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이명박 정부의 의료체계 개혁 방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짙게 배어나오고 있다.
핵심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완화와 민간의료보험 도입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이같은 정책 추진을 기정 사실화했다. 건강보험의 재정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공보험과 사보험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지정제가 완화되고 공보험 시장에 사보험이 밀고 들어오면 우리의 의료시장은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의료계는 찬성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돈 없으면 병원 못가는 미국식 의료체계 현실화
돈 없어서 병원 못가는 사람이 5000만명에 육박한다는 미국식 의료보험체계가 현실화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우선 현행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완화되면, 의료기관은 저렴한 건강보험에 가입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고 고가의 민간보험 가입자들을 우대할 것으로 보인다.
또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을 초월하는 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해야하는 사태도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 공보험인 지금도 많은 의료기관들이 건강보험이 안되는 비급여 항목을 늘려가며 서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판이다.
이런 상황에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icko’가 우리의 현실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식코는 미국 민간 의료보험조직인 건강관리기구(HMO)의 부조리적 폐해에서 오는 충격적 이면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돈 없고 병력이 있는 환자는 기본적인 헬스케어 서비스는 고사하고 의료의 사각지대에 방치해 결국 죽음으로 내모는 미국식 의료보험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캐나다, 프랑스, 영국, 쿠바 등의 의료보장제도와 비교해 완벽하게 포장된 미국 의료시스템의 허와 실을 감독 특유의 도발적 직설화법으로 벗겨낸 실화다.
◆MBC 뉴스후...“병 걸린 가입자 외면하는 민간보험”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민영의료보험의 또다른 문제는 국민의 질병정보가 민간보험사에 그대로 전해져 비싼 보험에 가입하고도 정작 몸이 아파 병원을 찾게 되면 민간보험사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MBC ‘뉴스후’는 23일 밤 <병원진료비 알고보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갖가지 생트집을 잡아 보험료 지불을 거부하는 국내 민간보험회사들의 폐해를 파헤쳐 시청자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날 방송에서는 위암 말기로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한 A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그녀는 암보험에 가입해 공보험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고액의 병원비를 보상받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보험회사는 그녀가 과거 병력을 속이고 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보험을 일방적으로 해지해 버렸다. 그녀의 과거 병력은 사실 위암과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MBC가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취재를 시작하자 보험회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 적이 없다”며 태도를 바꿔 A씨에게 1억원에 가까운 보험금을 지급했다. 그녀는 “만일 MBC의 취재가 없었다면 보험회사는 보험료를 지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완화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에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새정부 의료보장제도 부유층엔 ‘지상낙원’
물론 이러한 의료체계는 돈 많은 부유층에게는 더 없이 좋은 제도가 될 수 있다. ‘미국식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고가상품의 난립과 함께 국내는 물론 외국계 병원들까지 가세, 부유층들을 ‘특별대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현실을 두고 민영의료보험회사들은 “질높은 민간보험이 도입되면 부유층들의 해외 원정진료를 막아 국부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윤 극대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기업입장에서 보면 일면 그럴싸해 보이는 주장이다.
그러나 최근 민간의료보험의 이면에 숨은 함정이 진보성향의 언론을 통해 속속 드러나면서 서민들 사이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의료정책 방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저 노무현이 미워서 이명박을 선택했는데…. 경제를 살리라고 찍었는데…. 이건 아닌데….”라는 탄식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당연지정제 완화·민간보험도입→재벌소유 보험회사 돈벌이 수단”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거세다.
통합민주당(민주당)은 지난 21일 대변인실 논평에서 “건강보험제도의 취지는 가진 사람만 좋은 의료혜택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당연지정제의 완화는 공평한 의료혜택이라는 건강보험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이명박 당선인은 재벌, 기업, 가진 사람 위주의 정책만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사왔다”며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는 보험환자 기피를 유발하고 계층간 위화감 조성은 물론 의료 이용의 불평등을 심화시켜 의료양극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 김주한 부대변인은 “과연 의료 양극화가 국민통합인가. 이명박 당선인이 섬기려는 국민은 가진 사람들뿐인가”라고 반문하며 “당장 당연지정제 완화를 전면 취소하고, 당선자는 이런 정신 나간 정책을 남발하는 인수위에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지난 22일 ‘이명박 정부의 국민건강 포기하는 의료상업화를 우려한다’는 성명을 통해 “건강보험이 중증질환으로부터 가정경제를 보호할 수 있는 의료안전망 역할도 못하는 상황에서 민간보험이 공보험인 건강보험과 경쟁관계에 높일 경우 민간보험은 공보험의 보완단계를 뛰어넘어 공공의료보장체계를 흔들고 그 피해자는 국민들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성명은 건보공단이 보유한 가입자 정보를 민간보험회사가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는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중요 개인정보를 가지고 재벌소유 보험회사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들과 유착하는 것”이라며 “의료상업화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명박 정부, 4월 총선의식 이후 추진 가능성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와 민간보험도입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기업의 자율성과 시장만능주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강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4월 총선을 의식해 그 이후에 이명박식 의료보장제도를 밀어붙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동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주부나 노인, 어린이 들입니다. 민영의료보험이나 고가의료상품에 가입할 능력이 없는 서민들이 대다수죠. 그런데 공보험이 도입되면 우리같은 서민들은 어떻게 하지요.”
최근 취재진이 만난 한 주부는 “우리도 결혼 후 15년만에 장만한 아파트값이 자꾸 떨어진다는 소식에 이명박을 찍었는데, 큰 일이네요.”라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뉴스후 보도후 MBC 시청자 게시판에도 이명박 정부의 의료정책 방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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