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는 코로나 등 감염병 확산을 계기로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게 높아짐에 따라 국내외 약물개발 현황 및 관련 기업들의 동향을 비중 있게 취재하고 있습니다. 본 뉴스가 독자 여러분의 건강관리와 투자 판단 등에 좋은 정보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주요 질환 치료제 시장이 포화상태로 분류되면서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희귀 질환 치료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중 일부 기업은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겸상적혈구빈혈증 치료제 개발에 앞다퉈 뛰어들면서 경쟁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겸상적혈구빈혈증은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글로빈 사슬 중 β 글로빈 사슬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인 글루탐산에 변이가 일어나 적혈구의 모양이 낫 모양으로 변형되는 질병이다. 낫 모양 적혈구빈혈증이라고도 불린다. 적혈구의 변형으로 산소와의 결합력이 감소하고 혈류에 영향을 주어 급성 흉부 증후군, 뇌졸중과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을 야기한다.
환자에게 치명적인 뇌손상을 야기하지만, 겸상적혈구빈혈증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은 없는 실정이다. 현재 허가된 겸상적혈구빈혈증 치료제는 화학 요법제 ‘드록시아(Droxia, 성분명: 하이드록시우레아·hydroxyurea)’와 ‘엔다리(Endari, 성분명: L-글루타민·L-glutamine)’가 있다.
하지만, ‘드록시아’는 백혈구 수 또는 혈소판 수를 감소시키거나 빈혈을 악화시킬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 ‘엔다리’의 경우, 증상 완화에만 효과 있을 뿐, 근본적인 치료제는 아니다.
겸상적혈구빈혈증에 대한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시장 규모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Allied Market Research)는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겸상적혈구빈혈증 진단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겸상적혈구빈혈증 치료제 시장은 오는 2031년에 16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그간 희귀질환 의약품은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시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각국 정부가 희귀 질환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정책적 혜택과 높은 약가, 독점권 등 파급적인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도 이 분야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특히 치료제 개발을 주도했던 중소 바이오 벤처 기업들 외에 미국 블루버드 바이오(Bluebird Bio)와 같은 중견 기업들이 개발에 합류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현재 2개 기업 완치제 개발 가장 앞서 ... 모두 유전자 치료제
현재 개발 중인 대표적인 겸상적혈구빈혈증 치료제로는 ▲미국 크리스퍼 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와 미국 버텍스 파마슈티컬스(Vertex Pharmaceuticals)의 유전자 편집 치료제 ‘엑사셀(exa-cel, 엑사감글로진 오토템셀·exagamglogene autotemcel)’과 ▲블루버드 바이오의 ‘로보셀(Lovo-cel, ,로보티베글로진 오토템셀·lovotibeglogene autotemcel)’이 꼽힌다.
#‘엑사셀’은 겸상적혈구빈혈증(SCD) 및 수혈 의존성 베타 지중해 빈혈(TDT) 치료를 위해 환자의 조혈모 세포를 체내에서 직접 편집하여 적혈구에서 높은 수준의 태아형 헤모글로빈(HbF)을 생성하도록 설계된 유전자 편집 치료제이다. 1회 투약으로 SCD 및 TDT를 완치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이 약물의 프로토타입(prototype, 시제품)은 유전자 편집 치료제 특화 기업인 크리스퍼가 처음 개발했다. 크리스퍼는 지난 2015년 유전자 편집 치료제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자금력을 갖춘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와 손을 잡으며 ‘엑사셀’을 공동 개발해 왔다.
양사는 지난해 9월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엑사셀’의 롤링 리뷰(rolling review) 서류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롤링 리뷰는 신약 승인 신청 시 관련 자료가 구비 되는대로 순차적으로 제출하는 것으로, FDA의 패스트트랙 제도에 따른 혜택이다. FDA는 지난 2019년 4월, ‘엑사셀’을 패스트트랙 개발 의약품으로 지정한 바 있다.
모든 서류 제출은 오는 3월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따라서 ‘엑사셀’의 신약 승인 절차가 순항할 경우, 빠르면 올해 하반기에 겸상적혈구빈혈증에 대한 최초의 완치제가 탄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로보셀’은 환자의 조혈모세포에서 유래된 β 글로빈을 재조합한 유전자 치료제이다. 항염증 헤모글로빈(HbAT87Q)을 생성하여 정상 기능의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고 용혈 등의 합병증을 감소시키도록 설계됐다.
두 약물의 차이점은 ‘로보셀’의 경우, 체외에서 유전자를 재조합한 후 환자에게 다시 이식하지만, ‘엑사셀’은 체내에서 표적 유전자를 직접 편집하는 기전이다.
블루버드 바이오는 10여 년에 걸쳐 ‘로보셀’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 2020년 3월에는 FDA 허가를 위한 임상 3상 시험(시험명: HGB-210)을 실시했다. 해당 시험은 2세에서 50세 사이의 겸상적혈구빈혈증 환자를 대상으로 ‘로보셀’을 평가한 연구였다.
하지만, 2021년 2월, 임상 환자에게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 및 골수이형성 증후군 이상반응이 보고되어 FDA는 ‘로보셀’에 대한 3건의 임상 연구에 보류 조치를 취했다.
이어 지난 2021년 12월에는 또다른 임상 도중 소아 환자에게서 급성 빈혈을 비롯한 혈액암 발병 징후가 관측되자 FDA는 18세 미만 환자에 대한 투약 중단 명령을 내렸다. FDA는 다만, 18세 이상 성인의 경우 임상 중단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여러 건의 임상을 진행하던 블루버드 바이오는 당시 FDA의 잇따른 임상 중단 조치로 ‘로보셀’ 개발 계획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그러나 임상 중단 조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FDA는 지난해 12월까지 ‘로보셀’의 모든 임상 보류 조치를 해제, ‘로보셀’ 개발에 힘을 실었다. 이에따라 블루버드 바이오는 올해 1분기에 환자 등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같은 추세라면 머지 않아 사상 최초의 겸상적혈구빈혈증을 치료할 수 있는 완치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