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곽은영] 제약업계는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기업문화가 짙어 유리천장이 유난히 견고한 산업군 중 하나로 꼽힌다.
한독·부광약품 등에서 여성 CEO를 전문경영인으로 내세우고 오너가의 딸들이 경영 전선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업계 내에 ‘여풍이 분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경영은 장자 세습 구조로 기울어져 있다.
전체 임원 비율에서도 여성은 미등기임원이거나 비상근 형태로 경영권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설령 여성이 경영권을 장악한 경우에도 승계할 아들이 없는 등 부득이한 사유가 있어서다.
헬스코리아뉴스가 2018년 기준 매출 상위 20개 제약사를 대상으로 2019년 3분기 현재 여성 임원 비율을 조사한 결과, 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한독(옛 한독약품)으로 나타났다. 한독은 전체 임원의 31.6%가 여성 임원으로 채워져 있다.
이어 부광약품(28.6%), 한미약품(21.6%), GC녹십자(18.2%), 한국유나이티드제약(15.4%), 대웅제약(12.5%), 삼진제약(11.5%), 보령제약(10.7%), 종근당(10.4%), 동화약품(10.0%) 순으로 여성 임원 비율이 높았다.
매출액 기준 국내 1위 제약사인 유한양행은 총 25명의 임원 가운데 임효영 상무 1명만이 여성 임원이었다. 임 상무는 그나마 미등기 임원으로 임상개발부문을 담당하고 있어 경영권과는 분리되어 있다. 임 상무는 한국 얀센 상무 출신으로 2018년 5월 영입됐다.
이같은 사정은 대부분의 제약사가 비슷했다. 여성 임원이 있어도 별다른 권한이 없는 비등기 임원이거나 심지어 여성임원이 한 명도 없는 곳이 있었다. 동아에스티, JW중외제약, 휴온스 등이 그곳이다.
상위 20대 제약사 가운데 여성이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경우는 대웅제약 1명(양윤선 사외이사), 보령제약 1명(김은선 회장), 한독 1명(조정열 사장), 대원제약 1명(김정희 이사), 유나이티드 2명(김귀자 전무이사 · 표명윤 사외이사), 부광약품 1명(유희원 사장) 등 이었다.
특히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여성임원 2명(전체 등기임원의 25%) 모두 등기임원으로, 여권이 크게 신장된 기업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 중견제약사의 고위급 간부는 “여성의 등기임원 비율로 여권 신장을 논할 수는 없지만, 여성에 대한 기업의 배려와 사회적 책임감을 평가할 수 있는 작은 지표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위 20대 제약사 여성임원 비율]
제약회사 |
전체임원수 |
여성임원수 |
여성임원비율(%) |
||
등기임원 |
미등기임원 |
등기임원 |
미등기임원 |
||
유한양행 |
12 |
13 |
0 |
1 |
4.0 |
GC녹십자 |
5 |
17 |
0 |
4 |
18.2 |
종근당 |
8 |
40 |
0 |
5 |
10.4 |
대웅제약 |
5 |
3 |
1 |
0 |
12.5 |
셀트리온 |
8 |
35 |
0 |
3 |
7.0 |
한미약품 |
8 |
29 |
0 |
8 |
21.6 |
광동제약 |
7 |
23 |
0 |
2 |
6.7 |
동아에스티 |
7 |
25 |
0 |
0 |
0 |
JW중외제약 |
7 |
0 |
0 |
0 |
0 |
일동제약 |
7 |
18 |
0 |
1 |
4.0 |
보령제약 |
7 |
21 |
1 |
2 |
10.7 |
한독 |
7 |
12 |
1 |
5 |
31.6 |
동국제약 |
5 |
19 |
0 |
1 |
4.2 |
휴온스 |
5 |
17 |
0 |
0 |
0 |
동화약품 |
7 |
13 |
0 |
2 |
10.0 |
대원제약 |
6 |
22 |
1 |
0 |
3.6 |
삼진제약 |
7 |
19 |
0 |
3 |
11.5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
8 |
5 |
2 |
0 |
15.4 |
경보제약 |
5 |
8 |
0 |
1 |
7.7 |
부광약품 |
6 |
8 |
1 |
3 |
28.6 |
‘여풍’ 바람잡는 언론보도는 ‘침소봉대’
이런 상황에서 “제약업계에 여풍이 분다”는 말이 언론 등에서 흘러 나오는 것은 다름 아닌 ‘과대포장’ 또는 ‘침소봉대’ 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여성 1명을 등기임원으로 두고 있는 보령제약은 창업주 슬하에 딸만 4명을 두고 있는 ‘딸 부자집’으로, 김승호 명예회장의 장녀인 김은선 회장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원제약의 유일한 여성 등기임원인 김정희 이사도 오너인 백승호 회장과 특수관계인(모친)으로 비상근 임원이어서 여성의 경영파워를 보여주는 예라고는 할 수 없다.
제약업계에는 대표적 여성 CEO 2명이 있다. 부광약품의 유희원 사장과 한독약품의 조정열 사장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소신 경영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엄연히 오너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인지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봉급생활 CEO’에 불과하다는 평이 정확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최근 대한항공을 운영하고 있는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경영권 관련 다툼은 아이러니 하게도 ‘진정한 여풍’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조현아 한진그룹 전 부사장의 동생 조원태 회장에 대한 경영권 견제는 어머니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여동생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영향력과 맞물려 큰 파문을 낳고 있다.
네 사람은 지분이 엇비슷해 경영권을 물려받은 조양호 전 회장(작고)의 아들 조원태 회장은 모친, 누나, 여동생 등 세 모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업계 관계자는 3일 헬스코리아뉴스에 “오너와 특수관계인이 아니면서 제약업계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다는 것은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며 “여성은 승진에서부터 차별을 받고 있는 기업이 부지기수(不知其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