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소년의 ‘제약강국’ 도전기 ... 꿈을 이루다
자전거 소년의 ‘제약강국’ 도전기 ... 꿈을 이루다
  • 이순호 기자
  • 승인 2019.09.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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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근당 창업주 고촌 이종근 회장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종근당 창업주 고촌(高村) 이종근 회장

[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기자] 딱 100년 전이다. 제약업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 태어난 것이. 1919년 9월 9일 충남 당진 어느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이 소년은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되겠다”며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통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업 전선에 뛰어든다.

어린 나이에 사회에 몸을 던진 그에게 친척이 운영하던 약방에서 처음 타본 자전거는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소년은 청년이 돼서도 물건을 팔러 갈 때면 늘 자전거를 애용했다. 가깝게는 서울, 멀게는 대전까지 페달을 밟았다.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은 페달질은 운명처럼 다가온 제약인생의 시작이었다. 

종근당 창업주인 고촌(高村) 이종근 회장은 이렇게 자신의 꿈을 조금씩 조금씩 현실로 가져왔다.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한 ‘약업인생’

이종근 회장이 본격적으로 약업에 뛰어든 건 스무 살 무렵이던 1938년. 친척의 약방을 그만두고 정미소에 다니던 그는 “힘든 일은 그만하고 약과 관련된 일을 해보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한 약방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직접 매약 행상에 나섰다.

그 때도 주 이동 수단은 친척의 약방에서 일할 때 배운 자전거였다. 그는 다른 매약 행상인들보다 더 멀리, 더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짧게는 영등포에서 수원까지, 길게는 대전이나 개성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엉덩이와 손바닥에는 두터운 굳은살이 배겼다. 

그리고 스물세 살이 됐을 때. 이제는 스스로 개척하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1941년. 고촌 선생은 가진 돈 15원에 일수 50원을 빌려 서울 마포구 아현동 282-3번지에 월세 3원의 4평짜리 약방을 차리고 ‘궁본약방’(宮本藥房)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1941년 이종근 회장이 창업한 ‘궁본약방’
1941년 이종근 회장이 창업한 ‘궁본약방’

약방을 연 이후에도 그가 카운터에 앉아 주판알만 튕길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약방은 아버지에게 맡긴 채 조선매약주식회사, 궁부약방(지금의 동아제약 전신), 아현약방 등에서 외상으로 구입한 약을 자전거에 싣고 외판에 나서기 일쑤였다.

하지만 생애 첫 자영업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했다. 진주만을 공격한 일본이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소규모 업자들을 통폐합한 ‘기업정비령’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조선인이 운영하던 대부분의 상가와 기업은 사실상 일본인 업자에게 넘어갔다.

그가 다시 약방을 연 것은 해방후 1년이 지난 1946년. 아현동 85번지에 12평짜리 1층 가게를 얻은 그는 자신의 이름을 써서 ‘종근당약국’이라고 이름 지었다. 지금은 잘 알려진 ‘종근당’이라는 기업 명칭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순간이다.

 

속아서 판 가짜약, 제약업 뛰어든 계기

두 번째 문을 연 ‘종근당약국’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고촌은 매일같이 쉬지 않고 매약 외판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지독한 인플레이션으로 약가가 두 차례나 인상됐다. 조금이라도 약을 싸게 들여오는 판매상이 유리해진 상황. 이 때 인상되지 않는 가격으로 활명수를 공급하겠다는 사람이 찾아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싼 값에 산 활명수를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 공급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짜 약이었다. 그것도 경찰에 불려가서야 알게 됐다. 활명수 제조사인 동화약품이 종근당약국을 고발한 것이었다. 고촌은 믿을 수 있는 약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가게 2층에 있던 세탁소가 빠지자 그곳에 대광화학연구소라는 제약사를 설립했다. 바셀린에 다이아진 분말을 혼합해 튜브에 넣은 다이아졸 연고가 그가 만든 첫 제품이다. 그 때만 해도 다이아진은 페니실린 이전에 가장 널리 쓰인 항생제였다.

