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박민주]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제 1조의2)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 효과성 등 임상적 유용성, 비용 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사회적 편익 및 건강보험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해 요양급여대상의 여부를 결정한다. 급여 항목으로 지정될 경우 환자는 진료비의 상당 부분을 건강보험재정에서 지원받는다.
반면, 비급여 약제에 대해서는 환자가 전액을 부담하다보니, 고가 약제일수록 환자들의 불만이 높다. 현행 급여기준, 무엇이 문제인지 3회 걸쳐 짚어보았다. [편집자 주]

다른 질환과의 차별 등 불합리한 급여 기준은 골다공증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정특례에 대한 들쭉날쭉한 급여기준은 올해 뜨거운 이슈가 됐다.
중증 건선은 산정특례의 기준과 생물학적 제제의 급여 기준이 달라 환자단체가 개선을 요구해온 대표적인 질환이다. 강직석 척추염 등 다른 면역 질환의 경우 산정특례 기준과 치료제의 급여 기준이 동일한데, 중증 건선만 그 기준이 달라 차별 논란이 일었다. 앞서 살펴본 골다공증이 당뇨,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 비해 부당한 급여 기준이 적용되듯이, 중증 건선도 다른 면역 질환에 비해 부당한 산정특례 기준이 적용되고 있었던 것.
산정 특례는 치료로 인한 경제적 부담으로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운 희귀질환, 중증 난치성 질환자들의 본인 부담률을 10%로 경감시켜주는 제도다.
그런데 지난달 열린 보건복지부의 2021년 제2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중증 건선의 산정 특례 기준이 새롭게 정비되는 성과가 있었다. 여기에는 건선환자들이 모인 환자단체 한국건선협회의 역할이 컸다. 한건선협회가 앞장서 정부와 소통한 끝에, 중증 건선의 산정 특례 기준이 완화되면서 더 많은 환자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환자 단체의 요구에 따라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이 개정된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한국건선협회 김성기 대표를 만나, 산정특례 기준이 완화되기까지의 과정과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헬스코리아뉴스는 지난 14일 한국건선협회 김성기 회장과 만나 중증 건선 산정 특례 기준 개선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사진=박민주 기자]](/news/photo/202112/323690_192741_3546.jpg)
Q. 중증 건선의 산정 특례 기준이 완화됐다. 이전과 뭐가 달라 졌나?
A. 기존에는 중증 건선 산정특례 신규 등록을 위해 약물치료와 광선치료를 각 3개월씩 총 6개월 시행하고, 이후 중증도를 확인해야 했다. 재등록을 위해서는 생물학적제제 치료를 중단한 후 전신치료를 시행하고 이후 중증도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건정심에서 면역억제제인 메토트렉세이트, 사이클로스포린, 아시트레틴 또는 광선치료(PUVA, UVB) 중 2가지 이상의 치료를 선택해 6개월간 시행하고 중증도를 확인하면 산정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재등록은 치료 중단 없이 전문의 임상 소견만으로도 가능해졌다.
특히 광선치료 의무화에 대한 내용이 삭제된 게 가장 고무적이다. 광선치료는 보통 주 2~3회씩 내원해서 시행하는데, 직장생활 또는 학업을 제쳐두고 치료를 받는다는 게 쉽지 않다. 광선치료를 하는 병원도 많지 않고, 주로 대형병원에서 치료가 이뤄지기 때문에 환자들의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었다. 게다가 정작 치료는 3분 내외로 끝난다. 광선치료 의무화 내용이 삭제되면서, 더 많은 환자가 산정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될 거라고 본다.
Q. 중증건선 산정 특례 기준 개선은 환자 단체들의 주도하에 이뤄졌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A. 환자가 의사나 당국의 정책에 마냥 끌려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환자도 의료진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질환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있다. 우리는 건선을 직접 앓는 사람으로서, 질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환자들이 제대로 된 근거를 가지고 온다면, 의료진 또는 당국도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나의 논점을 두고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호 소통을 통해 보건의료 정책을 합리적으로 이끌어 나갔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Q. 정부와의 협상은 어떻게 이뤄졌나?
