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요즘 제약업계 분위기는 '설상가상'이다. 코로나 사태와 의료계 파업으로 영업 활동이 위축되면서 실적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의·약사 단체 간 힘겨루기로 번질 수 있는 약사법 개정안이 추진되고 있어 그 불똥이 제약업계에 튀지 않을까 불안하다. 지난 5월 폐지됐던 공동생동 규제안도 국회에서 부활해 제약사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지난 2일 처방전을 받은 약사가 의사 대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대체조제 사실을 통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약사법은 약사가 처방전에 기재된 의약품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생물학적 동등성이 있다고 인정한 품목으로 대체조제하는 경우, 환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그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나 치과의사에게 1일(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3일) 이내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약사가 대제조제 사실을 의사와 치과의사는 물론, 심평원에도 통보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확대하고, 통보를 받은 심평원은 처방을 내린 의사나 치과의사에게 대체조제 사실을 알리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대체조제 통보를 심평원에 하면 의사들과 의견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사라지는 만큼, 대체조제가 지금보다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 서 의원의 주장이다.
이 개정안은 지난 2015년 19대 국회에서 최동익 전 새정치민주연합(現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던 약사법 개정안과 동일하다. 해당 약사법 개정안은 의료계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폐기됐는데, 서 의원이 이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의료계는 이번 개정안을 약사 사회가 추진하려는 '성분명처방'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서 의원은 부산시약사회장을 역임한 약사 출신이어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곱지않은 시선도 있다. 의료계는 아직 공식 의견 표명을 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파업 문제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나면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일부 의사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발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직능 간 갈등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제약업계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개정안이 통과돼 대체조제가 활성화되면 약국 영업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처방을 내린 병원에는 미운털이 박혀 영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 병원과 약국 모두를 고객으로 둔 제약사들 입장에서는 어느 편을 들기도 애매한 상황으로, 자칫 '줄 서기'를 잘못했다가는 거래처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A제약사 관계자는 "제약사들 입장에서는 이도 저도 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양측의 눈치를 잘 살피면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서 의원은 대체조제 활성화 법안을 발의하기 하루 전인 지난 1일, 공동(위탁)생동 규제안이 포함된 약사법 개정안도 대표 발의했다.
공동(위탁)생동 규제안은 오리지널 의약품 1개당 위탁 제네릭을 3개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당초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개정안이지만, 규제개혁위원회의 철회 권고에 따라 지난 5월 폐지됐다.
이 개정안은 제약사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법안이어서 당시 제약업계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번에 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행정부가 아닌 국회에서 추진하는 법안으로,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그대로 법제화된다.
현재 여당의 의석수는 176석이다. 국회 전체 의석(300석)의 절반을 훌쩍 넘는 만큼, 개정안이 법안소위만 통과하면 야당과 협의 없이도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B제약사 관계자는 "안 그래도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와 의사뿐 아니라 국회와 약사들 눈치까지 더 보게 생겼다. 불똥이라도 안 튀면 다행"이라며 "공동생동 규제안의 경우, 제약업계에서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의견이 갈리는 사안이어서 업계 내부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