이후 종업원은 34명으로 늘어났다. 공장이 좁아져 종근당약국은 충정로로 옮기고 가게 1, 2층을 모두 공장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오래 가진 못했다. 몇 달 뒤 한국 전쟁이 발발한 탓이다. 받지 못한 의약품 판매대금 2000만원과 종근당약국을 모두 포기한 채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부산 피난 시절에도 제약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로 올라가 공장에 있던 바셀린 세 드럼을 가지고 내려와 다이아졸 연고를 만들기 시작, 두 달 만에 1750만원어치를 팔았다. 이를 기반으로 임시 공장을 짓고 공급량을 늘려갔다. 덕분에 1953년에는 22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

 

충정로 복귀 후 종근당 설립

서울로 돌아온 그는 1954년 1월 종근당제약사를 등기했다. 1940년 매약 청매상 허가를 받은 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법인 자격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시장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약가가 변할 정도로 가격 질서가 문란했다. 제약업자와 도소매업자가 무질서하게 생겨나면서 제약시장이 난립된 것이다. 그러던 중 1950년대 후반 항생제 생산에 뛰어들면서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된다.

1958년 생산 공장을 충정로 5층 신축 건물로 이전한 뒤 서독 테프리카사에서 항생물질을 자동으로 소분하는 기계를 수입하고 국내에서 제습기 등을 제작했다. 이후 덴마크 레오사로부터 항생제 성분인 클로람페니콜을 수입해 헤로세친 캅셀과 칼시펜 정을 생산했다.

종근당은 항생제 생산을 계기로 기술적으로 큰 진전을 이룬 것은 물론, 생산 부문도 새롭게 정비했다. 레오사와 교류로 선진 경영기법도 도입할 수 있었다. 아직 중소 제약사였던 종근당은 상위 제약사들과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1960년에는 십자 마크였던 기업 심벌도 종으로 교체했다. 엄숙하고 진지한 종의 이미지가 인류 건강을 위해 묵묵히 전진하는 종근당의 기업 이미지와 완벽하게 부합했다. 이듬해에는 영상 광고에 ‘땡-’ 하는 종소리를 가미했다. 이후 50년 동안 종과 종소리는 종근당을 상징하는 심벌 마크로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1960년대 경제 불황 .. 국내 최초 원료의약품 합성 성공

고촌 이종근 선생이 1961년 97일간 해외시찰을 하고 있을 때 찍은 사진.
고촌 이종근 선생(왼쪽에서 두 번째)이 1961년 선진의약품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97일간 해외시찰을 했을때 찍은 기념사진.

1960년대는 불황이 극심했다. 특히 1963년에는 대형 도매업체가 다섯이나 도산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기회는 찾아왔다. 정부가 원료의약품 육성 방안을 발표, 원료의약품을 자체 생산하면 해당 원료의약품의 수입을 금지시키고 국내 독점 판매를 일정 기간 보장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종근 회장은 가장 먼저 원료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제약업계는 평범한 중소 제약사였던 종근당의 이 같은 결정이 ‘무모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어릴 적 목표를 향해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던 이종근 회장은 자신의 생각을 믿고 원료합성공장 건설을 밀어붙였다.

이미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국내 제약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이 월등한 신제품 개발이 필요한데, 원료의약품을 국산화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종근당은 당시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에 항생제 원료 합성공장 건설 계획서를 제출하고 1965년 항생제 원료 합성 공장을 준공, 이듬해인 1966년 클로람페니콜 원료의 대량 합성을 시작하면서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원료의약품 국산화에 성공했다.

 

1965년 준공한 종근당 원료합성공장
1965년 종근당이 국내 최초로 준공한 의약품원료 합성공장

 

국내 제약사 최초 FDA에 도전하다

자체 원료 합성에 성공한 고촌 선생은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완제의약품이라면 힘들지 몰라도 원료의약품은 가격만 맞으면 수출이 가능한데 미국 FDA 허가까지 받으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제약 산업이 한국보다 수십 년 앞서 있던 일본의 경우 1966년까지 FDA 허가를 받은 의약품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어찌 보면 자체 원료 합성보다 더 무모한 도전이었다.