A.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3차례에 걸쳐 간담회를 진행했다. 환자들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게 쉽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는데,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무척 많은 도움을 주셨다.
1차 간담회에서 당국은 산정 특례 제정에서 건선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 다른 질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더라. 하지만 데이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서 데이터 분석을 직접 다시 해봤다. 도출된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반박하자, 당국에서도 자신들의 데이터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사실 데이터와 관련된 사건이 있으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당국과의 협상에 임하게 된 것 같다.
2차 간담회에서 당국은 산정 특례 재등록과 관련된 조항에 대해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신규 등록은 전문위원회의 회의를 거친 사안이기 때문에 기준 변경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전문위원회는 급여 기준도 설정하는 기관이다. 중증 건선은 다른 면역 질환과 다르게 산정특례 기준과 급여 기준이 다르다는 게 문제지 않았나. 기존 산정 특례 기준은 광선치료와 약물치료를 각 3개월씩 총 6개월 시행하고 중증도를 확인해야 하는 반면, 건선 치료제의 급여 적용을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 중 한 가지만 3개월 시행하면 된다.
같은 질환을 대상으로 설정한 기준이 이처럼 다르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 많이 답답했다. 왜 두 기준이 다르게 설정됐는지,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각 기준이 설정된 것인지 등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애초에 설정된 두 기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에, 전문위원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이어서 오목조목 따져가며 물었다. 당국 측에서도 어느정도 동의하더라.
이후 이뤄진 3차 간담회에서 마침내 상호 합의가 이뤄졌고, 당시 합의 내용이 지난 11월 열린 건정심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의결됐다. 내년 1월부터 는 개정된 중증 건선 산정특례 기준이 적용될 예정이다.
한국건선협회 김성기 대표가 지난 8월 6일 오후 강원도 원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앞에서 '차별적 산정 특례제도' 철회를 촉구하며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한국건선협회 제공]](/news/photo/202112/323690_192742_3658.jpg)
(오른쪽)한국건선협회 김성기 대표가 지난 8월 6일 오후 강원도 원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앞에서 '차별적 산정 특례제도' 철회를 촉구하며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한국건선협회 제공]
Q. 올해 원주에 있는 건보공단 본원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와 기자회견 등을 진행했다. 효과가 있었다고 보는지?
A. 매우 컸다고 본다. 1차 간담회를 마치고 나서, 뭔가 효과적인 액션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부는 사람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이나 거부감, 또는 방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1인 릴레이 시위를 추진하게 됐다. 당시 여름이었는데, 건보공단 비정규직 콜센터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와 관련된 파업이 진행 중이었다. 파업 중인 노동자들과 서로 유대감도 쌓을 수 있었고 좋은 기억이 많다.
1인 릴레이 시위를 시작한 지 2주 정도 됐을 때, 2차 간담회가 있었다. 사실 2차 간담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면 세종에 위치한 보건복지부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1차 간담회보다 훨씬 좋은 분위기로 마치게 되어서 시위를 마무리하게 됐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문케어 4주년 성과보고대회에서 중증 건선의 산정 특례 기준 완화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일이 있었는데, 릴레이 시위가 여기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Q. 한국건선협회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A. 건선은 환자 개인의 노력에 따른 관리가 무척 중요하다. 초기 건선 환자들이 발병 이후 빠르게 의사를 만나 치료를 시작하면, 중증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허들 캠페인을 통해서, 환자들이 중증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조기 치료를 독려하고자 한다.
나도 44년간 건선을 앓아왔지만, 치료와 관리 덕에 아직까지는 큰 부작용 없이 지내고 있다. 다른 건선 환자들이 중증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돕는 게 우리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환자 단체가 정책의 구심점에 서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 세력화까지 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환자 단체가 힘을 가지고 있어야 우리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낼 수 있다고 본다.
기존의 국내 보건의료 체계는 공급자 중심이었다고 생각한다. 환자 중심이 아니었는데, 의료 시스템이 환자를 위한 것으로 초점 이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공공보건의료 앞에 반드시 '환자 중심'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건의료 체계가 환자중심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