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바라본 세월호 참사 1년
정신과 의사가 바라본 세월호 참사 1년
“많이 힘드시죠? … 당신의 아픔에 공감합니다” … “트라우마센터 반드시 있어야”
  • 안명휘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15.04.15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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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청해진해운 소속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탑승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됐다. 이른바 세월호 침몰 사고다.

당시 정부는 민관합동으로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수색작전을 벌였다. 의료계도 힘을 보탰다. 그런데 대형 재난 이후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환자들에게 “많이 힘드시죠? 당신의 아픔에 공감합니다”라며 손을 내민 의사들이 있다. 바로 세월호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정신과적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들이다.

헬스코리아뉴스는 세월호 침몰사고 1주기를 맞아 사고발생 직후 제일 먼저 안산을 찾아 피해자와 유가족의 트라우마 상담을 기획·진행하고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신과전문의 정재훈 선생<수원 아주편한병원 원장>을 만났다.

▲ 정신과전문의 정재훈 선생(수원 아주편한병원 원장)이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유족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느낀 안타까운 심경을 피력하고 있다. 그는 “지역별 ‘정신보건증진센터’를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거기에 트라우마 전문교육을 받은 인력 2,3명만 추가로 투입하면 세월호 같은 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신적 외상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사고발생 당일 안산·경기지역 정신과 의사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안다.

“당시 경기도의사회 정보통신이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사직을 맡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소식을 접한 조인성 당시 경기도의사회장이 상황파악을 해 달라고 해 사고 상황을 파악하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상당히 심각할 것으로 생각돼 조기 의료지원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안산시 의사회장과 함께 안산시 의사회 회의실에 모여 긴급회의를 가졌다. 당시 안산시 지역 정신건강의학과 개업 원장님들이 거의 대부분 참석했다. 당시 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사고로 인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트라우마가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고 물론 국가가 개입해서 어느 정도 접근을 하겠지만 1회성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는 평생 갈 수밖에 없는데 초기에 민관이 협력하는 형태로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안산지역 정신과 원장님들이 당사자 가족이나 친척들, 학생들에 대한 정신과적인 상담 의뢰가 오면 얼마든지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하고 다른 팀들이 철수하더라도 장기적인 지원 및 관리를 하기로 약속했다.”

-. 세월호 침몰사고는 대형 재난상황이었다. 사고발생 이후 의료지원활동은 어떤 형태로 진행됐나. 

“사고발생 직후부터 경기도의사회는 안산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옆에서 의료부스를 만들어 의료지원활동을 시작했다. 분당서울대병원에 있는 응급재난지원팀이 지원을 나왔는데 응급재난지원팀은 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구성됐다. 사고발생 후 안산에는 경찰청 심리지원팀이 파견을 나오고 경기도청과 보건복지부, 경기도교육청 등에서도 트라우마 지원인력이 파견됐다.

당시 대통령께서 화가 나서 그런지 지나치게 보여주기·실적주의에 집착하는 것이 있었다. 교육청 측은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는 중에 발생한 사고니까 자기들 소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다보니 가족들을 비롯해 사고 당사자들이 상처를 받은 부분도 있고 학생들에 대한 상담 부스와 직계가족들 상담 부스가 구분되는 등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국가의 시스템이 이것밖에 안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나라는 대형 재난상황에 대한 대응체계가 미흡한 것 같다. 

▲ 세월호 침몰사고와 함께 유족들의 정신과치료에 매진해오고 있는 정신과전문의 정재훈 선생. 그는 “우리나라에는 세월호 같은 대형 재난상황에 대비한 프로토콜이 없다”며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은 당사자들이나 가족들에 대한 제대로 된 초기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세월호 같은 대형 재난상황에 대비한 프로토콜이 없었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재난 상황에 대비한 프로토콜이 있다.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제일 중요한 원칙은 피해자들을 소수집단으로 분리시켜서 지나치게 동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그룹별로 전담팀이 붙어 일대일로 계속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 당시 초기대응에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을 강당에 다 몰아넣고 대형 스크린에 방송화면을 보여주는 형태가 돼서 자극적인 기사나 보도가 나올 때마다 전체가 동요하게 만든 것이다.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은 당사자들이나 가족들에 대한 제대로 된 초기대응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당시 현장에서 느낀 것은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있었지만 각자 해오던 대로만 하려하고 보여주기 식으로만 일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많은 인력이 있었지만 서로 협력하거나 상황을 조율하는 시스템 부재, 담당자의 소통 부재가 심각했다. 그 결과 사람은 많지만 오합지졸인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 많은 전문가들을 두고 효율적·조직적 부분이 부족했던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다.

