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들이 현행 의료법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병원명을 두고 말이 많다. 복지부는 환자들의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일선 개원가는 현행 규제가 더 큰 혼란을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환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대표적 용어는 학문, 창문, 뉴방, 탐모, 측추, 형광, 모커리 등이다.
학문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항문이, 목·허리는 모커리가 된다. 은연중에 항문과 목허리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임을 내세우는 것이다.
또 측추는 척추의 변형이며, 무릅과 무룹은 무릎, 뉴방은 유방, 탐모는 탈모를 의미한다.
병원들이 이러한 병원명을 사용하는 것은 현행 의료법을 피하기 위해서다.
의료법 제42조 및 의료법시행규칙 제40조에 따르면, 특정 진료과목 또는 질환명과 비슷한 명칭을 의료기관 고유 명칭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 복지부가 전문성을 인정한 99개 전문병원은 사용이 가능하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특정 신체부위나 질환 이름을 병원 명칭에 쓰게 되면 그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올 수 있고 남용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규제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등 의료단체들도 복지부 병원명 규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특정 신체부위가 표시되면 전문의가 아닌데도 전문의로 오인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의협은 복지부에 “규제가 개혁되면 의료기관들이 실제로 해당 특정 진료과목 또는 질환명에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특정 진료과목 또는 질환명 등을 의료기관 명칭에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한 피해는 환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 심히 우려된다”고 반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는 ‘눈 가리고 아웅’식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선 의원들의 지적이다. 일선 개원의들은 “현행 규제가 오히려 환자들에게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변형된 명칭을 쓰는 서울 은평구 A 개원의는 “병원 명칭 규제가 오히려 꼼수만 불러일으켜 환자들의 혼란만 더 가중시키고 있다”며 “우리 병원 또한 ‘학문외과가 항문을 치료하는 곳이 맞느냐? 맞춤법이 틀린 것 아니냐?’라는 식의 문의 전화가 많이 온다. 매번 간호사들이 설명하는 것도 지쳐한다”고 토로했다.
소비자들 또한 “의료서비스는 일반 상품과 다른 만큼 상호명이 정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경례 한국소비자원 의료전담팀 팀장은 “의료는 몸을 맡기는 곳이므로 상호명부터 정확한 정보를 줘야 하는데 신체부위·질환명을 금지하는 것은 황당한 규제”라면서 “소비자 눈높이에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해보겠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곽순헌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교묘하게 변형된 의료기관 명칭은 편법인 데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전국 보건소가 되도록이면 변형된 명칭을 허가하지 못하게 유도하지만 위법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여서 적극적으로 단속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굳이 신체명이라든지 질환명을 금지시켜서 실제로 집행하기 어려운 규제를 계속 가져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며 “의료단체 등에 해결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해 놓은 상태인 만큼 조속한 시일 내에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겠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