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안상준 기자] 국내 '보툴리눔 톡신' 시장이 제약사간 치열한 경쟁으로 포화상태에 이르자, 미용 성형 시장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약 5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전 세계 보툴리눔 톡신 시장의 절반가량이 '치료제' 시장인 만큼, 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동안 국내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휴젤·메디톡스·대웅제약 등 3개 기업이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며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했다. 지난해 기준 휴젤이 531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메디톡스(460억원)와 대웅제약(100억원)의 맹추격전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약 1200억원 규모까지 성장했던 국내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지난해 약 10%가량 확대되는 데 그쳤다. 여기에 올해는 주로 해외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던 휴온스까지 추가로 국내 시장에 가세하는 등 나눠 먹기가 심화되며 '레드오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제약업계 치료제 적응증 확보 '현재 진행형'
이에 업계는 보툴리눔 톡신의 치료제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이미 보툴리눔 톡신이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보툴리눔 톡신의 대명사 '보톡스'를 판매하고 있는 엘러간은 지난 198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보톡스에 대한 안검경련 및 사시 치료제 승인을 받은 데 이어, 만성 편두통 등 12개 질병의 적응증을 확보했다.
국내 기업의 치료제 적응증 확보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메디톡스는 최근 자사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메디톡신'의 과민성 방광증 임상 3상을 개시했다. 216명의 과민성 방광증 환자를 대상으로 메디톡신의 과민성 방광 증상 개선 여부 등을 확인하는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과민성 방광증은 방광 근육의 수축이 비정상적으로 자주 발생하며 배뇨 기능에 이상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보툴리눔 톡신은 근육이 움직이는 데 필요한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억제하는 만큼, 과민성 방광 증상을 개선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대웅제약은 지난 2015년 '나보타'에 대한 뇌졸중 후 상지근육경직 적응증을 획득했다. 현재 안검경련(본태성 눈꺼풀경련), 사각 턱(양성교근비대증) 등의 적응증 추가를 위한 임상을 진행 중이다.
대웅제약 박성수 나보타 사업본부장은 "뇌졸중 후 상지근육경직 적응증 획득 후에도 치료 영역 입지를 다지기 위한 임상 시험들을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미용과 치료 두 가지 영역 모두 충분한 임상 근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휴젤은 올해 2월 경부 근긴장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보툴렉스'와 보톡스의 안전성 및 유효성을 비교 평가하는 임상 1상을 식약처로부터 승인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과민성 방광 환자를 대상으로 보툴렉스와 보톡스를 비교하는 임상 1상을 시작했다.
보툴리눔 톡신, 치료제 인식은 '아직'
다만 업계는 우리나라 시장에서 보툴리눔 톡신의 치료제 역할이 확대되기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보툴리눔 톡신이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보다 단순히 미용 성형에 쓰이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보툴리눔 톡신을 판매하고 있는 A 제약사 관계자(익명 요구)는 헬스코리아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국의 경우 보툴리눔 톡신의 미용 성형과 치료제 사용 비율이 9:1 정도"라며 "치료 효과가 6개월에 불과한데다 치료비도 비싸다보니 미국·유럽 등 선진국이 아닌 국가에서는 아직 치료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B 제약사 관계자도 같은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
이 관계자는 "만성 두통에 보툴리눔 톡신이 효과가 있다고 해도, 누가 그 비용을 내고 미용 성형에 특화된 것으로 더 잘 알려진 보툴리눔 톡신을 두통치료용으로 맞겠느냐"며 "다만, 톡신제제가 대중화된만큼, 앞으로 치료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