-. 재난의료에 대응하기 위한 팀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계속 해오신 것으로 안다. 

“재난의료에 대응하기 위한 팀이 필요하다는 제안은 사고발생 직후부터 경기도의사회에서 계속 주장해오던 내용이다. DMAT(Disaster Medical Team, 재난의료팀)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심리전문가가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외국의 경우 대형재난이 발생하면 사고발생 초기에 심리전문가가 현장에 투입된다. 신체적 외상 외에도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도 무척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의 경우 초기에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발생 1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 당사자들이 삭발을 하고 울분을 토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대형 사고에 대한 정신적인 치료는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국가가 진정으로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신뢰가 생기는 것 아니겠나. 세월호 사고 같은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국민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부처에서 주도를 해야 하느냐, 누구 소관이냐, 누구 실적이냐,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황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까웠다.”

-. 대형재난이 또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할 것 같다. 

“대형 재난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외상 환자들을 위한 정신과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전역에 위치한 권역별응급의료센터는 대부분 외상환자를 집중적으로 치료한다. 그런데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들에 대한 정신적·심리적 치료를 할 수 있는 심리지원팀이 있는 곳은 없다. 대학병원에 정신과가 있기는 하지만 권역별응급의료센터에 외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인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아주대학교병원 이국종 교수는 외상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깨어나면 환자들이 제일 먼저 보이는 행동은 화를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부득이하게 신체 일부를 절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는데 이 경우 환자들이 ‘병신 만들어놓고 왜 살려놨냐’고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권역별응급의료센터라면 심리적 개입을 하는 요원이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개입이다. 조기에 전문 인력이 상담을 진행하고 필요한 경우 약물을 투여하는 등 급성기에서 끝내지 않으면 만성화된다. PTSD가 장기간 지속되면 우울증에 빠지거나 무기력해지고 모든 상황을 쉽게 포기하게 된다. PTSD가 초기에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결국 약물중독, 알코올중독 등으로 진행하게 되고 이는 사회적 손실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 PTSD 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인력이나 센터를 새롭게 만들면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것 때문에 당시 경기도 의사회가 제안했던 것이 트라우마센터다. 실제로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안산에 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됐다. 그러나 안산에 설립된 트라우마센터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형태가 아니다. 교육청에 심리지원팀이 있고 경찰청에도 심리지원팀이 있다. 그러나 다 각자 움직인다.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지역에 있는 정신보건증진센터를 활용하는 것이다. 정신보건증진센터는 경기도에만 33개가 있고 전국적으로 위치한 센터를 예산을 총 합하면 1년에 수백억 원에 달한다. 이들은 매일 정신보건, 트라우마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다. 인력도 정신과 전문요원, 전문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업무 특성에 맞는 인력을 즉시 투입할 수 있다.

기존 센터 명칭을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로 바꾸고 거기에 트라우마 전문교육을 받은 전문요원들을 추가로 2,3명만 투입하면 전국적으로 구축돼 있는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이들을 통해 평상시에는 범죄나 사고 등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에 대한 상담부터 일상생활 트라우마 등을 치료하도록 하고 119구조대원, 경찰관, 응급구조사 등 트라우마에서 심각하게 소외된 그룹에 대한 개입, 관리, 교육 등을 평소에 진행하도록 하다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 인력을 긴급 투입하는 형태로 하자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발생 당시에 이런 시스템이 있었다면 경기도 지역에서만 최소 30명 이상의 트라우마 전문 인력을 즉시 투입할 수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면 경기도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트라우마 팀을 이끌게 해 지휘체계의 혼란도 막을 수 있었다.”

▲ 정재훈 선생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기반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느꼈던 우리나라의 정신적 외상 치료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세월호 사고라는 대형 재난상황에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유가족들이 울분에 차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우선 피해자의 슬픔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지 않는 데 있다. 시스템 상에서 보면 의료적 개입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전달하고 국가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보듬어준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심리적 개입이다. 금전적 보상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앞으로도 이런 대형 재난이나 사고가 또 생기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혹시나 발생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기반은 이미 갖춰져 있다. 단지 활용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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