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해리] 병원에는 수많은 진료과목이 있다. 내과, 외과, 피부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안과, 신경과, 신장내과, 호흡기내과, 가정의학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이비인후과, 신경외과, 안과, 성형외과 등 그 수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환자들이 진료 현장에서 병리과 의사를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직접 진료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와관련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병리과 전선영 교수는 “어떤 범죄가 발생했을 때 범죄 현장의 증거를 통해 용의자를 찾는 일을 임상에서 한다면, 수집된 증거를 분석하고 판독해 진범이 누구인지 밝히는 일은 병리과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병리학(病理學)을 뜻하는 ‘pathology’는 그리스어로 질병을 의미하는 ‘pathos’와 학문을 의미하는 ‘logos’의 합성어다. 즉 질병의 원인, 발생, 경과, 변화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병리과는 병원에서 어떤일을 하는지 병리과 전문의인 전선영 교수의 도움말로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Q. 병리과는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가?
“유방암이 의심되는 환자들은 주로 유방외과를 찾는다. 이때 유방외과는 이학적 검진, X-ray, 혹은 초음파 사진 등을 통해 여러 가지 의심이 되는 진단, 즉 의진을 하게 된다. 그러나 확진을 위해서는 조직 검사나 세침흡인 검사 등 병리학적 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병리과는 임상에서 수집한 조직이나 세포 검체를 슬라이드로 만들어 판독한 후 양성인지 악성인지 확진한다. 이후 병리과 의사가 환자 질환의 확진 정보를 유방외과 의사에게 제공하면 유방외과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수술적 치료를 하거나 혈액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등과 협의해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병리과는 환자의 조직이나 세포를 분석해 질병을 확진하고 임상에서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도록 돕는 조력자이다. 그러나 조직이나 세포 검사 이외에 동결절편 검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수술적 치료 범위나 개인맞춤치료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며 보다 능동적인 활동을 하기도 하고, 때론 여러 임상과 의사들과의 협진을 통해 환자 치료에 적극 참여하기도 한다.”
Q. 조직 검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나?
“조직 검체는 크게 치료 전 진단을 위해 진행하는 침생검(needle biopsy) 검체와 수술로 적출된 검체로 구분할 수 있지만, 대부분 동일한 과정을 통해 슬라이드로 제작돼 현미경 판독을 하게 된다. 병리과에서는 환자로부터 채취된 검체의 변성을 막기 위해 포르말린(formalin) 고정을 하고, 육안 검사로 진단에 필수적인 주요 부위를 잘라 조직 블록을 제작한다. 이후 조직 블록을 파라핀에 포매(embedding)한 후 절삭해 비염색 슬라이드를 제작하고, 대표적으로 H&E(헤마톡실린-에오신) 염색을 해 염색 슬라이드를 제작한다. 검체 채취 후 1~2일이 지나면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염색 슬라이드가 완성되고, 이후 병리과 의사는 현미경을 통해 슬라이드 위 조직의 특성을 살펴 확진할 수 있다.”
Q. 세포 검사는 무엇이고 언제 이뤄지는 건가?
“조직 검사는 체내 조직을 얻기 위해 피부 절개 등 부수적인 시술이 필요하지만, 세포 검사는 대부분 이런 절차가 필요 없다. 세포 검사는 체외로 배출되는 체액을 채취해 슬라이드에 도말(smear)하거나 아주 가느다란 침을 통해 체액을 흡인한 후 슬라이드에 도말해 염색하고 판독하는 선별 검사이다. 즉 세포 검사란 확진 전단계로, 여기에서 악성이 의심되면 추가적으로 조직 검사를 진행해 확진할 수 있다.”
Q. 동결절편 검사와 유전자 검사는 무엇인가?
“수술 검체가 악성 인지에 따라 수술 범위가 크게 달라지는데, 수술이 진행 중인 환자의 수술 치료 범위를 응급으로 결정해야 하는 경우 수술실에서 조직 검체를 보내게 된다. 이때 최대한 빨리 검사 결과를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조직 검체를 급속 냉동시켜 절삭한 후 진단을 한다. 이를 ‘동결절편 검사’라고 하는데, 검체 접수 후 진단까지 15~2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결절편 검사는 급속 냉동으로 인한 오류나 질병 부위 소실 등 위험요소가 적지 않은 검사법으로, 모든 수술에 적용되는 필수 검사는 아니다. 수술 집도의의 판단에 따라 선택적으로 진행된다.
최근에는 유전자 변이를 확인해 이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표적항암제를 적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유전자 변이 검사는 종양 절제 전이나 절제 후 항암요법을 진행할 때 유용하다. 예를 들어 유방암의 경우 HER2(Human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type2, 인간 표피 성장인자 수용체2) 유전자 증폭이 있는지 여부를 검사해 HER2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맞춤치료를 하게 된다. 병리과에서는 다양한 분자병리 검사를 통해 유전자 변이를 진단하고 임상에 정보를 제공한다.”
Q. 진단을 위해 채취한 조직도 인체유래물은행에 기증할 수 있나?
“환자의 인체유래물은행 기증 동의서가 있다면 가능하다. 진단에 필요한 필수 조직은 제외하고 일부 남은 조직을 인체유래물은행에 기증할 수 있다. 수술로 적출한 검체라 하더라도 환자의 기증 동의를 받아야만 기증할 수 있다. 기증된 유래물은 추후 유병률이 낮은 질환 치료나 유전자 연구에 제공돼 의학 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Q.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기 위해 병원을 옮길 때 환자가 꼭 챙겨야 할 병리 관련 자료는 무엇인가?
“병리 진단지와 H&E 염색 슬라이드는 반드시 필요하다. 파라핀 블록이나 면역 염색 슬라이드 등은 법적으로 대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염색 슬라이드 형태로 제공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방암의 경우 H&E 염색슬라이드 외에 함암제 선택을 위해 면역 염색슬라이드가 필요하다. 하지만 면역 염색슬라이드는 원칙적으로 대출받을 수 없고, 대신 면역 염색용 비염색슬라이드를 여러 장 제공받아야 한다. 유방암의 경우 보통 10장 정도의 비염색슬라이드가 필요하다.
참고로 슬라이드를 제작하는 도중 병변 부위가 너무 작아서 없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예외적으로 원본 슬라이드를 대여할 수 있다. 다만 대여한 슬라이드는 추후 반드시 원래 진단받았던 병원에 반환해야 한다.”
Q. 일반인들에게 병리과는 좀 낯설게 느껴진다. 환자와 병리과 의사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는 건가?
“검사 내용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여러 임상과 의사들과 환자가 함께 상의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다학제 진료라고 하는데 병리과 의사도 참여해 환자와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Q. 최근 디지털 병리(Digital Pathology)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고 들었다.
“디지털 병리란 슬라이드를 스캔해 파일 형태로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파일 형태로 판독하기도 하고 진단이 어려운 질병의 경우 다른 병리 의사에게 파일을 전송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또 환자가 전원할 때 병리 검사 파일을 방사선 사진 파일처럼 간소하게 가져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초기 단계로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지 가늠할 수는 있는 단계는 아니다. 추후 좀 더 편리하고 유용한 병리과의 모습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