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로 산다는 것] “환자 줄었으니 오늘 나오지 말고 휴가 가라”
[간호사로 산다는 것] “환자 줄었으니 오늘 나오지 말고 휴가 가라”
병원계, 불규칙한 3교대 근무제에 갑작스런 근무표 변경까지 ... 교대근무자 보호 무색

보건의료노조 “최악의 교번제, 지속가능하지 않은 병원 교대근무제 개편작업 시작해야”
  • 박원진
  • admin@hkn24.com
  • 승인 2021.06.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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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종합병원 대학병원 외래예약 수납<br>
사진은 특정기사와 무관함. [출처=헬스코리아뉴스 D/B]

[헬스코리아뉴스 / 박원진] 병원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담당하는 업무의 특성상 24시간 근무가 불가피하다. D번(낮근무), E번(저녁근무), N번(밤근무) 등 3교대 근무가 교대로 이어지는 불규칙한 근무표는 생체리듬 파괴, 수면 부족과 불면증, 소화 불량 등 위장장애와 암을 포함한 각종 질병 유발, 대인관계 단절 등 정상적 생활이 어려운 직장이다.

이 같은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병원 노사는 단체협약에 교대근무자 보호 조항을 마련해두고 있다. 대표적인 교대근무자 보호 조항은 월 야간근무 개수 제한, 연속근무일수 제한, 근무와 근무 사이 휴게시간 보장, 야간근무 후 최소 휴식시간 보장, 파행근무표 편성 금지, 확정된 근무표(번표) 변경 금지, 밤근무에 따른 수면휴가 보장 등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교대근무자 보호조치는 구호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노조가 조합원이 조직돼 있는 의료기관 102곳에 대해 야간교대근무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조사결과를 보면, 근무표(번표)가 확정됐지만 갑자기 변경되는 사례가 많았다. 주로 병가, 조사, 청원휴가, 예정되지 않은 갑작스런 사직·사고,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자나 자가격리자 발생, 임신, 분만, 부서이동, 인사발령, 의사의 스케줄 변화, 갑작스런 이식환자 발생 등이 원인이다.

그런가하면, 환자나 각종 검사건수가 감소되었다는 이유로, 또는 입원환자가 입원을 취소했다는 이유로 당일 근무표를 갑자기 변경하여 휴가(응급OFF)를 강제로 부여하는 사례도 있었다.

충청도의 A사립대병원 근무자들은 “병동이나 중환자실 환자수가 적으면 응급OFF를 부여해 쉬게 하고, 나중에 개인 연차휴가로 처리한다”고 응답했다. 일정에도 없던 연차휴가를 강제로 사용하게 되는 셈이다.

이밖에도 연차휴가 소진을 촉진하기 위해 근무표를 갑자기 변경하는 사례도 있었고, 고연차·중간 연차·저연차의 연차 분포를 위해 근무표를 변경하는 사례도 있었다. 

환자감소를 이유로 응급OFF 통보 ... “계획된 삶을 살고 싶다”

응급OFF의 경우 황당한 사례가 많았다. 예고도 없다가 출근길에 갑자기 “환자가 줄었으니 오늘 나오지 마라”, “오늘 환자 없으니 출근하지 말라”는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다시 향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환자수에 비해 인원이 많다는 이유로 당일이나 하루 전날 연락하여 근무인원을 조정하는 경우도 있었고, 환자 중증도가 낮다는 이유로 응급OFF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었다.

충청남도 B지방의료원처럼 경영악화를 이유로 근무자수를 줄이면서 응급OFF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었고, 강원도 C지방의료원처럼 명절연휴에 입원환자가 줄거나 진료의사가 2일 이상 휴가를 가면 응급OFF를 부여하고 연차휴가를 소진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남권 D국립대병원의 경우 병상가동률이 50% 이하일 때 응급OFF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사 교섭을 통해 응급OFF를 금지하고 있는 곳도 있고, “병동환자의 단기간 감소를 이유로 다음날 병동 근무표상 인력을 변경하지 않는다”고 합의한 곳도 있지만 실제로 의료현장에서는 환자수 증감을 이유로 본인이 원하지 않는 시기에 강제로 연차휴가를 소비시키는 사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정에 없던 응급OFF로 간호사 등 병원 근무자들은 “계획된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실태조사에 응한 병원근무자들은 “본인 동의하에 변경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동의를 강요하는 것이다”, “개인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고 사실상 통보하는 식이다”, “응급OFF는 온전한 OFF라 볼 수 없다”, “반강제적인 연차휴가 소비 수단이 되고 있다”는 등 불만을 토로한다.

