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제 생기면 제약업계 탓하는 정부
[사설] 문제 생기면 제약업계 탓하는 정부
당근은 없고 채찍만 난무 ... 제약산업 육성책 헛된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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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0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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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 제약산업은 가장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꼽힌다. 다른 제조업종에서는 한 분기 영업이익만 수조원에 달하는 기업들이 수두룩한데 국내 제약산업은 태동 100년이 넘어서야 겨우 1조원을 넘긴 제약사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제약이 많은 업종이다. 제품 개발부터 허가, 약가, 판매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런데도 국내 제약사들이 조금씩 신약 개발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육성책이 조금이나마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정책은 규제 일색이다. 기존 육성책은 사라지거나 약화되고 새로운 육성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올해는 제약업계에 불리한 정책과 사건이 쏟아지면서 기업들의 고통이 배가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제네릭 품질을 높이겠다며 '제네릭 의약품 차등 보상제도'라는 새로운 약가 규제 방안을 선보였다. ▲자체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실시 ▲등록된 원료의약품 사용 등 2개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기존 약가를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마저 건강보험 등재 순서 21번째부터는 기준 요건 충족 여부와 상관없이 기등재 제네릭 최저가의 85% 수준으로 약가가 산정된다.

국내 상위사뿐 아니라 중견·중소 제약사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게 제네릭이다. 제네릭 약가 인하는 곧 전체 제약사의 매출 감소를 의미한다. 제약사의 자금 규모와 영업력에 따라 양극화 현상도 초래할 수 있다. 중소제약사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 개편안에 따르면 중견·중소 제약사들의 캐시카우인 개량신약의 약가 제도도 현행보다 불리해진다. 

개량신약은 첫 제네릭이 출시되면 약가가 70%로 떨어진다. 이로부터 1년 뒤 제네릭 생산 회사가 3곳 이상이면 제네릭과 똑같이 최초 등재 금액의 53.55%로 약가가 다시 산정된다. 제네릭 생산 회사가 3곳 미만이면 계속해서 70%의 약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은 제네릭 생산 회사가 3곳 미만 이더라도, 2년까지만 개량신약 약가의 70%를 인정한다. 기간 연장은 가능하지만, 이 또한 2년으로 제한된다. 즉, 최대 5년까지만 70% 약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제약사들은 경쟁자가 적은 틈새시장에서 개량신약으로 돈을 벌어 R&D에 재투자하는 곳이 적지 않았다. 이들 제약사는 이번 개편안으로 수익성 악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논란이 되고 있는 발사르탄·라니티딘 사태에 따른 정부의 후속 조치도 제약사들을 옥죄고 있다.

제약사들은 발암 우려 물질인 NDMA가 검출된 발사르탄과 라니티딘 성분 제제의 회수 및 판매 중지 조치로 현재 천문학적인 손해를 보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기준대로 의약품을 만들어 허가까지 받았는데도 예상하지 못한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허가 기준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업계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지만, 기업들은 군말 없이 수용하고 있다. 국민 건강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여기에 더해 발사르탄 성분의 약을 회수하고 환자들에게 새 의약품으로 교환해주는 데 든 비용을 제약사에 청구하겠다며 구상권까지 행사하고 나섰다. 

정부는 제품에 문제가 없으니 팔아도 된다며 허가를 내준 당사자다. 원료의약품 제조소에 대해서도 그동안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따라서 제약사와 발사르탄·라니티딘 사태의 책임을 분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1원 한 장까지 모두 제약사에 떠넘기고 있다. 

이런 행태로 볼 때 차후 라니티딘과 관련해서도 제약사에 구상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발사르탄·라니티딘 사태의 원인이 제약사에 있다며 정부 책임론은 부인하는 것으로, 많은 제약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불사하는 이유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잔뜩 허리띠를 졸라맸던 제약사들은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허리띠를 너무 졸라매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하소연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신약 개발 의지마저 꺾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갈수록 늘어나는 R&D 비용 탓에 실적 고민에 빠진 제약업계 입장에서는 엎친데 덮친격이다.

실제로 국내 상당수 제약사는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감소한 상황이다. 늘어난 곳이 있어도 성장률이 한 자릿수인 곳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규제와 엄격한 행정 조치만 반복하고 있다. 

규제만으로는 글로벌 제약사가 탄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약 개발 의지가 꺾여 퇴보하거나, 한국 시장을 떠나는 제약사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이미 한국 대신 글로벌 시장에 제품을 먼저 출시하는 제약사가 늘어나고 있다. 이 중 아예 한국 시장을 포기한 곳도 있다.

당근과 채찍이라고 했다. 규제를 하더라도 적절한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성장 동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정부가 지금처럼 강도 높은 채찍질을 계속한다면 제약산업 육성정책은 헛된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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