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전면 투쟁을 선포했다. 의협은 그 일환으로 23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여당을 향해 의사 인력 증원 추진계획 중단을 촉구하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협은 대의원 총회 의결(서면결의)을 거쳐 다음달 14일이나 18일 중 하루를 선택해 전국 의사 총파업에 돌입하고 상황에 따라 대정부 압박수위를 높여간다는 방침이다.
앞서 의협이 지난 14일~21일 진행한 2만6809명의 회원 설문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2.6%가 전면투쟁 선언과 전국적 집단행동을 지지했고, 29.4%는 수위를 점차 높이는 방식의 단계별 투쟁을, 23.0%는 의협의 결정방식에 따르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의협은 이번 설문결과를 두고 “전체 응답자의 95%가 투쟁의지를 내비쳤다”며 대정부 압박 수단으로 삼겠다는 방침이지만,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이라는 정부 정책을 되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의협의 대정부 투쟁방침은 의료계 내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의료의 한 축인 병원계는 연간 400명(10년간 4000명) 이라는 정부의 의사인력 증원계획에 난색을 표한다.
대한병원협회는 23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연간 400명의 의대 입학정원 증원으로는 의료현장의 인력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연간 최소 500명을 증원하더라도 오는 2065년에나 의사 수급이 적정 시점에 도달하게 된다”고 호소했다.
의사수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병원계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간호계와 시민단체들 역시 “현재 우리나라 의사인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OECD 기준, 국내 의사수는 7만4000명이 부족하다”며 “당정은 의사 눈치보기를 중단하고, 공공의대 신설 등 과감하게 의사정원을 확대하라”고 촉구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지난 22일 내놓은 ‘OECD 보건통계 2020’ 분석자료를 보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국가 중 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는 올해 ‘OECD 보건통계’에 실린 2018년 자료를 분석한 것으로,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우리나라의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4명이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인 3.5명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다. 우리보다 의사 수가 적은 나라는 콜롬비아(2.2명), 폴란드(2.4명) 뿐이었다. 의사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오스트리아로 5.2명이었다.
의협은 의사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역별 불균형이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국민적 여론도 의협의 이런 주장에는 호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의사들의 의대정원 확대 반대를 ‘밥그릇 챙기기’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무엇보다 이번 총파업이 코로나19 사태 속에 이뤄진다는 점은 의사협회 집행부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 대다수가 이번 코로나 극복을 “의료진 덕분” 이라고 여기는 상황에서 개원가 의사들이 파업에 나설 경우 국민 여론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의협의 이번 총파업 투쟁이 ‘고립무원의 외로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총파업이 성공을 거두려면, 무엇보다 의료계 내부의 단합이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으로는 얼마나 많은 의사가 참여할지도 회의적이다.
이번 설문을 보더라도 조사 참여 의사가 2만7000여명에 그쳤다. 병원 종사자를 포함해 10만명이 넘는 전체 의사수(치과의사·한의사 제외)를 감안하면 강력한 투쟁 동력을 얻기에는 이미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뿐만아니라, 설문에 참여한 의사들의 대다수가 총파업에 참여한다는 보장도 없다.
만약 소수의 의사들이 파업에 참여한다면 정부를 설득하기는커녕, 오히려 의대정원 확대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현 집행부의 리더십에 상처만 내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현 집행부 교체론까지 불거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현 최대집 집행부는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보건의료정책과 관련,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온 터다. 이 때문에 대화와 타협없는 강성 집행부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현 집행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법과 원칙을 앞세워 강력 대응에 나설 경우, 생업을 무시할 수 없는 개원가의 파업동력은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과연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총파업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 그것은 오로지 최대집 집행부의 대회원 설득력과 리더십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래저래 의협 집행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