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레보' 같은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은 매우 바람직한 인식의 변화다.
의약품 재분류안에 의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사후피임약인 노레보정, 노레보원정, 쎄스콘원앤원정, 엠에스필정, 레보노민정, 엔티핌정, 세이프원정, 레보니아정, 레보이나원정, 포스티노-1정, 애프터원정 등을 처방전 없이도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우리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동안 원치않는 임신을 사전에 막아 보자는 취지에서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벽을 깨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벽을 마주할 때 마다 우리는 절망감을 느끼곤 했다. 이 땅에서 진보란 과연 정치적 이데올로기로만 존재하는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진보라는 것은 전진운동인 동시에, 보다 고차적 상태로 이행하는 가치적 향상, 즉 점진적으로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을 가리킨다.
18세기 이후 보다 구체적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진보란 관념은 운명론이나 회귀적 역사관이 지배적이었던 고대의 세계관이나 기독교의 섭리설에 대항해서 탄생했다.
진보에 대한 생각은 고대 및 중세의 극복이라는 이념에 지향한 근세적인 관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진보가 단순히 보수파에 대한 진보파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류의 퇴보에 대한 보편적 대항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모순극복의 노력을 통해서 지켜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사후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에 반대하는 논리는 너무 궁해 보인다. 이들이 더군다나 우리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진보적 상위 계급층이라는데 더욱 무안해진다.
일부 단체들의 주장인 “일반 피임약으로 하는 사전 피임 대신에 응급 피임약으로 하는 사후 피임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말이 맞는다손치더라도, 그것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해서 중국 원정 중절수술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식약청은 사후피임약이 부작용 발현양상 등에 특이사항이 없고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등에서도 장기간 사용돼 전문에서 일반약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부작용 운운하며 사후피임약의 약국판매를 줄기차게 막으려는 시도 역시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떤 일이든 시행하려다 보면 문제가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문제가 없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다만 그 문제를 최소화하고 점차 개선해 나가면 될 것이다.
이제 이 문제를 더 이상 논쟁의 축으로 옮기지 말자. 원치 않는 임신은 여성에게 평생의 굴레를 씌우는 일이란 걸 다시 한 번 상기한다면 말이다. <본지 논설위원/소설가/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