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휴일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5월 초 황금연휴 기간에 발생한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때문이다.
정 본부장은 10일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방역당국 입장에서 밀폐되고 밀접한 접촉이 일어나는 유흥시설·종교시설에 대한 우려를 많이 했는데 그런 우려가 이태원 클럽의 집단발병으로 나타나 굉장히 송구한 마음”이라며 허리를 굽혔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통해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킬 것이라고 밝힌 날로, 강력한 초대 청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정 본부장 자신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코로나19’ 방역 책임자로서 집단 감염이 일어날 경우 이유를 막론하고 무한책임을 져야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사과라고 할 수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과란 일을 잘 못 했거나,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했을 때 하는 것이지 아무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정 본부장은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하자 바로 이튿날부터 매일 오후 2시 직접 대국민 브리핑을 통해 코로나 상황을 국민들과 공유했고 2월 하순 대구신천지발 대규모 집단감염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하루 1~2시간 수면으로 몇개월을 버티고 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더는 못하겠다”며 물러났을 법도 하지만, 그는 흔들림없이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죽하면 백발이 내려앉은 그의 머리가 해외언론에서까지 대서특필 됐을까. 우리 국민 누구도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방역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K방역은 세계의 표준이 되었다”며 정 본부장을 위시한 질병관리본부의 발빠른 대응에 찬사를 보냈다.
사실 이동제한령 등 강제조치가 없는 우리 상황에서 특정인이 지침을 따르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는 아무리 대응을 잘해도 막을 수가 없다. 우리는 도시를 봉쇄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 정도로 코로나19에 맞서 싸워왔다. 그리고 이제 막 승기를 잡으려던 찰나였다. 그런 와중에 터진 이태원 클럽발 집단 감염사태는 우리 국민 모두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허탈하다 못해 화가 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우리의 질병관리본부 수장이 나서서 마치 본인의 잘못인 것처럼 고개를 숙였으니,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몇몇 개인의 무책임한 행동에서 촉발된 문제까지 보건당국이 무한책임을 져야한다면 사회의 질서유지권을 가진 국가의 존재는 무의미해지고 그 누구도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을 먹기 어려울 것이다.
뿐만아니라,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우리 사회의 기본원칙에도 맞지 않다. 나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용인되어야한다.
이번 사태에서 정작 사과를 해야할 사람은 정 본부장이 아니라, 이태원 클럽 등에서 코로나19를 전파한 확진자 본인이며, 나아가 이태원 클럽을 방문하고도 연락마저 두절된 비양심적인 사람들이다.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 사태는 공동체 구성원 하나 하나가 방심하는 사이에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는 정 본부장의 사과가 이번이 마지막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철저한 자기반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세계 1등 방역국가로 칭송받은 우리의 질병관리본부 수장이 더 이상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에도 큰 상처가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