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 드러나는 식약처 조건부 허가의 '함정'
속속 드러나는 식약처 조건부 허가의 '함정'
한국릴리 '라트루보' 임상3상 실패로 결국 허가 취소

녹십자 '한타박스' 허가후 임상 3상까지 28년 걸려

조건부허가 논란 매년 되풀이 ... 국내 제약사 약속 위반 다반사

"신약 접근성 우선으로 문제 발생 … 안전성·유효성과 균형 맞춰야"
  • 이순호
  • admin@hkn24.com
  • 승인 2020.11.13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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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의 연조직 육종 치료 신약 '라트루보'

[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3상 임상 시험에서 효과 입증에 실패한 일라이 릴리의 연조직 육종 치료 신약 '라트루보'(올라라투맙)가 유럽과 미국에 이어 국내 시장에서도 철수했다.

일라이 릴리의 한국 법인인 한국릴리는 12일 '라트루보'의 품목 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지난 2017년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획득한 지 3년 8개월여 만이다. 

'라트루보'는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단일클론항체 약물이다. 혈소판-유래 성장인자 수용체 알파(PDGFR-α)와 선택적으로 결합해 신호전달경로를 차단, 종양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기전이다. 40년 만에 등장한 연조직육종 신약이어서, 출시 당시 환자와 의료진 등으로부터 큰 기대를 받았다.

'라트루보'는 진행성 연조직육종 환자 133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JGDG 임상2상 결과에 근거해 2016년 10월과 다음 달인 11월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이후 국내에서도 이와 동일한 임상 시험에 근거해 조건부 허가를 획득했다.

릴리는 해당 임상2상 시험에서 '라트루보' 및 독소루비신 병용요법과 표준요법인 독소루비신 단독요법을 비교했다. 그 결과, '라트루보' 병용요법의 전체 생존 기간은 26.5개월로 독소루비신 단독요법(14.7개월)보다 11.8개월 더 길었다. 무진행 생존 기간도 독소루비신 단독투여(4.1개월)보다 2.5개월 긴 6.6개월로 나타났다.

릴리는 조건부 허가 이후 정식 허가 요건을 만족하기 위해 ANNOUNCE 임상3상 시험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 시험의 결과는 JGDG 임상2상과 달랐다. '라트루보'와 독소루비신 병용요법이 독소루비신 단독용법보다 생존기간을 연장하지 못한 것이다.

FDA(미 식품의약국)와 EMA(유럽의약품청)에 따르면, ANNOUNCE 임상3상 시험에서 전체 피험자의 생존 기간 중앙값은 '라트루보'와 독소루비신 병용요법이 20.4개월, 독소루비신 단독요법이 19.7개월(HR 1.05)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평활근육종 하위그룹에서는 생존 기간 중앙값이 각각 21.6개월, 21.9개월(HR 0.95)로, 오히려 독소루비신 단독요법이 더 길었다. 

'라트루보'가 해당 임상시험에서 일차평가변수(생존 기간 연장)를 달성하지 못하자, 미국 FDA와 유럽 EMA에는 비상이 걸렸다. 양 기관은 지난해 1월 '라트루보'의 처방을 금지했으며, 특히 EMA는 같은 해 4월 릴리에 '라트루보'의 허가 철회를 권고했다.

릴리는 결국 2019년 7월 '라트루보'의 유럽 품목허가를 철회했다. 이로부터 2개월 뒤 미국에서도 품목허가 철회를 신청했으며, 올해 2월 허가 철회가 승인됐다.

국내 식약처도 EMA나 FDA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1월 '라트루보'의 신규 처방을 금지했다. '라트루보'를 투여하던 기존 환자의 경우, 약물의 위험성과 임상3상 결과를 들은 다음에도 투여를 원하면 보건당국과 협의 하에 약물 공급을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릴리 측이 식약처에 '라트루보'의 시장 철수 계획을 알렸으나, 기존 환자에 대한 처방이 이뤄지고 있던 만큼 식약처는 한국릴리와 허가 취하 시기를 조율해 왔다.

 

'라트루보'로 드러난 조건부허가 취약점 
"요건 강화해야" 지적 끊이지 않아
국내 제약사, 조건부허가 후 임상3상 '차일피일'
GC녹십자 '한타박스' 대표적 사례

이번 '라트루보' 사태는 조건부 허가 제도의 취약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조건부 허가 제도(국내 기준)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거나 현존 치료법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항암제, 희귀의약품 등) 환자에게 신속한 치료 기회를 제공할 목적으로 임상2상 시험 결과만으로 허가를 내주는 제도다. 시판 허가를 획득한 뒤 제품을 판매하면서 임상3상 시험을 진행해 결과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조건이다.

따라서 신약에 대한 환자들의 접근성은 높아지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차후 임상3상에서 효과를 보이지 않거나 안전성 문제가 드러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허가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GC녹십자 유행성출혈열 백신 ‘한타박스‘
GC녹십자 유행성출혈열 백신 ‘한타박스‘

그나마 다국적 제약사들은 국내 허가와 글로벌 허가가 맞물려 있는 만큼 임상3상 시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다. 그러나, 국내 제약사들은 조건부 허가를 받은 뒤 임상3상 시험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다.

