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액자 크기까지 복지부가 정하다니
병원 액자 크기까지 복지부가 정하다니
  • 헬스코리아뉴스
  • 승인 2012.05.17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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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와 복지부가 이렇게 엇박자를 낼 수가 없다. 복지부가 어제(16일) 모든 병·의원의 장에게 ‘환자의 권리와 의무’ 6개항을 담은 액자를 일정한 크기로 만들어 게시토록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한 것을 두고 양측이 충돌하고 있다.

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이 입법예고안에 대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환자권리·의무를 써놓은 액자를 게시하지 않을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벌칙조항에 극력 반발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의료계는 의사들에게 무과실 책임을 지운 의료분쟁조정법,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 백내장 등 7개 질환에 대한 포괄수가제 의무 적용, 진료수가 현실화 등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과태료까지 동원해 환자권리 게시를 강제하겠다고 하자 의료계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복지부 사사건건 충돌

개정안은 보건의료기본법 등 의료관련 법이 정한 ▲진료받을 권리 ▲알권리 및 자기결정권 ▲피해를 구제받을 권리 ▲비밀보장권 등 4개 권리항목과 ▲의뢰인에 대한 신뢰·존중의무 ▲부정한 방법으로 진료를 받지 않을 의무 등 2개 의무항목을 적시해 놓았다.

내용은 구구절절 다 옳은 애기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고 또 당연히 준수해야 할 사항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본적인 내용을 액자로 만들어 게시토록 법으로 강제한다는 게 어린아이 장난같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의사들도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성실하게 진료해야 한다는 개정안의 취지에는 찬성할 것이다. 다만 그 내용을 액자에 담아 게시를 강제한다는 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법하다.

그러나 아직은 입법예고 단계로 의료계의 입장을 충분히 정부에 전달할 수 있는 만큼 과격한 언행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법규를 확정하기 전에 입법(행정)예고 기간을 두는 것은 다른 의견을 두루 듣고 법 개정에 반영키 위해서다.

복지부는 의료계의 입장을 적극 반영토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최근 복지부의 일처리 방식을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전히 ‘관치‘의 사고에 젖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권위주의적 관료주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관료주의가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다.

정책수립 및 집행과정에서 대화와 설득 대신 말 안 들으면 이러저러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식의 위협적 방식을 즐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보건의료계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계층이 많은 곳이다.

‘관’이라고 해서 민간을 윽박지르며 군림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현대 행정은 정책결정 과정에서부터 이해관계자와 당사자들을 적극 참여시키는 추세다.

이번 의료법시행규칙 개정안도 그렇다. 입안할 때부터 의료계의 의견을 들었다면 불필요한 갈등을 빚을 이유가 없었다고 본다. 병원내에 걸어둘 액자 크기를 법으로 규정하는 나라는 아마도 지구상에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동키호테적 발상을 하는 부처가 어떻게 BT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앞으로 10년을 먹고살 사업을 발굴해 육성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정책결정과정부터 당사자 의견 들어야

복지부가 규제하는 데 단단히 맛을 들인 게 아니라면 병원과 의원으로 나눠 액자의 크기, 게시 장소까지 시시콜콜 규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복지부가 여북 할 일이 없으면 액자의 가로 세로가 각각 몇 cm이고 어디어디에 부착해야 한다고까지 규정했겠는가 하는 비아냥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자잘한 내용은 정부가 나서지 말고 의사단체들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방향으로 규칙을 손질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의과대학에서 의료윤리 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커리큘럼을 조정하는 등 한 차원 높은 데서 향도 역할을 해야 한다.

검찰이나 경찰은 조사를 할 때 피의자나 참고인에게 매번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미란다 원칙을 알려주지만 수사과나 형사과에 그 원칙을 써서 붙여놓지는 않는다.

복지부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규제는 최소한으로 그치고 촉진과 조장정책을 펴는 쪽으로 진로를 바꾸어야 한다. 체홉의 단편소설 ‘상자 속에 든 사나이’의 주인공 베리코프처럼 폐쇄적이고 사소한 규칙에 얽매여 변화를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책부서로서의 기능 강화가 시급한 과제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보라. 선진국들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보건의료(HT) 사업을 국가 차원의 중요 아젠다로 집중육성하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들의 전략이 지엽말단적인 일에 매달리는 복지부에 시사하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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