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파프(PARP) 또는 크라스(KRAS) 억제제가 불치병으로 알려진 췌장암 치료의 새로운 표적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생존율이 매우 낮다. 중앙암등록본부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19년 기준 췌장암의 생존율은 13.9%에 불과하다.
췌장암의 생존율이 이처럼 낮은 이유는 전이가 매우 빠른데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췌장암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외과적 절제술이나 수술은 전체 환자의 20% 정도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제 불가능한 췌장암에는 화학요법 이후 방사선요법이 고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절제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6%에 불과하다. 췌장암이 불치병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게다가 화학방사선 요법은 세포 독성 부작용으로 인해 환자의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리기 때문에 치료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어차피 장기간 생존하지 못하니 암의 진행을 적당히 억제하여 환자의 증상을 호전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요즘 뜨고 있는 면역항암제도 췌장암에는 무용지물이다. 췌장암은 대표적인 비면역 종양(Cold Tumor)으로, 암 조직 주변에 면역 세포가 극히 드물어 면역 항암제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주목받고 있는 약제가 바로 PARP 또는 KRAS 억제제다.
지난 9월 15일에서 18일까지 미국 보스턴에서 개최된 미국암연구협회(AACR)에서 미국 메모리얼 슬로안 케터링 암센터(MSKCC) 산하 췌장암 연구 센터 소속 아일린 오라일리(Eileen O'Reilly) 박사는 췌장암 치료에 대한 최신 지견을 공유했다.
이 자리에서 오라일리 박사 연구팀은 췌관 선암종(PDAC) 환자를 대상으로 미국 애브비(Abbvie)의 PARP 억제제 ‘벨리파립’(veliparib)과 화학 항암제 병용요법을 평가한 임상 2상 시험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오라일리 박사에 따르면, 해당 병용요법은 화학 항암제 단독요법 대비 무진행 생존율 혹은 전체 생존율 개선에는 실패했지만, 전반적인 반응율은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PARP 억제제와 췌장암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어서 주목된다. 연구팀은 “전체 췌장암의 약 5%는 DNA를 복구하는 단백질인 BRCA1 및 BRCA2가 과도하게 발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PARP 억제제를 사용하면 BRCA1 및 BRCA2를 억제하여 췌장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
PARP 보다 더 관심을 끈 약물은 KRAS 억제제다. KRAS는 세포 성장 및 분화에 관여하는 RAS 단백질군의 한 유형으로, 많은 종류의 암에서 KRAS 변이가 발견된다.
특히, 췌장암에서는 80~90%가 KRAS 변이를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KRAS 억제제가 췌장암에 대한 유망한 표적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지금도 허가된 KRAS 억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암젠(Amgen)의 ‘루마크라스’(Lumakras, 성분명: 소토라십·sotorasib)와 ▲미국 BMS의 ‘크라자티’(Krazati, 성분명: 아그다그라십·adagrasib)가 FDA 허가를 받고 환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약물은 KRAS 단백질의 하위 유형인 G12C 변이만 표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분명하다. G12C는 현재까지 발견된 KRAS 변이 중에서 구조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하위 유형 변이라는 점에서 개발도 그만큼 빨랐다.
따라서 의과학자나 제약바이오업계 연구자들은 KRAS 억제제 혹은 RAS 단백질군 전체를 표적하는 약물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바이오 벤처 기업인 레볼루션 메디슨(Revolution Medicines)은 올해 2월 여러 유형의 RAS 변이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자사의 다중 RAS 억제제 ‘RMC-6236’ 후보물질을 평가하는 임상 1상 시험을 개시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RMC-6236’ 투약 췌장암 환자들은 무진행 생존기간과 전체 생존기간이 개선됐다.
오라일리 박사는 “G12C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변이를 표적할 수 있는 KRAS 억제제 혹은 RAS 단백질군 전체를 표적하는 억제제는 췌장암 치료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것”이라며, “췌장암 치료는 분명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향후 수년 이내에 췌장암에 대한 새로운 표적 치료제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