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밥줄’은 비급여 … ‘전문의’ 간판은 사치
의료계 ‘밥줄’은 비급여 … ‘전문의’ 간판은 사치
[무한경쟁에 내몰린 의료계-①] 진료과목 3~4개 기본 … 돈되는 진료에 치중
  • 이우진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14.12.21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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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가 너나할 것 없이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중소병원은 간단한 수술환자마저 대형병원에 빼앗기고, 대형병원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쉼 없이 덩치를 키우고 있다. 전문과목도 사라지는 추세다. 외과나 산부인과 전문의가 경영난 탓에 다른 진료과 환자를 돌보는 일이 흔하다. 대학병원 교수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익이 높은 비급여 수술을 하도록 압박받는다. 척박해진 한국의료의 현재 모습이다. 이런 왜곡된 의료시스템은 다가올 미래이기도 하다. 특정 과목에 대한 전공의 지원 기피 현상은 이런 복잡한 의료현실의 투영이다. 생존경쟁에 내몰린 의료계 현실을 6회에 걸쳐 짚어보고 대안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편집자 주>

<1> 의료계 ‘밥줄’은 비급여 … ‘전문의’ 간판은 사치
<2> 비급여도 무한경쟁 … 쁘띠성형은 미끼상품
<3> 영국 사례에 비춰본 1차 의료 해법
<4> 1차 의료살리기 어디까지 왔나? 
<5> 국내 시장 포화 … 해외시장에 눈 돌릴때

<6> 연구중심병원이 살길이다 

 

최소 3~4개 간판 내걸어야 입에 풀칠

요즘 개원가에서 전문의 간판은 사치에 가깝다. ‘최소 3~4개의 과목은 내걸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동네병원 의사 A씨와 B씨도 그런 개원가 환경과 마주하고 있다. 30대 후반인 이들은 4년~5년 전 비슷한 시기에 대학병원을 떠나 한 사람은 서울에, 한 사람은 경기도에 각각 개원을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비급여 시술이 아니면 이제는 돈을 벌 수 없는 환경이 됐다”고 토로한다.

가정의학과를 전공한 A씨가 150㎡ 규모의 동네병원을 개원하면서 들어간 비용은 은행융자금을 포함, 총 4억2000만원. 인테리어 비용 7500만원, 내시경·PACS(의료영상정보시스템) 등 의료장비 구매비용 8000만원, 임대보증금 7500만원 등 이것 저것을 합한 것이다.

개원 후에도 돈은 꾸준히 나갔다. 간호조무사를 2명 고용하면 월 평균 400만원. 연차가 있는 간호조무사는 급료가 더 높다. 이밖에 건물임대료 350만원, 약제비 200~250만원, 대출 상환금 500만원 등 매월 의원을 운영하면서 들어가는 비용이 20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전공과목 진료수익만으로는 지출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지하철 역에서 2분 거리라는 이유로 ‘큰 맘 먹고’ 병원을 차렸지만 하루 평균 환자는 60여명에 불과했다. 환자 1인당 진료비(건보료 포함)를 1만원으로 잡으면 하루 60만원 정도를 버는 셈인데, 한달 동안 들어오는 수입은 1800만원에 불과했다. 

A씨는 결국 ‘돈이 된다는’ 비급여 시술에 손을 댔다. 비타민D부터 미백·신데렐라·아이언맨·칵테일 등의 ‘정맥주사’와 사마귀, 점, 기미 등을 제거하는 레이저 시술까지 하기 시작했다.

비급여 진료를 하면서 A씨의 수입은 늘기 시작했다. 점심 때마다 비급여 시술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도 제법 많아졌다. A씨는 요즘 점심시간도 거르면서 진료를 하고 있다.

