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임도이]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등 서울의대 소속 교수의 70.9%가 환자곁을 지키고 싶으나 힘들어서 진료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의과대학-서울대병원 제3기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강희경 교수)가 산하 4개 병원(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강남센터)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5월 3~4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설문에는 총 467명의 교수가 참여했다.
설문결과, 서울의대 소속 교수들(응답자 기준)은 96.5 “환자 곁을 지키고 싶다”고 했으나, 70.9%는 “현재의 진료를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힘들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진료유지가 24.3%, 환자 곁을 지키고 싶으나 힘들어서 진료 축소가 필요하다가 63.5%, 환자 곁을 지키고 싶으나 힘들어서 병원 이탈 고려가 7.4%, 사직 강행 3.5%, 기타 1.3% 순이었다. 전체적으로 환자 곁을 지키고 싶으나 진료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응답이 70.9%에 달하는 셈이다.
특히 3.5%가 아예 사직을 강행하겠다고 밝힌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전공의 이탈로 1명의 전문의료인력이 아쉬운 상황에서 국내 최고 대학병원의 교수 사직은 여타 병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편, 서울의대 비대위는 4일, 제3기 비대위 출범과 함께 비대위원장으로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강희경 교수를 선출했다. 제3기 비대위는 “95.5%의 동의로 새 비대원장이 선출됐다”고 설명했다.
설문에 참석한 교수들은 3기 비대위에 바라는 활동으로 ▲서울의대 의료개혁 준비단(TF)의 적극적인 활동과 역량 강화(82.0%), ▲의사단체와의 연계 강화(54.0%), ▲시민사회단체와의 연계(40.3%), ▲대정부 활동(33.2%), ▲강경한 투쟁(32.8%)을 꼽았다.(중복응답)
제3기 비대위는 이번 설문결과를 바탕으로 4월 30일 열린 심포지엄 내용과 향후 활동 방향을 담은 선언문을 4일 발표했다.
아래는 선언문 내용이다.
‘우리가 원하는 의료‘의 모습을 알려주세요
지난 4월 30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개최한 심포지엄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에서 저희 교수들은 환자, 의료소비자의 가감없는 쓴 소리를 들었습니다. 또한 그 분들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생생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시간을 내 주신 연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교수들에게도 낯선 정책들을 꿰뚫고 계신 환우회장님의 말씀에, 환자단체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쉽지 않은 의료 현안들을 하나씩 함께 풀어나가자는 제안에 우리는 부끄러워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의료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과연 교수 집단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지속가능하고 보다 나은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힘을 합치자는 너무나 당연한 제안을 우리는 왜 진작에 하지 못했을까요?
환우회장님께서 ‘고래싸움’이라 표현하신 몇 달 간의 의정 대치가 계속되는 동안, 교수들은 진료실과 수술실, 병실에서 환자 곁을 지키며 할 도리를 다 하고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료공백을 메우면서 동시에 정부 정책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데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에, 진료실에 들어오기 더욱 어려워진 환자들의 불안과 절망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무감한 정부는 환자분들의 속이 타 들어가도, 치료가 늦어져 결과가 나빠져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지만, 의사인 우리 교수들은 애가 탑니다. 환자분들이 더 편안하도록, 우리에게 아픈 몸을 맡김으로써 그분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보람이니까요.
이번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현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전공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련과정에서 만났던, 쉽게 호전되지 않는 환자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마음 아팠었는지, 그 환자가 회복되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들었습니다. 그들이 박봉과 고된 노동도 아랑곳 않고 수련에 매진했던 것은 장밋빛 미래의 밥그릇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으로 환자를 도울 수 있는 전문의가 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의료 체계의 정상화를 요구할 때 정부는 전공의에게서 근로자의 기본 권리조차 빼앗아갔지만, 면허정지와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그들을 아프게 하는 것은 국민과의 신뢰가 깨져버린 것이었습니다. 이 미래 의료의 전문가들이 몸바쳐 우리나라의 의료를 지탱해 오는 동안, 우리 교수들은 그들의 희생을 당연한 관행으로 치부해 왔습니다. 그들의 빈자리가 커진 후에야, 우리는 그동안 제자들을 제대로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들의 젊은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에 보다 집중해 왔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우리나라의 의료가 보다 나은 올바른 모습을 갖추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의료,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의료는 어떤 것일까요? 정부 정책의 불합리함을 알리고자 일터와 학교를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이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가 원하는 의료’가 이루어질까요? 아닐 것입니다. 멀리서 어렵게 찾아온 대형 병원에서 3분 진료로 아쉬워하며 돌아가야 하는 의료서비스, 내가 원하는 진료를 받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하는 의료체계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모습일 것입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는 우리 의료를 바로 세우는 진정한 의료개혁의 첫 단계로, 먼저 “우리가 원하는 의료서비스의 모습”을 파악하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원하는 의료의 모습을 알려주세요(snumed.org).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모아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점을 함께 파악하고 함께 해결하는, 올바른 방향을 정리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정부의 몫입니다. 5월 3일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96.5%의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은 환자 곁을 지키고 싶다고 했으나, 동시에 70.9%의 교수들은 현재의 진료를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힘들다고 합니다. 정부는 하루 빨리 전공의와 학생들에게 가하는 겁박을 거두어 이들이 일터로,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 바랍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모든 분야에서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의료 제도의 개선을 통해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보장하고 법적소송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변화시키는 것도 역시 정부의 책무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원하는, 환자와 의료소비자, 전문의와 전공의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올바른 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시작이 많이 늦어져 송구합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서울대학교병원 교수협의회 3기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강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