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인류의 건강을 가장 위협하는 질병은 단연 ‘암’이다. 우리나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전체 사망자의 26%는 암으로 사망하였는데, 이는 전체 질병 사망률 1위였다. 이에 항암제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많은 제품이 출시된 상황임에도 수많은 제약 업체들은 여전히 항암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서는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전략이 요구된다. 최근 업체들이 채택한 전략 중 하나는 희귀암 치료제 개발이다.
희귀암은 발생률이 다른 암종에 비해 극히 낮은 암을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희귀암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지만, 미국 국립 암 연구소(NCI)에 따르면, 10만 명 중 15명 미만에서 발생하는 암을 희귀암으로 정의한다. 해당 유형의 암은 전체 암 발생의 약 16%를 차지한다. 대표적인 희귀암은 신장암, 뇌종양, 췌장암 등이 있다.
그간 희귀암은 발생 빈도가 낮다는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로 인해 체계적인 연구가 매우 드물었고, 소수 기관에 의해 산발적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하지만, 첨단 과학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희귀암 진단 기술, 암 세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희귀암에 대한 인식이 점점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기존 항암제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희귀암 치료제가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했다. 현재 3세대 항암제인 면역 항암제의 경우, 중국 제약 기업들이 우후죽순 PD-L1을 표적하는 면역관문 억제제 개발에 나서면서 레드오션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반면, 희귀암 치료제 분야는 출시되는 순간, 최초이자 유일한 약제로 등극하면서 매출이 쏠리고 일정 기간 동안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 일례로, 지난 2021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된 미국 아디 바이오사이언스(Aadi Bioscience)의 혈관 주위 상피모양세포 종양 치료제 ‘파이아로(Fyarro)’는 지난해 152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는데, 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최대 2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19일 환율 기준 우리 돈 약 2조 5640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개발 성공률로 볼 때, 희귀암 치료제는 기존 항암제 대비 전망도 밝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항암제 개발의 성공률은 5%에 불과했지만, 희귀암은 15%에 달했다.
아이큐비아 데이터 연구소의 머레이 에이큰(Murray Aitken) 전무 이사는 “희귀암 치료제 파이프라인의 경우, 기존 항암제 파이프라인에 비해 임상시험의 목표가 더 명확하기 때문에 성공률이 더 높은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제약 업체들이 최근들어 희귀암 치료제 개발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아이큐아 분석한 결과, 2016년 대비 2021년 희귀암 임상 시험은 무려 5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희귀암 치료제는 주로 해외 제약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 에이치엘비도 개발 대열에 뛰어들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에이치엘비, 미국 계열사 통해 중피종 CAR-T 치료제 개발 중
이 회사가 개발하는 항암제 파이프라인은 중피종이다. 중피종은 주로 폐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 위나 간 등을 보호하는 복막, 심장을 싸고 있는 심막 등의 표면을 덮고 있는 중피에서 많이 발생하는 암이다. 흉막중피종·복막중피종·심막중피종 등으로 나뉘며, 이중 흉막중피종은 전체의 약 70%를 차지한다.
중피종은 초기에 발견될 경우, 제거술을 통해 완치를 기대할 수 있지만, 문제는 진단이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암은 잠복기간이 30년에 달하는데, 증상이 발현되면 환자의 기대 수명은 약 12개월에 불과할 정도로 예후가 매우 불량하다.
현재 승인된 치료법으로는 수술, 방사선 요법, 약물 요법이 있다. 이중 약물 요법에는 항암화학요법과 면역항암요법이 있다. 가장 최근 승인된 치료제는 미국 BMS의 CTLA-4 면역관문 억제제 ‘여보이’(Yervoy, 성분명: 이필리무맙·Ipilimumab)+PD-1 면역관문 억제제 ‘옵디보’(Opdivo, 성분명: 니볼루맙·nivolumab)의 병용요법이다.
하지만, 약물요법의 치료 효과는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여보이’+‘옵디보’의 3년 전체 생존율은 23.2%, 항암화학요법의 경우 15.4%로 이 두 약물 모두 효과적인 치료법이라고 볼 수 없다. 이에 에이치엘비는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CAR-T 세포 치료제 ‘SynKIR-110’을 개발하고 있다.
‘SynKIR-110’은 KIR-CAR 플랫폼 기술을 통해 개발된 CAR-T 치료제로, 전임상 시험에서 종양 미세 환경과 무관하게 고형암에서 지속적인 항종양 T 세포 활성을 보여주었다. CAR-T 치료제가 고형암에 작용하지 않는 점을 고려할 때, 고무적인 예비 효능을 입증한 셈이다.
이 약물의 개발은 에이치엘비의 미국 계열사 베리스모 테라퓨틱스(Verismo Therapeutics)가 주도하며, 메소텔린이 과발현된 중피종, 담관암, 난소암에 대한 치료제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베리스모는 별도로 재발 후 약물 무반응성을 보이는 혈액암에 대한 임상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