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난 재-보선 이후 정치권의 기류가 부정적으로 돌아서면서 이 문제가 좌초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때를 놓칠 새라 약사회 등 이익단체들은 반대 목소리를 한층 높이고 있다. 정치권이나 직역단체들의 국민 편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오만한 태도가 참으로 실망스럽다. 이들에게서는 오로지 내 밥그릇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만 보일 뿐이다.
스위스 제네바 UN 유럽본부에서 열린 제64차 세계보건총회에 참석하고 귀국하는 진수희 복지부장관이 어떠한 결론을 낼지 일반 국민들과 약사회 등 이해관련자들이 주시하고 있다. 진 장관은 당초 계획대로 이 문제를 풀어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이제 와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의사의 처방전 없이 팔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판매할 수 있게 허용하느냐 하는 문제는 10년 넘게 논쟁을 벌여온 해묵은 과제다. 지난해 말 복지부 새해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이 “콧물이 나면 내가 아는 약을 사 먹는다. 그러면 개운해진다. 미국 같은 데 나가 보면 수퍼마켓에서 약을 사 먹는데 한국은 어떻게 하나”라고 하면서 정부차원에서 논쟁이 다시 촉발됐다.
부처간의 이견 등 우여곡절 끝에 불완전하나마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를 특정시간대, 특수장소에 한해 허용하는 쪽으로 관련부처들이 합의한 터다. 현행 약사법상으로는 일반 의약품을 약국 이외에서 판매할 수 없다. 그러나 '제한적 특수 장소'에서는 약국 외 의약품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복지부는 이 조항을 확대 해석해 심야나 주말에 한해 수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의 약 판매를 허용하겠다는 의도다.
이같은 미봉책은 약사단체 등을 의식한 시늉만 내는 정책이라는 평을 피하기 어렵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반쪽자리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제한을 더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민의 약 구매 접근성을 제고하고 불편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이에 반해 선거 때 지역 약사회, 의사회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정치인들이 내년 총선에서 자신들의 지역구 내 ‘약사 표’를 확보하기 위해 이들의 압력을 받아 딴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감기약 슈퍼판매가 허용되면 내년 총선에서 약사들이 등을 돌릴 게 뻔하니 시행을 보류하자는 분위기가 정치권에 확산되고 있다. 이들의 백지화 주장에 보건당국도 몸을 사리고 있다니 과연 계획대로 시행될 것인지 걱정이다.
의약품 판매가 약국 독점에서 수퍼판매로 바뀌면 경쟁이 촉진돼 가격이 떨어지고 그 편익은 서민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결국은 건보재정 건전화에도 기여하게 된다. 단순히 몇몇 약품을 슈퍼에서 팔게 한다는 차원에서 벗어나 나라의 건강정책이라는 큰 틀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이다.
보건당국은 이 문제가 직역의 이해관계라는 덫에 걸려 더 이상 제자리 걸음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기득권을 깨뜨리고 규제를 완화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줄 때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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