GC녹십자의 '한타박스'가 대표적이다.

지난 1990년 조건부 허가를 받은 GC녹십자의 유행성 출혈열(신증후성 출혈열) 예방 백신 '한타박스'는 임상3상 시험을 완료하는 데까지 무려 28년이나 걸렸다. 식약처가 특정기업에 특혜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법도 한 대목이다.  

GC녹십자가 '한타박스' 조건부 허가 후 임상3상 시험을 진행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회사 측은 앞서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한타박스'의 임상3상 시험을 진행한 바 있으나, 장기면역원성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이마저 조건부 허가 후 17년이 지나서야 임상3상을 시작한 것이다. 회사 측은 "피험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은 결과"라고 주장했지만, 임상3상 진입까지 17년이나 걸린 것에 대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양승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현 충남지사)은 2014년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한타박스'는 사실상 20년 넘게 제대로 약효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다"며 보건당국의 안이한 대처를 질타했다.

그런데도 식약처는 "2017년 8월15일까지 '한타박스' 임상시험 결과를 다시 제출하라"며 GC녹십자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대체 약물이 없다는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서 GC녹십자는 '한타박스' 임상시험 계획서를 제출하면서 항체양전율 기준값을 44%로 설정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가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항체양전율은 항체가 생성되는 비율이다. 예를 들어 10명에게 백신을 투여해 5명에서 항체가 확인되면 항체양전율은 50%가 된다.

중앙약심은 "중국의 다른 신증후출혈열 백신 중 제일 낮은 항체양전율이 53%"라고 꼬집으면서 '한타박스'의 임상시험 항체양전율 기준값을 55%로 상향했다. 접종 횟수도 기존 3회(기본 2회 + 추가 1회)에서 4회(기본 3회 + 추가 1회)로 늘어났다. 앞선 임상시험에서 3회 접종으로는 만족할 만한 항체양전율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한타박스'의 항체양전율은 기본접종 2회 후 28.44%였으며 추가접종 1회까지 마친 후에는 52%였다.

GC녹십자는 결국 중앙약심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임상3상 시험을 다시 진행했고, 2018년 마침내 '한타박스'의 조건부 꼬리표를 뗄 수 있었다. 

 

의약품 조건부허가 논란 지금도 계속
신청만 하면 통과? … 승인률 94%
"신약 접근성 높지만, 안전성·유효성 딜레마"

의약품 조건부 허가 논란은 '한타박스'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8년에는 일양약품이 2012년 조건부 허가를 받은 국산 신약 18호이자 만성골수성백혈병치료제 '슈펙트'(라도티닙)의 임상3상 시험 결과 자료를 제출하지 못해 허가 당시 최초로 부여받은 적응증인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2차 치료'가 삭제됐다. 

일양약품은 환자모집이 어렵다는 이유로 조건부 허가를 받은 뒤 6년 가까이 지나서야 임상3상 시험 승인을 신청했고, 중앙약심은 "일양약품이 적응증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지난해에는 국산 신약 29호이자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로 조건부 허가를 받은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의 품목허가가 취소돼 큰 충격을 던졌다. 주성분이 허가 시 제출했던 성분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보사'는 사람 연골세포가 담긴 1액과 연골세포 성장인자(TGF-β1)를 도입한 형질 전환 세포가 담긴 2액으로 구성된 주사액인데, 2액이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에 기재된 연골 세포가 아닌 신장세포로 확인됐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인보사' 조건부 허가 시 제출했던 자료도 허위로 밝혀졌다. 

올해는 국산 신약 21호인 삼성제약의 췌장암 취료제 '리아백스'의 조건부 허가가 논란이다.

이 제품은 지난 2015년 식약처로부터 조건부 허가를 받았는데, 5년이 지난 올해 3월까지 임상3상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품목허가가 취소됐다. 여기에 조건부 허가 과정에서 특혜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부실 허가라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일양약품 '슈펙트',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삼성제약 '리아백스'
(왼쪽부터) 일양약품 슈펙트,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삼성제약 '리아백스'

이처럼 조건부 허가와 관련한 잡음이 수년째 계속되자 국회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월 열린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최근 5년간 임상3상 조건부 허가 신청 및 통과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 34건 중 2건을 제외한 32건(94.1%)이 허가됐다"며 "이 중 8개(25%)가 현재 시점으로 생산실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건부 허가 관련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논란이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어 상위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며 "임상시험 관련 ‘허가조건 부관 의약품’의 관리 업무 관련 상세 관리방안 개정을 통해 근본적 문제점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조건부 허가'는 빠른 신약 접근성이라는 장점과 안전성·유효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균형을 잘 맞춰야 하는데 식약처는 빠른 접근성에 더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며 "일부 국산 신약의 경우에는 무리해서 조건부 허가를 내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안전성이나 유효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조건부 허가와 관련해 중앙약심에 대한 의존성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문제"라며 "'인보사'의 조건부 허가도 중앙약심에서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다가 얼마 안 가 뒤집혔다. 표준이 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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