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눈 감고 귀 막은’ 복지부
현실에 ‘눈 감고 귀 막은’ 복지부
  • 노영조 논설주간
  • 승인 2011.10.3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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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약품 가격을 절반 수준으로 내리는 ‘8.12 약가 인하’조치를 기어이 강행할 모양이다. 복지부는 31일 기왕의 획일적 약가 인하방안과 거의 같은 내용의 ‘약가제도 개편을 위한 세부규정’을 11월1일자로 행정예고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인하방향을 발표한 지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전광석화와 같은 행보다.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감마저 준다. 

복지부가 마련한 건강보험의약품 가격의 일괄인하 정책은 국내 제약산업이 감내할 수 없는 가혹한 방안이라며 최소한 2014년 이후 단계적으로 시행해줄 것을 지난 몇 달 동안 간청해온 제약업계의 건의는 공염불로 끝난 셈이다. 제약업계에게 이날은 유행가 가사대로 “잊을 수 없는 10월의 마지막 밤”으로 오래 기억될 것만 같다.

현행 약가제도를 합리적으로 손봐야할 데가 있다는 점은 제약업계도 인정하고 있다. 제약사들은 현행 약값을 상당수준 내린다하더라도 이를 준비하고 시스템을 정비하기 위해 아무리 짧게 잡아도 3년여의 유예 기간은 필요하다며 시행시기를 늦춰줄 것을 당국에 요청했던 것이다.

제약업계의 어려운 상황을 잘 알고 있다던  보건당국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아 결국 식언을 한 꼴이 됐다. 똑같은 결론을 내리려면 뭐하려 요란스레 제약업계와의 1박2일 토론회를 갖고 공청회를 열었는지 하는 생각이다. 해당업계 등 여론을 듣는다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면피용이었다면 참으로 유감스럽다.

의약품은 TV 등 다른 공산품과는 달리 건강보험 적용대상이어서 정부가 제약업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 공산품은 관계부처가 무리하게 가격조정을 요구하면 업계가 이를 듣지 않아도 그뿐이다.

의약품은 건강보험 체계상 전혀 그럴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런 만큼 복지부는 시행착오가 없도록 제약산업의 현황과 미래방향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좌표를 정한 뒤 약가조정을 추진했어야 하는데 이와는 반대의 길을 걸은 것이다.

보건당국자들이 실토한 대로 이번의 대폭적인 일괄약가인하는 약가제도 개편의 필요성도 고려했지만 그보다는 건보재정 악화내지 적자를 막기 위한 정책의 성격이 짙다. 정치권의 반발을 의식해 건강보험료 인상을 추진하지 못하게 되자 대타로 약값을 내렸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제약업계에 조종(弔鐘)이 울린 날

우리나라 제약산업규모는 연간 13조원 정도다. 복지부 계산에 따르더라도 이번 일괄약가인하조치로 1조7000억의 매출감소가 불가피하다. 이는 쓰나미 수준의 충격이어서 제약업계는 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

지난해 건보약가 청구액 12조8000억원에서 약가인하에 따른 매출감소분과 기등재의약품 목록재정비사업 등 기존의 인하방안 등을 감안하면 내년 매출은 10조원에 미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제약업계는 매출원가, 판매관리비를 제외하면 1조7000억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한미FTA가 체결되면 연간 1000억원 안팎의 추가매출손실이 예상되는 터다.

신약개발투자, 설비투자확대는커녕, 인력구조조정, 광고 홍보비및 연구개발비를 감축해도 영세한 제약업계가 견뎌내기 어려울 게 뻔하다. 최근 제약업계는 신약개발에 적극 나서던 참이다. 이런 때에 연구인력을 비롯한 2만여명이 제약업계를 떠나야 한다면 제약산업의 선진화는 물건너가는 꼴이 되고 만다.

R&D 투자와 신약개발 기술이 선진국 수준에 한참 떨어지므로 국내 제약산업이 체력을 키우기 위해 약가인하시기를 유예해달라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복지부의 사태인식은 안일하기 짝이 없다. 무슨 근거에서인지 약가인하로 제약업계 환경이 많이 변화될 것 같지 않고 구조조정도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보고 있으니 업계로서는 이보다 더 답답한 일이 없다. 

신규 채용을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마지못해 인정하는데, 필요인력을 새로 충원할 수 없는 산업에 미래가 있을 리 만무하다. R&D투자의 원천인 약가를 대폭 내리면서 신약개발과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삼척동자가 보아도 모순이다. 

10년을 내다보고 투자계획을 세우는 게 제약산업의 특징인데 현장의 얘기는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강행한 데 대한 책임은 훗날 누군가 반드시 져야 마땅하다.  또 다른 정책실패를  막기 위해서라도 섣부른 정책 입안자는 기록에 남겨 경계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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