“근무표를 바꿔줘야 하는 사람이 바꿔줄 수 없는 상황일 때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긴다”, “직원들의 공감과 동의가 부족하여 갈등을 유발한다”며 고충을 호소하는 응답도 있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응급OFF로 인해 △개인 일정의 변경과 사생활 침해 △계획을 취소하거나 포기해야 하므로 삶의 질 저하 및 사기 저하 △휴식시간 감소와 피로도 증가 △일상생활의 어려움 △원치 않는 연차휴가 사용 △연차휴가가 필요하거나 아플 때, 쉬고 싶을 때 정작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등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라며 “휴가를 강제로 부여하는 일은 마땅히 사라져야한다”고 촉구했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급OFF는 개인적 어려움만이 아니라 △같이 근무하는 근무자들의 업무량 증가 △그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 발생 △불규칙한 수면과 생활 패턴 △근무표를 숙지하지 못해 발생하는 출근 오류 △근무조의 업무역량 조절 어려움 △업무과중 △업무분장의 어려움 △근무표 작성기준 위반 등 업무상의 문제점을 초래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파행근무 발생 △간호서비스의 질 저하 △응급상황 대처 미흡 등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 질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간호인력 부족을 이유로 근무조당 일하는 간호사를 줄여 근무표를 짜고 반강제적으로 휴가사용을 강제하는 바람에 업무는 과중되고 보상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연차휴가 사용을 수간호사가 임의로 강제하거나, 장기근속자 위주로 근무표를 작성하다 보니 신규간호사나 저연차 간호사들에게 근무 신청의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데 대한 불만도 높았다.

불규칙한 근무에 시달리고 있는 교대근무 간호사들은 “계획된 삶을 살고 싶다. 근무표 작성을 부서장이 권력처럼 휘두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상급자가 스케줄 변경을 임의로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며 정부에 대책마련을 원했다. 

수면휴가 악용하는 사례도 있어

교대노동자 보호조치로 시행되고 있는 수면휴가(sleeping off)제도 허점투성이였다. 교대근무자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해 많은 병원들이 수면휴가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병원들은 월 밤근무 개수가 일정 횟수(예 : 5회, 6회, 7회, 8회 등)에 도달하면 1일의 수면휴가를 부여하고 있다. 월 단위로 계산하는 곳도 있었지만, 월과 관계없이 밤근무 개수가 누적되어 일정 횟수에 도달하면 1일의 수면휴가를 부여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수면휴가제도 또한 시행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건의료노조의 의료현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누적이 아니라 월 야간근무 7개를 초과하는 경우에만 수면휴가를 부여하고 있어 실제 적용사례가 많지 않다”는 응답이 있었고, “수면휴가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근무표에 개인당 야간근무를 월 7개씩만 작성한다”, “수면휴가를 주지 않기 위해 야간근무수를 조절한다”는 사례도 있었다.

수면휴가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인천의 E사립대병원은 “야간근무를 줄이려는 노력 대신 수면휴가를 발생시키면서 인력이 부족한 부서에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이 나왔다. 응답자는 “병원측이 인력을 증원하는 것보다 수면휴가를 1개 더 주는 것이 이익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헬스코리아뉴스에 “야간교대근무제는 간호사들이 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이직률을 보이고 있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신규간호사의 45.5%가 1년 안에 이직하는 핵심이유이기도 하다”고 제도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대부분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3교대 근무제도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자동차산업에서는 아예 야간근무를 금지하기로 하고 주야 맞교대제를 주간연속 2교대제로 개편하여 시행하고 있고, 철도산업에서는 3조2교대제를 4조2교대제로 개편했다”며 삼성서울병원의 사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기존의 3교대 근무제도를 탈피하여 낮고정 근무, 저녁고정 근무, 낮-저녁 근무, 낮-야간근무, 저녁-야간 근무, 야간전담, 2교대제 등 7가지 근무제를 도입했다.

한편 오는 9월 산별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는 ‘인력부족 → 최악의 야간교대근무제 → 높은 이직 → 업무량 증가와 노동강도 강화 → 소진·이직 → 인력부족’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병원의 교대근무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하기 위해 “2021년을 최악의 병원 교대근무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방침 아래,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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