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가 바라본 원격의료란?
전공의가 바라본 원격의료란?
의료 최전선 전공의들, 원격의료 시동 거는 정부 비판

“시·청·타·촉 없는 진료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환자”

“비대면 진료시 오진 ··· 환자 생명은 누가 책임지나?”
  • 임도이
  • 승인 2020.05.22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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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들이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의료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들이 정부의 원격의료 추진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아무리 좋은 원격의료 장비도, 환자를 직접 진찰하는 의사의 손을 이길 수는 없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가 임시적으로 허용한 전화상담·처방이 원격의료 제도화의 시작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의료 최일선에서 일하는 전공의들 역시 ‘시·청·타·촉’ 없는 랜선 진료가 가져올 오진과 피해에 우려를 표했다. 아무리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좋은 의료기기가 나와도 아직 의사의 손과 경험이 수술 시기와 이로 인한 환자의 생명,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외과 전공의 A씨는 “CT에서 장으로 가는 혈류가 정상적이더라도, 환자의 배를 만져보았을 때 압통이 있고 반발 압통까지 심해지는 그 순간의 변화를 감지하고 수술을 결정하는 게 의사”라며 “언제 환자를 수술방에 데리고 들어가느냐가 환자가 장을 10cm를 자를지, 100cm를 자를지를 결정하고 곧 그 환자의 삶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현장에서 수련받는 전공의라면 이런 상황은 수도 없이 경험한다”며 “비대면 진료 상황에서 의사로서 배운 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원격의료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B씨 역시 환자 진료에 있어 의사의 시진, 청진, 타진, 촉진, 일명 ‘시·청·타·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B 전공의는 “전공의 수련 중 첫 번째 깨달음은 환자는 결코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환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중에 의학적인 ‘key point’가 분명히 존재하고 이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다. 시·청·타·촉은 진료의 기본이고 환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하여 포기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오진과 더불어 부정적인 결과에 따른 책임소재도 문제가 될 수 있다.

B 전공의는 “원격, 비대면 진료로 제한된 환경에서 제한된 정보로 진료하게 되면, 이에 따른 책임은 대면 진료 시와 같을 수 없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뿐 아니라 그에 따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한 토의가 필요하다”라며 “아무런 준비 없는 정책에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이고, 책임을 떠나 오진으로 인해 환자가 입는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와관련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2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원하는 것이 인술이냐? 상술이냐?”라고 따져 물었다.

대전협은 성명에서 “고육지책으로 시행했던 한시적인 형태의 원격의료를 보고서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전 정부에서도 지겹게 들어왔던 단어들을 갖다 붙이며 원격의료를 정당화했다”며 “우리에게 인술의 가치는 더는 당연한 일상의 이치가 아니라 정부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고 성토했다.

박지현 대전협 회장은 “가슴이 답답한 증상 하나에도 역류성 식도염과 만성폐쇄성폐질환 그리고 심근경색까지 감별해내는 것이 의사와 환자의 진찰 과정”이라며 “진찰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고 원격의료를 시행했을 때 환자 안전에 문제가 되는 상황을 책임질 수 있는가? 합병증이나 사고 발생 시 그 몫은 오롯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의사에게 돌아간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어떤 의사가 생명을 다루는 과를 선택하여, 환자를 보겠다고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아래는 대한전공의협의회 성명서 전문이다.

정부가 원하는 것은 인술인가 상술인가?

우리는 긴 학업과 수련 기간 동안 의료의 기본은 환자를 직접 보고, 소리를 듣고, 신체를 진찰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최근 정부의 원격의료 확대 사업은 우리가 배운 의학의 기초이자 치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원격의료 확대 사업을 통해 정부가 기대하는 것이 정말 환자들을 위한 ‘인술’인지 미지의 산업기반을 위한 ‘상술’인지 묻는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수많은 국민은 자택, 시설, 병원에 격리되어 힘든 싸움을 하였다. 수많은 의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병동으로 응급실로 길거리로 나섰다. 그 가운데 더는 안전한 장소에서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환자 수가 많아지자 정부는 환자 일부에 한해 원격의료 시행을 허가하는 유권해석을 내렸으나 이는 의료계와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의료진들은 원격의료가 위험한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초유의 재난으로부터 한 명의 국민을, 나아가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참고 참았다.

고육지책으로 시행했던 한시적인 형태의 원격의료를 보고서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전 정부에서도 지겹게 들어왔던 단어들을 갖다 붙이며 원격의료를 정당화하였다. 현장에서 땀 흘리며 누구보다 국민을 위해 일한 의료진의 노력으로 정부의 모순을 급급히 감추며 마치 국민을 위한 양 원격의료를 만병통치약으로 둔갑시켰다. 도서벽지의 환자들을 위한 ‘선한’ 의료인지 ‘선도형 경제’를 이끌 산업인지 스스로 헷갈리는 설명을 쏟아내는 동안 우리에게 인술의 가치는 더는 당연한 일상의 이치가 아니라 정부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제한된 형태의 원격의료를 시행하겠다는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더라도 우리는 이 말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의료계와의 합의와 충분한 숙의 없이 시작하는 원격의료라면 다음 빗장을 여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 원격의료를 도입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이들만 살아남을 것이며 원격의료의 부작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여력조차 없는 의원들은 문을 닫을 것이다. 원격의료는 ‘선한 의료’, ‘선도형 경제’도 아닌 단순 전화 진료이며, 초대형 병원과 일부 기업의 의료 독점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재난의 징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전공의가 밤잠을 줄여가며 환자 곁에서 아픈 곳을 한 번 더 보고, 소리를 듣고, 두드리고 만지는 이유는 이것의 모든 치료의 시작이자 기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숫자로 환산된 수많은 검사결과로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다. 의학은 수치를 해석하는 일을 넘어 사람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원격의료를 주장하는 이들의 얄팍한 단어 놀음과 상술에 넘어갈 시간과 여유가 없다. 그러니 다시 한번 분명히 묻는다. 정부가 주장하는 원격의료가 인술인가, 상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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