방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신약 개발을 위한 R&D 자금 투자 심리를 저하시켜 제약·바이오 생태계의 혁신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가파른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약가 또한 급격하게 상승하여 연방정부 입장에서는 약가 인하 정책 드라이브를 걸 수 밖에 없게 됐다.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 정책국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4200개 이상의 의약품 가격이 인상되었으며, 이중 46%는 물가 인상률보다 더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저렴한 약물 보급 국정기조도 이같은 정책 추진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8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가격이 높은 약물에 대해 본격적으로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업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감시단체 ‘연방정부 과지출에 반대하는 시민연합’은 7일 성명을 통해 “전례없는 ‘특허 개입권’ 행사는 의료 혁신성을 저하시켜 오히려 미충족 의료 수요에 허덕이는 환자들에게 피해만 안겨줄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미국 의약품 연구 및 제조업체 협회는 “연방정부가 의약품의 가격만을 근거로 특허권에 개입하는 것은 제약·바이오 생태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밀러 업체 수혜 기대감?
바이든 정부의 이같은 행보가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그간 미국의 철옹성 같은 특허 장벽은 저렴한 바이오시밀러의 미국 시장 진입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미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오리지널 제품의 특허가 만료되면 바로 그 즉시 바이오시밀러 제품들이 출시된다. 가령, 미국 애브비(Abbvie)의 ‘휴미라’(Humira, 성분명: 아달리무맙·adalimumab)의 유럽 물질 특허는 2018년 10월 16일 만료되었는데, 만료 당일 2개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바로 출시되었다.
반면, 미국 특허청의 허들은 상대적으로 낮아 특허 등록 성공율이 높다. 오리지널 보유 기업은 유사한 특허를 연속으로 출원하여 특허 장벽을 쌓아올리고, 바이오시밀러 출시가 시도되면, 특허 쪼개기를 통한 특허권 침해금지소송을 제기하여 시밀러 출시일을 지연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직권으로 특허를 무효화시키면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개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특허 개입권은 국가 지원 바이오의약품에 한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극히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직까지 어떠한 방식으로 어떤 기업 및 의약품을 향해 ‘특허 개입권’이 행사될 지 알려진 바 없다. 업계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폭넓게 쓰이는 개별 의약품에 대해서만 ‘특허 개입권’을 행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