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 올해 초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켐비(Lequembi, 성분명: 레카네맙·lecanemab)’의 등장으로 치매치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장내 미생물 생태계 불균형을 통해 알츠하이머를 조기 진단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변의 표본을 통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성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활용되는 기술은 뇌 영상검사를 시행해야 하는 만큼, 이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진단의 편의성을 더욱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은 최근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통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성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14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공개됐다.
연구의 골자는 치매 발병 위험이 높은 사람을 식별하기 위해 개인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분석하고 인지 기능 저하를 막을 수 있도록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조정할 수 있는 치료법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장내 미생물은 우리 몸 속 미생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약 4000에서 1만 종 이상 존재하며, 총 세포 량은 사람 세포 수의 총합보다 10배 이상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내 미생물은 몸속 세포의 중요한 동반자로서 서로 긴밀하게 신호와 자극을 주고받으며 기능을 극대화하고, 인간이 외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장내 미생물의 생태계가 다양한 질병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은 수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아직까지 어떠한 기능을 통해 미생물과 각 조직이 상호작용하는 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해당 연구에 참여한 가우탐 단타스(Gautam Dantas) 유전체 의학 교수는 “장내 미생물이 뇌에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뇌가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면서도 “두 경우 모두에서 이러한 상호작용을 발견할 수 있다면 치매 치료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때 도출되는 가설은 장내 미생물 생태계 불균형이 치매 발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 경우 조작된 대변 표본, 혹은 미생물을 환자에게 다시 이식하고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변경시키면 질환 치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전망을 앉고 연구팀은 관련 알츠하이머 연구 센터의 지원을 통해 시험 참여자 164명을 모집했다. 모든 참가자들의 인지 기능은 겉보기에 정상이었다. 연구진은 참여자들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동일한 식단을 제공했고, 이후 대변, 혈액 및 뇌척수액 표본을 수집했다.
앞서 연구진은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 참여자와 건강한 참여자를 구별하기 위해 뇌 영상검사를 통해 베타 아밀로이드 및 타우 단백질 축적 여부를 탐색했다. 전체 참여자 164명 중 49명이 초기 알츠하이머 단계의 징후를 보였다.
그 결과, 건강한 사람과 초기 알츠하이머 단계 환자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식단을 섭취했음에도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서 상이한 박테리아 종들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건강한 사람 대비 큰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미 학계에서 알츠하이머 증상 발현 환자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불균형 상태를 보인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증상 발현 전 환자의 장내 생태계 불균형에 대한 유의미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알츠하이머 초기 단계 및 질병 진단 표적으로서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역할을 조명한다”며 “여기에서 생태계에 구성된 박테리아의 종을 변경하거나 배치를 뒤바꾸는 등의 조작을 통해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실험은 소규모, 단기간에 진행된 연구이므로, 실험의 범위를 대폭 확장하여 유효성을 확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실험에 참여하지 않은 한 전문가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무턱대고 접근할 경우, 다른 질병을 초래할 수도 있다”며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 알츠하이머의 인과 관계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은 연구 결과를 성숙시키기 위해 최대 5년 간 평가를 진행하는 후속 연구에 착수했다. 가우탐 단타스(Gautam Dantas) 교수는 “만약 장내 미생물 생태계 불균형이 알츠하이머 발병의 원인으로 확증될 경우, 생태계 불균형이 초래된 이유로는 장내 염증이 지목될 것”이라며 “박테리아는 장내 염증을 통해 신체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 불균형이 새로운 치료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새다. 단타스 교수는 “모든 것은 현재로서 추측에 불과하지만, 인과 관계가 밝혀질 경우 치매 치료에 있어 혁신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