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순호]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중동 지역의 정세가 요동치면서 현지에 제품을 수출하는 국내 제약사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도 트럼프 정부가 "(이번 사건에 한해) 군사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미군 병력이 대거 중동으로 집결하고 강력한 경제 제재를 예고하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 시간으로 오늘(9일) 새벽, 펜스 부통령을 비롯해 국무와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 핵심 측근들이 도열한 가운데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군사력 사용은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골자다. 대신 추가 경제 제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번 성명은 이란이 미국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탄도 미사일 10여발을 발사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무인기 폭격으로 이란군 실세인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사살했으며, 이에 따라 이란은 미국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보복을 예고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국민 성명을 통해 "이번 미사일 공격으로 미군 측의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이란의 공격에 대해 여러 가지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 정권에 추가 경제 제재를 즉시 부과할 것이고, 이는 이란이 행동을 바꿀 때까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강력한 대 이란 제재는 중동 국가들과 거래하는 우리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약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제약사들의 중동 지역 수출액은 아직 그리 큰 수준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발행한 '2019년 식품의약품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약사들의 의약품 수출액 상위 10위 국가는 ▲미국 ▲독일 ▲일본 ▲중국 ▲터키 ▲헝가리 ▲베트남 ▲크로아티아 ▲네덜란드 ▲브라질 등으로, 중동 지역 국가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기간 의약품 수출 총액은 약 47억달러(한화 5조4943억원)였으며, 이들 10개 국가에서만 전체의 66%에 달하는 약 31억달러(3조6239억 원)가 발생했다.
특히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란으로의 수출액은 연 210억원 수준으로, 작은 편이어서 이번 사태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국내 A 제약사 관계자는 "중동 지역 수출 제약사가 아직 많지 않고, 수출 물량도 많은 것은 아니어서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 자사 제품 점유율을 빠르게 올리고 있는 B 제약사 관계자는 "우리가 직접 파는 게 아니라 현지 기업을 통해 제품을 공급하고 있어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인도적 제품이라는 의약품 특성 때문에 급변하는 정세에 좌지우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중동의 정세가 불안정하면 향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거래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5년 이란 기업과 수출계약을 맺었던 C 제약사 관계자는 "당시 계약 기간은 5년이었는데 미국이 경제 제재에 들어가는 바람에 2년 전에 수출이 중단됐다"며 "미국이 경제보복 조치를 가하면 미국과 관계있는 국가들은 동참할 수밖에 없다. 미국 결정에 따라 한국 기업의 수출길이 막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이란은 지난 2018년 미국의 경제·금융 제재의 영향으로 의약품 수급에 비상이 걸린 바 있다.
의약품, 의료장비, 식량 등과 같은 인도적 물품은 미국의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금융 제재가 가해지면서 현지에서 수출금액을 회수하지 못하자, 이란에 대한 수출을 사실상 중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란은 유럽과 한국 등으로부터 의약품 공급이 끊기면서 시중에는 효능이 확인되지 않은 터키, 중국산 제품의 수입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중동 지역 내에서 반한 정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D 제약사 관계자는 "미국과 이란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경우, 한국은 파병 요청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정부가 파병을 결정하게 되면 중동 지역에서 반한 정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이때는 정말 수출이나 현지 진출에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