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기자] 58년 동안 처방돼 온 한 퇴장방지약이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재평가 때문이다. 이미 생동성시험을 실시한 바 있고 해당 제품 연매출의 절반을 생물학적동등성시험에 쏟아부어야 하는 탓에 회사 측은 시험 면제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환인제약의 항정신병약 '네오마찐정'(클로르프로마진염산염) 얘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네오마찐정' 재평가에서 생동성시험을 면제해 달라는 환인제약의 신청을 거절, 최근 생동성시험을 실시토록 했다.
생동성시험은 신약과 동일한 제네릭 의약품을 허가받고자 할 경우 제네릭 의약품과 신약 간의 생물학적동등성을 입증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로 지난 1989년 도입됐다.
제도 도입 이후 허가받은 품목은 모두 생동성시험을 거쳤으나, 도입 이전 허가받은 품목은 별도의 생동성시험 없이 허가가 유지돼 왔다. 이 때문에 식약처는 이들 품목을 생동성 재평가 대상으로 선정,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오리지널 또는 대조약과 동등성을 입증토록 했다.
'네오마찐정'은 생동성 제도 도입 이전인 1960년 허가받은 품목으로 지난해 생동성 재평가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식약처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재평가 시기로부터 3년 전, 해당 품목을 보유한 회사에 관련 사실을 통지한다. 환인제약도 지난 2014년경 식약처로부터 관련 사실을 통보받고 미리 생동성시험을 한 차례 진행했다. 그러나 일부 환자가 이탈하면서 결과에서 대조약과 미세한 차이가 생겼다.
근소한 차이가 있음에도 회사 측은 해당 품목이 조현병에 많이 쓰이는 퇴장방지약이고 부작용이 많으므로 추가 생동성시험 없이 기존 생동성시험 자료를 근거로 재평가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식약처, 고심 끝에 생동성시험 면제 거부 … 중앙약심 의견도 '분분' … 퇴방약 사라질까 우려
식약처의 이번 결정은 지난 9월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자문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당시 중앙약심에서는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퇴장방지약 특성상 매출이 매우 작아 회사 측이 생동성시험을 포기하거나 품목을 자진취하할 가능성이 있어서였다.
환인제약이 생동성시험을 실시하지 않아 품목허가가 취소되거나 회사 측의 자진취하로 '네오마찐정'의 품목이 사라질 경우, '클로르프로마진염산염' 성분 제제는 대조약인 명인제약의 '명인클로르프로마진염산염정'이 유일해진다.
중앙약심의 한 위원은 "Cmax(약물 최고혈중농도)는 차이가 좀 크지만 AUC(투약간 혈중농도 곡선하면적)는 차이가 적으며, 약간 떨어져도 별로 상관이 없다고 판단된다"며 "해당 품목이 없어졌을 때 단일 품목이 되어 생기는 현실적인 문제가 상당히 크다"고 강조했다.
다른 위원도 "'클로르프로마진' 성분 제제는 소량으로 단기간으로 사용하고 다른 항정신병제를 쓰면서 보조적으로 널리 어느 정도 사용하므로 명인제약의 제제 하나만 남으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 현실적으로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며 "단일 제약회사만 남으면 병원 입장에서는 약품을 지정하는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위원은 "(생동성시험에 1억원 가량이 드는데 '네오마찐정'으로) 2억원을 파는 회사가 1억원을 들여 수익을 어떻게 남길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회사는 생산을 하지 않고 싶을 것 같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반면,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네오마찐정'의 생동성시험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한 위원은 "'클로르프로마진'의 경우 다른 동일 성분 제품 교차투여로 크게 문제가 된 경험은 없다. 회사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다"며 "생동성이 입증이 되지 않았는데 면제를 시켜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역설했다.
다른 위원은 "'네오마찐정'은 정신과 치료뿐 아니라 구토예방을 위해서도 사용되므로 생동시험은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결국 총 9명의 전문 위원이 참석한 이날 약심은 찬성 3명, 반대 5명, 기권 1명으로 '네오마찐정'의 생동성시험 면제는 타당하지 않다고 결론이 났다.
환인제약 "생동성시험 실시 여부 아직 검토중"
식약처가 '네오마찐정'의 생동성시험을 실시토록 했음에도 환인제약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환인제약 관계자는 "'네오마찐정'의 생동성시험 진행 여부와 관련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며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환인제약이 품목을 포기하면 '클로르프로마진' 성분 제제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명인제약이 제품을 추가로 생산해야 한다. 이 경우 명인제약까지 허가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명인클로르프로마진'의 연 매출은 4억원 안팎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평가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번 사안은 퇴장방지약과 관련된 것이다 보니 식약처도 제약사도 모두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며 "원칙을 지키면서도 융통성을 발휘하는 혜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