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의료 살리기 어디까지 왔나?
1차 의료 살리기 어디까지 왔나?
[무한경쟁에 내몰린 의료계-④] 만성질환관리제 실패후, 사업권 동네병원에 넘겨
  • 이우진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14.12.1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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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가 너나할 것 없이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중소병원은 간단한 수술환자마저 대형병원에 빼앗기고, 대형병원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쉼 없이 덩치를 키우고 있다. 전문과목도 사라지는 추세다. 외과나 산부인과 전문의가 경영난 탓에 다른 진료과 환자를 돌보는 일이 흔하다. 대학병원 교수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익이 높은 비급여 수술을 하도록 압박받는다. 척박해진 한국의료의 현재 모습이다. 이런 왜곡된 의료시스템은 다가올 미래이기도 하다. 특정 과목에 대한 전공의 지원 기피 현상은 이런 복잡한 의료현실의 투영이다. 생존경쟁에 내몰린 의료계 현실을 6회에 걸쳐 짚어보고 대안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편집자 주>

<1> 의료계 ‘밥줄’은 비급여 … ‘전문의’ 간판은 사치
<2> 비급여도 무한경쟁 … 쁘띠성형은 미끼상품
<3> 영국 사례에 비춰본 1차 의료 해법
<4> 1차 의료살리기 어디까지 왔나?
<5> 국내 시장 포화 … 해외시장에 눈 돌릴때
<6> 연구중심병원이 살길이다


개원의들은 수가 적용에 앞서 먼저 적절한 수의 ‘동네 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에서 내과를 운영하는 A씨는 “수가가 개원의들에게 제일 큰 불만사항인 것은 맞지만, 일단은 고정 환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며 “개원의들이 적절한 수의 환자를 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A씨는 “환자들 중 세부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있다. 이런 환자는 2·3차 의료기관에 가는 것이 맞다”며 “환자가 기존에 이용하던 의료기관에 있어야 더욱 세밀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인데도 어디가 좋다면 그쪽으로, 어느 병원이 잘한다 하면 이쪽으로 가는 것은 결국 환자에게 손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동네 병원에 환자를 부르는 정책을 폈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2년 4월 환자가 동네의원에서 만성질환 관리를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만성질환관리제’를 시행했다. 환자가 특정 의원을 선택해 만성질환 진료를 받을 경우 환자와 의사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문제는 당시 복지부가 추진하던 보건소 단위의 만성질환 진료와 동시에 해당 정책을 추진해 보건소와 의원의 경쟁 구도를 불렀다는 것이다.

이는 의료계의 불만을 불렀고, 시행 1주년을 맞은 이후에도 대상기관 1만4000여 곳 중 관련 수가 청구를 30건 이상 기록한 곳은 65%에 머무르는 등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와 관련, 당시 송형곤 의협 대변인은 “모든 정책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야 하는데, 이 제도는 의료계의 목소리를 간과했다”며 “제도의 원칙은 공유하지만 현재처럼 보건소의 진료기능과 정보공유를 같이 하는 체제로는 질을 담보할 수 없어 수용할 수 없다. 기획단계부터 새 틀을 짜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 2013년 정부가 제시한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 모식도

결국 정부는 의료계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의료계에 사업 주도권을 넘겨준 것이다. 2013년 복지부는 만성질환관리제를 버리고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만성질환 관리라는 취지와 서비스 형식은 유지하되 지역 의사회가 직접 지원센터를 개소하고 사업 권한을 설정하도록 한 것이었다.

현재 시범사업 지역은 총 5곳(서울시 중랑구, 전라북도 전주시 및 무주군, 경기도 시흥시, 강원도 원주시)으로,  예산 문제로 난항을 겪은 시흥시 외에 모든 지구는 정상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의료단체 “수가·세제혜택 등 실질적 도움줘야”

정치권과 의료단체에서는 세제혜택과 수가 개선 등 큰 차원에서의 해결책을 강조하고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은 지난 8월 중소기업특별세액 감면대상에 의원급 의료기관을 다시 포함시키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이란 중소기업이 납부한 일정 비율을 과세소득과 상관없이 낮춰주는 제도다. 의료기관은 2001년 1월1일부터 의료 소기업은 10%, 수도권 밖의 의료 중기업은 5%의 세액을 감면받았는데, 2002년 법률이 개정되면서 의원급 의료기관이 해당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시 정부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고소득 전문직종으로 분류, 과세형평성 차원에서 배제해왔으나 개원가의 의료비 점유율이 2004년 35.6%에서 10년새 28.3%로 떨어지자, 개원의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다시 세액감면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어서 개원가 혜택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한개원의협의회(대개협)은 이 법안 발의 이후, 카드 수수료율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카드사에서는 카드 매출액과 결제건수, 건당 결제 금액을 기준으로 수수료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에 환자가 많은 대형병원의 수수료율은 평균 2.7%가량인 반면, 의원급은 3.3% 수수료율을 받고 있는데, 이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김일중 대개협 회장은 “병원과 의원의 결제액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개원가는 기껏해야 1500원에 불과한 진료비도 환자가 카드로 긁고 있다”며 “실질적인 혜택이 의원급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1차 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차등수가제를 폐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약분업 이후 건강보험 재정 불안으로 인해 한시적(5년간)으로 진행됐던 차등수가제가 재정 안정 이후에도 규제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사회는 지난 10월 “동네의원에만 75명이란 족쇄를 채우는 것은 불평등하고 불필요한 규제인데,  차등에 따르는 삭감 금액을 의료계에 돌려주지도 않고 있다”며 “일차의료 붕괴 위기와 경영난 등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는 비현실적인 의료수가의 인상과 각종 규제가 철폐되어야 하고 차등수가제는 가장 먼저 철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직은 비관적 … “지금이라도 1차 의료 살려야”

경기도에서 외과를 운영중인 B씨는 “정부와 의료계, 정치권의 1차 의료 살리기는 믿을 수 없다”면서도 “이렇게라도 개원가를 살리겠다고 하니 믿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솔직히 그렇게 크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의료계가 이렇게 호소를 하는데 정부가 언제 제대로 들어준 적 있습니까? 그래도 기대해봐야죠. 국회의원들도 개원가 한 번 살려보겠다 하고 협회도 나서고. 일단은 믿어봐야죠. 개원의들이 이렇게 절박하게 비급여까지 하면서 먹고 사는 상황은 안 만들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동네병원은 편의점 사장님과 다를 바 없어”

서울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하는 C씨는 이렇게 말한다.

당연지정제란

의료활동을 하고 있는 모든 병·의원들이 건강보험 적용 질환을 진료할 때 보험 기준에 따라 진료하고, 환자 및 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하도록 하는 제도.

“지금이라도 의원들의 숨통 좀 트이게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보세요. 동네 의원들, 엄밀히 따지면 다 자영업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의사라는 직업을 숭고하다 뭐다 하지만, 결국에는 동네 편의점 사장님이랑 다를 바 없어요. 그런데 당연지정제로 묶어놨으면 수가만이라도, 자기 전문분야 진료만으로도 먹고 살게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의료의 가격을 ‘숭고’라는 가치로 깎아서는 안됩니다. 지금이라도 1차 의료 좀 살려줬으면 좋겠어요. 진짜 저수가 때문에, 삭감 때문에, 의료인들에게 ‘열정페이(특정한 가치를 받기 때문에 수익이 필요없다는 뜻의 신조어)’를 주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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