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가장 잘 아는 건축가
병원을 가장 잘 아는 건축가
[인터뷰] 임진우 ㈜정림건축사무소 디자인총괄사장

이대서울병원 설계해 ‘2020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 수상

2006년 세브란스새병원 설계로 병원 건축 트렌드 바꿔

"병원은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는 곳"

‘병원 같지 않은 병원’ 만들기 위해 노력
  • 서정필
  • admin@hkn24.com
  • 승인 2020.12.2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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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총괄사장을 지난 21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임진우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총괄사장을 최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헬스코리아뉴스 / 서정필] “그림 그리는 시간만큼은 머릿속을 리셋할 수 있어서 유익하다. 일종의 정신세계 속 여백을 만드는 일이다. 부디 많은 분들이 나의 ‘감성풍경화첩’을 통하여 마음속에 여백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지난 5월 6일부터 7월 31일끼지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이대서울병원에서는 ‘임진우의 감성풍경화첩’ 전시전이 진행됐다. 임진우 작가는 당시 전시회를 시작하는 기대를 이렇게 담았다

어쩌면 병원은 가장 여백이 없는 곳일지 모른다. 생사를 다투는 치료 공간에서 여백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그런데도 그는 병원이라는 공간에 여백을 그려냈고 활기와 여유를 불어넣었다. 임진우 작가는 다름아닌 ㈜정림건축의 디자인총괄사장이다.

임 작가는 내로라하는 대형병원 설계자로 유명하다. 국내 대학병원 가운데 가장 최근에 들어선 이대서울병원은 물론, 이화여대 의과대학, 신촌세브란스 새병원, 동국대일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신관 등이 모두 그가 설계한 건물이다. 이밖에도 1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장, 현대해상 하이비전센터, 서울드레곤시티, 삼성디스커버리센터, 강남권광역복합환승센터, 아모레퍼시픽 뷰티 제2사업장, 대구은행 제2본점, 스타필드 하남 등 수없이 많은 유명 건축물들이 정림건축에서 탄생했다. 

이 가운데 신촌세브란스 새병원과 이대서울병원은 각각 2006년과 2020년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정림건축은 국내 1위, 세계 16위(2016년 영국건축전문지 월드 아키텍처World Architecture 100 선정) 규모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건축설계사무소다.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최근 임진우 사장을 만났다. 

 

이대서울병원으로 2020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 수상

임진우 사장이 설계과정에서 직접 그린 이대서울병원

Q. 시간은 좀 흘렀지만 먼저 수상 축하드립니다. 이대서울병원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촬영지로도 선택되는 등 아름다운 병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병원 설계를 맡게 되셨는지요?

“2013년 9월에 이화여대 측에서 지명현상공모(특정 건축사무소를 지명해서 공모에 참여할 것인지 의향을 물음)를 했지요. 저희와 함께 이전에 병원 건축 경험이 있는 다섯 사무실 정도가 지명을 받았는데, 그해 12월 프리젠테이션에서 저희 발표 내용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아서 우선협상대상자가 됐습니다. 사실상 파트너가 된 것이지요. 그리고 설계는 2014년부터 이뤄졌고요. 같은 해 땅 파는 작업 시작하면서 설계를 계속 병행했습니다.”

Q. 병원과 의과대학 두 건물 설계 과정에서 가장 많이 고려했던 점은 무엇인가요?

이대서울병원

“우선 어디를 비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향후 증축이 예정돼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부지 중 어딘가를 비워야 하는데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병원을 도로 쪽에 붙이고 두 건물 사이를 비우는 것과 도로 쪽을 비우고 두 건물을 가깝게 붙이는 선택지가 있었는데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었어요.

만약 병원을 도로 쪽에 붙였다면 향후 두 건물 가운데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도 처음과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대신 두 건물 사이가 멀어진다는 단점이 있었고요. 지금처럼 건물 앞을 비우면 나중에 새 건물이 들어선 후 일관성을 해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고민 끝에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현재 도로와 이대서울병원 사이 공개공지에는 공원과 분수대가 자리잡았고 수변 길을 따라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환자나 의료진만이 아닌 발산역 직장인과 거주자들의 훌륭한 휴식 공간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Q. 건물 높이와 길이 제한 문제도 해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위치가 김포공항과 가까워 높이와 수평길이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동의 효율적 배치를 위해 건물 가운데 거대한 중정(中庭)을 고안했습니다. 보통 1000병상 이상 대형병원의 경우 지상 20~23층 높이로 지어지는데요. 이대서울병원이 들어선 마곡지구는 지구단위 계획상 건물 높이와 수평 길이 제한이 까다로웠습니다. 특히 병원은 일반 건물보다 층고(한 층의 높이)가 높은 탓에 최대 10층까지밖에 건물을 올릴 수 없고 수평으로도 3층 이하는 150m, 4층부터는 100m 이하로 그 길이가 제한돼 있습니다.