A씨는 “자세한 수익을 말해줄 수는 없다”면서도 “비급여 시술로 버는 돈이 (전공과목) 진료 수익의 몇 배가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다른 개원의들도 다하는 것이어서 이 정도 수익이 날 줄은 몰랐다”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지만, 본과 4년에 인턴에 레지던트까지 다 하고 병원을 개업했는데 결국은 주사 몇 번에 현실과 타협하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경기도에서 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개원의 B씨도 비슷한 처지다. 역시, 전공분야보다 비급여 시술로 연명한다. B씨는 “분명히 외과를 업으로 하는데, 레이저 치료를 시작한 후부터 ‘치료를 잘한다’는 말을 듣곤 한다”며 “전공이 아닌데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레이저 시술을 하고 있으면 내가 꿈꾸어왔던 의사의 길이 이것이었나,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돈 되는 시술 강좌에 개원의 ‘와글와글’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의료현실은 학술강좌 현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얼마전 국내의 한 학회가 주최한 비만치료용 정맥주사 강좌에는 예상인원(400)보다 훨씬 많은 700여명의 개원의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참여한 개원의들의 전공과목은 신경외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등 다양했다.

행사를 주최한 이 학회 회장은 예상치 못한 개원의들의 반응에 “광고를 크게 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로 몰려들 줄은 몰랐다”며 “개원가의 슬픈 현실을 보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가정의학과 개원의는 “빚(은행융자금)을 갚으려면 진료보다는 비급여(시술)를 전문적으로 할 필요가 있겠더라. 되든 안되든 비급여가 수익이 많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우려고 왔다”고 말했다.

저수가·차등수가제·수가 삭감 … 개원의 피말리는 ‘수가 3종 세트’

개원가는 동네의원의 어려움이 정부의 저수가 정책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에서 내과를 운영중인 개원의 D씨는 “정부의 ‘수가 3종 세트’(저수가·차등수가·수가삭감)가 개원의들을 말려 죽이고 있다”며 “정부는 75명 이상의 환자를 보면 안된다고 한다. 근데 수가도 낮다. 거기에 정상적인 진료행위도 심평원에서 삭감하니 개원의들이 힘든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D씨는 “현재 차등수가제로 피해를 보는 과는 내과, 이비인후과, 소아청소년과, 정형외과, 일반과”라며 “보면 알겠지만 주변 동네 의원들 중 5가지에 속하지 않는 과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초진 수가와 재진 수가도 이해가 안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수가를 인상하고 과다한 수가 삭감을 없애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에서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하는 개원의 E씨는 “수가 삭감은 의사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꼴”이라며 “분명히 기준에 맞춰 정상적인 진료를 하는데, 이런저런 잣대를 들이대며 수가를 삭감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형병원도 무한경쟁 속에 허우적

대형병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동네병원보다 더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다보니, 의사들은 자신의 건강을 돌볼 겨를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빅5 병원을 비롯한 많은 대형병원들이 암병원과 별도의 검진센터 설립, 해외시장 진출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일부 병원은 의사들에게 1회당 수십만원의 수당을 주면서 로봇수술 등 비급여 수술을 권하고 있다. 로봇수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 수술비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른다. 건강검진 환자를 유치한 직원에게 결제금액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마일리지 보상제도를 시행하는 대형병원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노조 관계자는 “보통 환자들은 같은 병이라도 의사들이 권하는 치료방침을 따르게 된다. 의사가 로봇수술을 환자에게 권하면 수술비가 비싸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간병원은 물론, 공공병원까지 돈벌이 진료에 나서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전공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고착화 ... 미래 의료재앙 부를 것

왜곡된 의료체계는 전공의 지원자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이 고착화되면 앞으로 의료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대한병원협회가 집계한 2015년 상반기 전공의(레지던트) 모집 현황을 보면, 외과·흉부외과·비뇨기과 등 전통적 비인기과는 물론, 최근에는 내과마저 지원 기피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한내과학회는 전공의들이 과중한 업무를 줄일 수 있도록 입원전담전문의제도를 촉구하는 등 수련환경 개선에 나서기로 했지만,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는 출구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선택진료 축소 등 3대 비급여개선안, 저수가, 원격의료 등 의료계가 반대하는 각종 정부 정책이 의사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탓이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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