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의 의약품 개발 역사는 질병과 싸워 온 인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 기업들에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헬스코리아뉴스 / 이충만]미국 머크(Merck)가 엡스타인 바 바이러스(EBV) 백신 후보 ‘MDX-2201’를 손에 넣으면서 특정 유형의 암 및 다발성 경화증 발병 위험을 크게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 EBV에 대한 백신 개발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머크는 8일(현지 시간), 미국 옵코 헬스(OPKO Health)와 EBV 백신 후보에 대한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에 따라 머크는 옵코 헬스 측에 계약금 5000만 달러(9일 환율 기준 약 659억 8000만 원), 향후 성과에 따라 8억 7250만 달러(1조 1513억 5100만 원) 등 최대 9억 달러(한화 약 1조 1878억 2000만 원) 규모의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
계약을 통해 머크가 확보한 백신 후보는 ‘MDX-2201’이다. 이 백신은 옵코 헬스의 자회사인 모드엑스 테라퓨틱스(ModeX Therapeutics)의 페리틴(결정성 단백질) 나노입자 백신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된 것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이같은 기술은 바이러스 표면에 최대 24개의 재조합 항원 복사본을 발현시켜 체내 보호 면역을 유도한다.
엡스타인 바 바이러스는 인간 헤르페스 바이러스(Herpes virus) 중 하나로, 대부분의 사람은 엡스타인 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일반적으로 면역 체계에 의해 조절되기 때문에 초기 감염 후에 두드러진 증상은 없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엡스타인 바 바이러스가 특정 유형의 암 혹은 다발성 경화증 발병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EBV 감염자 중 1% 남짓은 부르킷림프종(BL), 위암(GC), 호지킨림프종(HL), 비인두암(NPC) 발병 위험이 상존한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가 진행한 한 연구에서는 EBV 감염이 다발성 경화증을 발병 위험을 건강한 사람 대비 32배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위험 유형으로는 이식후 림프세포증식질환(PTLD)이 있다. 고형 장기 또는 조혈모 세포 이식 후 체내 거부 반응을 줄이기 위해 면역 억제제를 사용하는데, 이때 면역 기능이 약화된 환자들에게서 B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자라는 PTLD이 발생한다. PTLD 환자의 60~80%는 EBV 양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PTLD로 인해 B세포가 통제 불능으로 증식하면 혈액암 등이 발생한다. 현재 치료법은 ‘리툭시맙’ 또는 ‘리툭시맙’과 병용한 항앙화학요법이 쓰이지만, 이에 불응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재발성·불응성 PTLD 환자의 생존 기간은 조혈모 세포 이식군 0.7개월, 고형 장기 이식군 4.1개월에 불과하다.
이렇듯 EBV 감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가지만, 아직까지 EBV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뚜렷한 백신은 없는 실정이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감염 시 EBV 급성 위험 증상이 없는 점도 있지만, 그간 EBV 예방 백신 접근 전략의 패착이 백신 개발을 더디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20년간 EBV 백신 연구는 EBV 당단백질 gp350에 초점을 맞추었다. gp350은 EBV 표면에서 발현되는 주요 외피 단백질로, EBV 입자가 B세포 표면의 수용체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부착 현상에 필수적이다.
이전에 gp350 표적하는 EBV 백신 후보는 임상 2상 단계까지 실시된 바 있다. 시험 결과, 해당 백신은 EBV 급성 감염 증상인 전염성 단핵증을 효과적으로 감소시켰지만, 감염 자체를 예방하지는 못하면서 개발이 중단됐다.
현재 개발 중인 ‘MDX-2201’은 gp350에 새로운 항원 3종을 더하는 다중 표적 방식으로 면역원성을 더욱 높였다. EBV의 4가지 당단백질인 gH, gL, gp42, gp350의 부호화된 mRNA 복사본 항원을 전달하여 체내 면역 반응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B세포와 상피 세포의 감염을 억제한다.
머크는 ‘MDX-2201’ 확보 소식과 함께 자사의 백신 포트폴리오를 강조하며 백신 개발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날 타릿 무코파디야이(Tarit Mukhopadhyay) 머크 연구소의 감염성 질병 및 백신 사업부 부사장은 “머크는 암 유발 감염성 질환을 예방하는 뛰어난 자산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언급된 머크의 자산이란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가다실’(Gardasil)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가다실’은 2022년 56억 7300만 달러(한화 약 7조 4997억 600만 원)의 판매고를 올리며 PD-1 면역관문 억제제 ‘키트루다’(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pembrolizumab)에 이은 매출 2순위를 기록한 바 있다.
그는 “옵코 헬스와 협력하여 ‘MDX-2201’의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