정해진 조건 내에서 병동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안을 고민한 끝에 선택한 것이 중정입니다. 건물 가운데 중정을 두는 ‘ㅁ’자 구조를 택해 병동과 병동 간의 거리를 최대한으로 넓히고 각 병실의 채광을 최대한으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병동 층의 경우, 보통 한 층에 간호사 스테이션 두 개가 있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대서울병원은 한 층에 간호사 스테이션을 네 군데 넣는 대신 동선 등에서의 불편함을 가장 줄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병원과 의대건물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네트워킹할 것인가, 그리고 특히 여성진료에 있어 최초, 최고라는 ‘이화’가 가지는 정신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이외에도 이 정도 규모의 병원이면 고려해야 할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건물 중에 가장 극한의 복잡도를 가진 곳이 종합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을 만들자”

Q. 2006년 건립된 세브란스 새병원을 시작으로 분당서울대병원 신관 등 여러 병원을 설계하셨습니다. 병원 설계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임진우 사장이 직접 그린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새병원 스케치
임진우 사장이 직접 그린 한 종합병원의 스케치

“세브란스 새병원 설계하면서 다른 종합병원들과 차별화된 새로운 병원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시 종합병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부터 조사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했지요. 지금까지 병원 하면 느껴지던 것들을 최대한 덜 느껴지게 하는 게 핵심이라고 봤지요. ‘병원같지 않은 병원’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세브란스 새병원부터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을 비롯해 ‘내 집처럼 편안한 병원’, ‘환자 중심의 병원’을 설계 시 가장 중요한 점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시 중앙진료동과 외래진료동을 조형적으로 구분하고, 그 사이에 대규모 아트리움을 만들어서 밝고 쾌적한 휴게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환자가 병원 내에서 이동할 때 최대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임진우 사장은 지난 2011년 출간된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부키)라는 책에서 2006년 세브란스 새병원 설계 당시 떠올린 종합병원의 이미지에 대해 다음 일곱 가지로 정리했다.

▲ 사람들이 북적대고 붐벼서 시끄러운 대기실
▲ 복잡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병원 로비
▲ 불친절하거나 성의 없는 간호사의 응대
▲ 알 수 없는 어려운 용어만 남발하는 거만한 의사
▲ 하나같이 TV만 들여다보는 몰개성적인 환자들과 간병에 지친 가족들
▲ 쉴 곳 없는 공간과 소독약 냄새 나는 어두운 복도
▲ 방음, 차음이 되지 않아 여기저기서 새어 나오는 신음과 절규

 

이젠 병원도 근거 중심 디자인 시대

이대서울병원 전경
이대서울병원 전경

Q. 세브란스 새병원 설계 이후 벌써 14년이 흘렀습니다. 최근 병원 설계에서 새롭게 중요시되는 요소가 있을까요?


“과거에 비해 근거중심디자인(EvidenceBased Design) 개념이 특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IT의 발달로 여러 가지 빅데이터 수집이 가능해졌고 그 빅데이터들이 실제 병원 설계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인데요.

예를 들면 하루 간호사 동선이 어느 수준 이상이면 이직률이 급격히 높아진다거나, 설계 시 어느 재료를 쓸 경우 미끄러짐이나 낙상 사고 확률이 어느 정도다 라는 것이지요. 이번 이대서울병원 설계 과정에서도 빅데이터 기술을 통해 수집한 다양한 근거들이 고려됐습니다.”

 

“병원은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는 곳”

이대서울병원 아트리움

Q. 그동안 수많은 유명 건축물을 설계해 오셨는데, 병원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병원은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는 곳이고 생각합니다. 보통은 병원 하면 ‘빠름’을 먼저 떠올리지요. 빠르게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게 병원의 존재 이유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빠름’은 응급센터와 진료동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고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동으로 가게 되면 지루할 정도로 시간이 더디게 갑니다.

 

자연채광이 드는 이대서울병원 입원실

무엇보다 병원이라는 곳은 좀 더 긴 호흡의 ‘치유’와 ‘회복’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병원의 치료 기능적인 측면뿐 아니라 입원 환자가 어떻게 하면 정신적으로 편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병실에서나 햇빛을 볼 수 있게 했고 대규모 아트리움도 설치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설계한 병원들의 1층은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치 쇼핑몰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인데요. 병원이 머물면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고 어서 진료만 마치고 빨리 떠나고 싶은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최대한 뻥 뚫리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병원은 누군가에게는 느리게 몸의 병을 고치며 건강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곳이니까요.”

 

임진우 사장 집무실에 있는 이대서울병원 모형

 

임진우 사장은...

충북대학교,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 전공 / 고려대학교 건축학부 외래교수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부회장 / 해비타트 서울지회 이사 / 대한건축사협회, 에이펙건축사협회, 대한건축가협회, 한국의료복지시설학회 정회원 / 서울시건축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및 안양시건축문화상 수상

주요 작품 : 봉원교회, 한국야쿠르트 본사사옥, 석유개발센터, 한국가스공사사옥,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새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신관, 동국대 일산병원, 청와대 제3별관, 기독교TV 멀티미디어센터, 할렐루야교회, 이대서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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