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펩타이드약물접합체(PDC, Peptide drug conjugate)가 항체약물접합체(ADC)를 잇는 차세대 항암제로 부상하고 있다.
펩타이드는 아미노산이 서로 결합하여 형성된 작은 분자다. 단백질의 구성 단위가 되는 아미노산 서열을 가졌으며, 다양한 생리학적 기능을 담당한다.
이를 활용한 의약품은 주로 수용체 길항제다. 펩타이드는 짧은 아미노산 서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단백질의 수용체에 잘 들어맞는 구조적 특성을 지닌다. 펩타이드는 수용체의 활성 부위에 선택적으로 결합하게 하여 길항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간 펩타이드는 수용체 길항제로서만 활용되었다. 그런데 ADC에 대한 한계점이 드러나면서 이의 대안으로 점점 관심을 받고 있다.
ADC는 항체와 세포 독성 약물을 링커(linker)로 연결한 의약품이다. 항체는 펩타이드 대비 분자 구조가 상대적으로 크고 특정 항원에 대한 결합 친화성이 매우 높은데, 치료 효과는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업계는 세포 독성 약물을 실어 보내는 방법을 구상했고 그 결과물이 ADC다.
ADC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화학 항암제의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효과는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화학 항암제는 암을 공격하기 위해 빠르게 증식하고 분열하는 우리 몸의 모든 세포를 겨냥하므로 부작용으로 악명 높다.
반면 ADC는 항체의 항원 결합 친화성을 토대로 국소적으로 표적에 세포 독성 항암제를 전달한다. 이에 따라 건강한 세포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ADC에서도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항체를 사용하는 만큼 면역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체 약물은 체내 면역 체계에 의해 외래 물질로 인식되어 면역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심각할 경우 전신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사이토카인 분비 증후군이 나타날 수도 있다.
PDC가 최근 ADC의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다. PDC는 펩타이드와 세포 독성 약물을 링커로 연결한 의약품이다. 기본적으로 ADC와 유사하지만 타깃 작용 기전이 항체가 아닌 펩타이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펩타이드는 항체 대비 표적 선택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분자 구조가 작아 항체 대비 유연하게 작용할 수 있고, 조직 침투력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작은 분자인터라 체내 면역 체계가 외래 물질로 인식할 가능성 또한 적다.
임상 실패했지만 개발 열기 뜨거워 ... 파로스젠도 도전
PDC는 이전에 허가를 받아 출시된 바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1년 2월, 스웨덴 온코펩타이드(Oncopeptide)의 PDC ‘페팍스토’(Pepaxto, 성분명: 멜팔란 플루페나마이드·melphalan flufenamide)를 재발성 또는 불응성 다발성 골수종 성인 환자의 5차 치료제로 가속 승인(조건부 허가)했다.
그러나 온코펩타이드는 ‘페팍스토’를 정식 허가로 전환하기 위한 임상 3상 시험(시험명: OCEAN)에서 유효성 확증에 실패했다. FDA는 이에 올해 2월, ‘페팍스토’의 허가를 철회했다.
그럼에도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PDC 개발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헬스코리아뉴스 취재 결과 현재 개발 중인 PDC 관련 약물은 전세계적으로 100개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파로스젠’이라는 작은 벤처기업에서 이 약물을 개발 중이다. 2014년 설립된 이 회사는 자사의 PDC 후보물질 ‘MPD-1’ 개발을 시도하며 차세대 항암제 경쟁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MPD-1’은 모든 KRAS 유전자 변이 유형과 PTEN 유전자 결손을 표적화한 세계 최초의 항암제다. 파로스젠은 ‘MPD-1’의 개발이 성공하면 항암제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는 ‘MPD-1’의 개발을 임상 단계까지 끌어올리며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7일 ‘MPD-1’의 1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했다.
해당 시험은 진행성 고형암 환자 30명을 대상으로 ‘MPD-1’의 안전성, 내약성 및 약동학적 특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시험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실시하며, 예정된 임상 시험 기간은 오는 2027년 7월까지다.
임상이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2상을 마치는데 까지 적어도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약물의 성공 여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