생각은 곧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그의 강점이다. 1967년 회사 내에 FDA공인준비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준비에 착수했다. 생산 설비부터 기술, 품질 관리, 원료관리 등 모든 것은 FDA 기준에 맞게 재정비하고 1967년 9월30일 FDA에 정식으로 자사의 클로람페니콜 원료에 대한 검정을 신청했다.

그리고 1968년10월29일. 한국 제약업계 최초로 FDA 승인을 획득했다.

 

1968년 미국 FDA 직원들이 종근당의 클로람페니콜 원료에 대한 검정을 실시하고 있다.
1968년 미국 FDA 직원들이 종근당의 원료 생산시설과 품질에 대한 검정을 실시하고 있다.

시장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일본 상쿄제약사가 중역 2명과 원료 수입 실무자를 종근당에 보냈다. 클로람페니콜 기초 원료를 킬로그램당 35달러에 총 10톤, 4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이후 상쿄 제약은 벤잘콤파운드와 디베이스 등 다른 항쟁제 원료도 종근당에 발주했다. 국내 제약업계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동시에 종근당의 퀀텀점프가 시작된 ‘사건’이었다.

 

전성기 맞은 이종근 회장, 사회적 기업가로 보폭 확대

고촌 이종근 선생이 1972년 국내 최초로 설립한 종근당 중앙연구소.
고촌 이종근 선생이 1972년 국내 최초로 설립한 종근당 중앙연구소.

1970~80년대는 이종근 회장의 전성기였다.

1972년 5월 종근당은 국내 제약사 최초로 자체 연구소를 신설하고 1974년에는 국내 최대 항생물질 발효공장을 완공했다. 종근당 중앙연구소는 1984년 스웨덴 아스트라제네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페니실린계 살균성 항생물질 염산바캄피실린 합성에 성공했다. 이 약은 바칼씰린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돼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수출됐다.

1985년에는 지금도 소비자에게 잘 알려져 있는 스테디셀러 진통제 ‘펜잘’을 출시했고, 같은 해 FDA에 리팜피신 품질 승인을 받고 미주 수출을 개시했다. 1986년에는 전 품목 KGMP 적격 판정을 받았다.

기업이 성장하면서 이종근 회장은 주변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가난한 소년이었던 그는 사회적 책임을 마다하지 않았다.

1973년 사재 2000만원을 털어 종근당장학재단을 설립한 고촌은 임직원 자녀들에게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납입금 전액을 지원했다. 그는 1980년 준공한 종근당 빌딩의 임대 수익 전액과 영등포 빌딩의 소유권마저도 재단에 기부했다.

그에게 기업의 이익은 가난해서 배우지 못하는 학생이 없는 사회, 가난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

1986년 12월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18주년을 맞이한 날. 이종근 회장은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장학교육 사업에 헌신해온 데 따른 국가의 보답이었다.

 

고촌 이종근 선생은 1986년 장학사업 헌신 공로로 목련장을 받았다.
고촌 이종근 선생은 1986년 장학사업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로 부터 국민훈장목련장을 받았다.

이후에도 국내 제약업계 선구자를 자처했던 이종근 회장은 1993년 2월7일, 향년 일흔 넷을 일기로 타계했다.

“세월이 흘러 사람이 바뀐다 해도 기업은 영원한 것이다. 평소 나의 생각과 기본 정신으로 기업을 이끌어 나갈 다음 경영자나 종업원이 나의 창업 신조와 경영철학을 계승해 주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방법과 기술이 개발돼 인류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인생의 뜻과 경영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종근 회장이 생전에 남긴 유언이다.

종근당은 고촌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지금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5003억원의 매출을 기록, 국내 제약업계에서 극소수만 달성한 연간 매출액 1조 클럽 가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종근당은 고촌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05년 UN산하 결핵퇴치국제협력사업단과 고촌상을 제정했다.
종근당은 고촌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2005년 UN산하 결핵퇴치국제협력사업단과 고촌상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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