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그동안 사용 가능한 모든 항경련제에 내성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라스무센 뇌염으로 인한 약물 난치성 뇌전증(refractory epilepsy) 환자에게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를 투여하자 매우 극적인 효과를 보였다는 사례 보고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의과대학, 스페인 발렌시아 라페 대학병원, 뇌전증에 관한 유럽 레퍼런스 네트워크 에피케어(EpiCare) 공동 연구진은 최근 국제뇌전증연맹의 공식 저널인 ‘에필렙시아(Epilepsia Open)’을 통해 라스무센 뇌염으로 인한 약물 내성 뇌전증 환자에서 세노바메이트 추가 투여 요법의 효능을 확인한 사례 보고 논문을 공개했다.
라스무센 증후군이라고도 하는 라스무센 뇌염은 한쪽 대뇌 반구의 만성 진행성 염증(뇌염)을 특징으로 하는 중추 신경계의 드문 장애다. 뇌의 통제되지 않은 전기적 장애로 빈번한 경련성 발작을 일으킨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 한쪽의 진행성 약화(편마비), 언어 문제(뇌의 왼쪽에 있는 경우) 및 지적 장애, 대뇌피질성 감각 소실, 편측 시야 결손, 연하곤란 등의 추가 증상이 나타난다.
라스무센 뇌염 환자들은 전형적으로 10세 이전에 경증의 국부적인 발작이 시작되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라스무센 뇌염과 연관된 가장 흔한 간질의 형태인 지속성 부분간질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대뇌 반구 절제술 형태의 수술이 발작을 치료하고 신경 발달 퇴행을 중단시키는 유일한 방법으로 꼽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수술을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때는 약물로 발작을 조절해야 하는데, 라스무센 뇌염 환자는 대부분 항경련제가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이번 연구에서 보고된 3명의 라스무센 뇌염 환자는 모두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로, 발작을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항경련제를 병용해서 복용했다. 이들 환자는 수십 년간 2~4개 항경련제를 꾸준히 복용했음에도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지 못했는데, 세노바메이트를 추가로 복용한 뒤에는 1~2년 만에 발작 증상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발표 논문에 따르면, 첫 번째 케이스는 10세에 발작이 시작된 32세 환자로,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이 환자는 총 10개의 항경련제로 치료를 받았다. 대부분 2~4개의 항경련제로 구성된 다중 요법으로, 발작이 없는 기간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변동이 있었지만, 규칙적으로 발작이 재발했고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경련 상태도 겪었다.
이 환자가 처음 세노바메이트를 처방받은 것은 2021년으로, 발프로산과 페니토인에 추가로 도입됐다. 그 결과, 1년 동안 발작이 완전히 통제됐고, 발프로산과 페니토인 복용을 중단할 수 있게 됐다.
페니토인을 연속적으로 완전히 중단하는 동안 일부 국소성 운동 발작이 재발했지만, 그 정도가 너무 경미해서 환자 가족도 약물 조정을 요청하지 않았다.
두 번째 케이스는 5살에 발작을 시작한 28세 환자다. 항경련 치료는 페노바르비톤, 발프로산, 카르바마제핀, 페니토인, 토피라메이트, 레비티라세탐, 조니사미드, 라모트리진, 라코사미드, 옥스카르바제핀을 단독 또는 복합 요법으로 시행했으나, 만족스러운 발작 조절은 이뤄지지 않았다. 타크로리무스를 이용한 면역 조절 요법도 임상적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
이 환자는 약물 처방을 세노바메이트, 옥스카르바제핀 병용요법으로 바꾼 뒤부터 발작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발작 빈도는 매일 발작에서 한 달에 약 10회로 즉시 50% 이상 감소했으며, 11개월의 치료 기간 후에도 국소성 발작에서 양측성 강직성 경련으로 더 진행되지 않았다.
환자는 현재 세노바메이트, 페노바르비톤, 옥스카르바제핀 3제 요법으로 발작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세 번째 케이스는 16세에 발작을 시작한 42세 환자다. 33세까지는 발프로산과 토피라메이트로 발작이 완전히 통제됐으나, 이후 발작이 다시 시작됐고, 35세부터 40세까지는 하루에 여러 번의 의식 장애 없는 국소 발작과 일주일에 2~3회의 의식 장애 발작에서 1~2주 동안 발작이 없는 경우까지 다양한 빈도로 발작이 나타났다.
환자는 클로바잠, 레베티라세탐, 라코사마이드, 카르바마제핀 등 항경련제를 처방받았지만, 발작 증상 감소 효과는 25%에 그쳤다. 더욱이 오른팔의 운동성 경련이 각성과 수면 중에 지속하면서, 경미한 오른쪽 반신 마비, 무도성 이형성 자세, 인지 저하를 동반한 부분적 간질 지속(EPC)으로 발전했다.
이에 의료진은 처방 약물에 세노바메이트를 추가했고, 이후 20개월의 추적 관찰 기간 의식소실을 동반하는 발작(impaired-awareness seizures)이 완전히 사라졌다. 의식소실을 동반하지 않는 국소 발작(focal without awareness impairment seizures)도 80%나 줄었고, 팔 경련은 개선됐다.
환자는 이러한 결과 덕에 복용 중이던 항경련제 중 카르바마제핀을 증상 악화 없이 점진적으로 중단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번에 공개한 세 가지 사례는 라스무센 뇌염 환자와 단 측 진행성 반구 위축증이 있는 유사한 사례에서 세노바메이트의 개인 내 우월성에 대한 인과적 증거를 제공한다”며 “세노바메이트는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필수적이었던 항경련제 병용 요법을 처음으로 줄일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제시한 사례학적 증거는 약물 저항성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라스무센 뇌염의 초기 추가 치료제로 세노바메이트가 고려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세노바메이트’는 이중적 상호작용 약물기전을 가진 감마 아미노뷰트릭 산(GABAA) 이온 채널의 양성 알로스테릭 조절제다. GABAA 채널을 통해 뇌의 고도한 흥분성 전기적 활성(electrical activity)을 감소, 이상 운동증상을 줄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SK바이오팜이 국내 최초로 전 과정을 독자 개발해 성인 뇌전증 환자에게 유의미한 발작 완전 소실률을 보여준 뇌전증 혁신 신약이다.
이 약은 성인 대상 부분 발작 뇌전증에 대한 약효를 인정받아 ‘엑스코프리(Xcopri)’라는 제품명으로 지난 2019년 11월 미국 FDA의 허가를 취득했다. 2021년 3월에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부터도 판매 허가를 받아 시판 중이다.
‘세노바메이트’는 아직 국내 허가를 취득하지 못한 상황이다. SK바이오팜 측은 오는 2025년쯤 국내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대상 적응증은 미국, 유럽과 동일하게 부분 발작 뇌전증에 대한 치료일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는 ‘세노바메이트’의 투약 가능 연령층을 성인에서 소아로 넓히기 위해 국내를 비롯해 미국, 호주, 독일 등 8개 국가에서 다국가 임상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