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지난해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가장 주목을 받았던 제약사는 GC녹십자다. 메르스처럼 소규모로 잠시 스쳐지나갈 것 같았던 코로나19가 예상과 달리 대유행(팬데믹) 조짐을 보이면서다.
그 해 5월18일 이 회사는 국민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만한 보도자료 하나를 언론에 배표했다. 제목은 “GC녹십자, 코로나19 치료제 전면 무상 공급 선언”이었다.
녹십자는 이 자료에서 “자사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혈장치료제 ‘GC5131A’를 국내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제공 하겠다”고 밝혔다.
“제약회사가 코로나19 치료제의 전면 무상공급을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업계에서 이윤을 포기하는 정도의 발표는 있었지만, GC녹십자의 결정은 금전적 손해를 감내하겠다는 것이어서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보도 참고용 문장도 빼놓지 않았다.
녹십자는 “‘GC5131A’는 코로나19 회복기 환자의 혈장(혈액의 액체 성분)에서 다양한 유효 면역 항체를 추출해서 만드는 의약품”이라며 “이와 같은 혈장 치료제는 신종 감염병 발발 시 가장 빠르게 투약 가능한 의약품으로 분류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녹십자의 발표는 말 그대로 파격이면서 감동이었다. 단순히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서 기업이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것이어서가 아니다. 팬데믹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이윤추구의 장으로 삼는 기업들이 적지않은 상황에서 치료제를, 그것도 수량제한이나 어떠한 전제조건도 없이 무상공급 하겠다는 발표였으니 이 보다 더 감동적일 수는 없었다. 언론들도 방송, 신문, 인터넷 할 것 없이 앞 다퉈 대서특필했다.
녹십자의 이날 무상공급 선언은 우리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워낙 심각한 유행병이 우려되는 터라, 당시 상황에서 이 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설마? 그래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데?”라는 반응도 없지 않았지만, 이런 의구심은 녹십자 보도자료의 위력(?)을 넘지 못했다.
녹십자는 보도자료 말미에 친히 허은철 사장의 멘트까지 첨부했다. “사상 초유의 감염병 치료를 위해 쓰이는 의약품은 오롯이 국민 보건 안정화를 위해 쓰이는 것이 온당하다. 코로나19를 극복한 우리나라 국민의 힘을 한데 모아 만들어지는 혈장치료제 플랫폼은 금전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내용 이었다.
이 정도면 녹십자 발표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일말의 불신도 파고들 여지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녹십자의 무상공급 약속은 ‘허풍 아닌 허풍’이 되고 말았다. 무상공급 자체는 계획대로 진행한다 치더라도 “가장 빠르게 투약 가능한 의약품”이라는 호언장담은 이미 지킬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연내 승인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던 이 치료제는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뀐 지금까지 식약처에 품목허가 신청소식조차 없다. 이달 중 조건부 승인을 신청할 것이란 예상이 전부다.
감염병은 특성상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품목허가를 받는다 해도 기대했던 코로나19 치료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혈장치료제는 완치자의 혈장을 확보해야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생산에도 한계가 있다.
그 사이 국내에서는 셀트리온의 ‘렉키로나’주가 국내 1호 코로나19치료제로 개발돼 식약처의 정식승인을 받았고 종근당의 코로나19 치료제 ‘나파벨탄’주는 품목허가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임상 2상 결과를 토대로 식약처 승인신청까지는 성공했다. 이 치료제는 최근 식약처 임상3상 승인까지 받아놓은 상태다. 국가마다 차이는 있으나, 글로벌 기업들이 개발한 백신 접종이 이미 집단면역 형성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런 가운데 전해진 혈장치료제 글로벌 임상3상 실패 소식은 녹십자의 혈장치료제 개발과 관련, 물음표 하나를 더 달아주는 격이 됐다.
‘코로나19 혈장치료제 개발 얼라이언스'(CoVIg-19 Plasma Alliance)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임상은 시험대상자가 600명으로, 불과 60명을 대상으로 하는 녹십자의 국내 임상과는 규모나 진척도 면에서 한층 앞서 있는 것이다.
연합체가 개발을 추진했던 이 혈장치료제는 GC녹십자의 코로나19 혈장치료제와 사실상 같은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이목을 끌었다. 녹십자는 자사의 임상과 글로벌 임상은 별개라는 입장이지만, 과연 그럴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다.
결과야 어찌됐든 녹십자는 국내의 대표적인 코로나19 수혜주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지난 1년간 이 회사의 주가는 무려 4배 가까이 올랐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상공급’ 카드도 한몫을 했다고 아니할 수 없다. 여타 업종과 마찬가지로 제약사 역시, 소비자의 신뢰를 먹고 사는 기업이라는 점에서다. 녹십자에 열광하는 투자자들이 이런 신뢰를 놓칠 리 없다.
한 가지 허탈한 것은 국민적 기대감을 그토록 끌어 올렸던 무상공급 혈장치료제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속에 개발이 추진되고 있음에도 지금 이 순간 우리곁에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