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하고 가녀린 이미지 안엔 아이러니하게도 잔다르크 같은 강인함이 내재돼 있다. 운동권 학생이었던 혜린('모래시계')과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 했던 맏딸 영서('엄마의 바다'), 사람을 통해 천하를 얻고자 하는 하는 미실('선덕여왕')도 그렇다.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로, 한 차례 결혼과 이혼, 그리고 10년 만의 복귀…. 고현정은 여전히 대중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의 간극이 큰 배우 중 한 명이다.
◆ 큰 키 때문에 선생님으로 오해 받았던 아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고작 3~4명의 친구가 전부였다. 내성적인 성격의 고현정은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키가 172cm였다. 봄에 산 옷이 가을에 맞지 않을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비위가 약해 음식을 먹는 일을 힘들어했고 몸은 항상 허약했다.
100m 달리기를 13.5초에 끊었고 교내 배구와 농구선수로 스카우트 얘기가 오갈 정도로 체격이 좋았지만, 체력이 부실해 만성 빈혈을 앓았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키가 머리 하나 정도 더 컸던 그는 학교 밖에 나가면 나이에 비해 어른스런 외모 때문에 '앳된 신참 선생님'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부모의 기대에 실망을 주기 싫어 항상 철든 척하고 말썽도 안 피우는 아이였다.
1989년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은 그의 삶을 바꿔놓은 지표가 됐다. 중앙여고 2학년 때 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미용실 원장에게 미인대회 출전 권유를 받았고, 그 해 미스코리아 선으로 발탁됐다.
시골 처녀 말숙 역으로 출연했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90)를 시작으로 신분 차이를 넘어선 젊은 이들의 사랑을 다룬 '두려움 없는 사랑'(91), 세 여자의 다른 삶의 방식을 통해 페미니즘적 여성론을 펼친 '여자의 방'(92) 등 무게감 있는 작품에 출연하며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다소 가벼운 이미지 대신 연기파 배우로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다.
◆ '모래시계' 이후 갑작스런 결혼 발표
'모래시계'는 고현정을 최고로 만들어놓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결혼 이후 10년이란 긴 공백기동안 그를 혜린이란 박제된 상태의 이미지로 가둬 놓았던 드라마이기도 했다.
김종학 PD는 당시 고현정에 대해 "한 마디 대사로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연기자였다. '여명의 눈동자'에서도 고현정과 함께 일했지만 '모래시계'에선 신인 때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큰 폭발력을 가졌다"고 회상했다.
당시 시청률 50%를 넘어선 이 작품은 국내 드라마 중 이례적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뤄 화제가 됐다. 당시 SBS가 나오지 않던 광주 지역에선 유선과 비디오로 '모래시계'가 알려졌고 수천명의 광주 시민이 이 드라마의 노 개런티 엑스트라로 참여하기도 했다.
'모래시계'로 절정을 맞은 그는 뜻밖의 발표로 주위를 놀래켰다. 바로 삼성가 정용진씨와의 결혼이었다. 당시 두 사람은 미국 브로드웨이의 한 뮤지컬 공연장에서 좌석을 찾지 못한 고현정을 정용진씨가 우연히 도와주며 만났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현정의 팬이었던 정용진씨가 미국에서 고현정을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MBC TV '무릎팍도사'를 통해 고현정은 "막연하게 연기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도 있었고 연기라는 것이 지루해지기도 했다. 연애를 하는 것이 너무 좋았고 (전 남편이) 위트있고 매력적인 사람이라 결혼을 위해 일을 포기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 결혼보다 충격적이었던 이혼
많은 것을 포기하고 결정한 사랑과 결혼이었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재벌가 며느리로 산 10년에 대해 고현정은 "돌이켜보면 결혼 생활로 얻은 것이 많았다. 나를 객관화하는 법을 단련한 좋은 훈련 기간이었다. (전 남편이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뿐 지금도 '다시 결혼을 생각하고 아이를 낳을 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고 추억했다.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찍힌 파파라치 사진과 함께 불화설과 복귀설은 2~3년마다 반복됐다. 집에서 2억원에 달하는 다이아몬드와 현금을 도난 당해 경찰에 신고하는 사건에도 휘말렸다.
2003년 이혼 후 두 아이의 양육권과 친권을 내주고 고현정은 연기에만 몰입했다.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 '봄날'에서 실어증을 앓지만 사랑으로 극복하는 여주인공으로 등장해 조인성과 인연을 맺었고, '여우야 뭐하니'에선 띠동갑 연하의 천정명, '해변의 여인'에선 김태우 등 유독 연하 남자 연기자들과 인연이 깊었다.
고현정이 농담처럼 조인성에게 "사랑한다, 결혼하자"고 말하면 "누나처럼 쉬운 여자는 싫다"고 맞받아 칠 정도로 조인성과는 친분이 깊다. 술에 취하면 가라오케 벽을 타고 놀고, 어린 후배들에게도 스스럼 없이 대할 정도로 신세대적인 마인드가 강하다.
◆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신비주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고현정이 "여배우라고 해서 평소에 욕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수박을 먹을 때면 번거러워 씨에다 대고 '아유, XXX들' 하고 가끔 화풀이 겸 욕을 한다"고 독특한 취향을 밝히기도 했다.
한때 촬영지마다 4~5명의 사설 경호원을 대동하고, 인터뷰 상대 기자도 골라서 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까다로운 면이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실행하는 직선적인 성격의 소유자로도 유명하다.
MBC 드라마 '히트'의 무술감독 정두홍씨는 "보통 배우들이 두 달간 훈련을 받는데 현정씨는 첫날부터 액션 연기에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뭔가 호기심이 생기면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감각이 아주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권력욕과 뛰어난 지략을 가진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 고현정은 팜므파탈 매력으로 포스를 뿜어낸다. '히트'와 '선덕여왕'을 집필한 김영현 작가는 "고현정은 큰 선을 갖고 있는 배우다. 선덕여왕이 주인공인 이 작품에서 미실은 2인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면서도 그 무게감을 지탱할 만큼 존재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 고현정은?
- 생년월일 1971.3.2
- 출생지 전남 화순
- 신체 172cm·50kg
- 학교 북초교-아현중-중앙여고-동국대 연극학과
- 데뷔 미스코리아 선(89)
- 별명 흰둥이
- 주요 수상 경력 SBS 연기대상 10대 스타상(05) MBC 연기대상 인기상(06)
- 주요 출연작
'대추나무 사랑걸렸네(90) '여명의 눈동자'(91) '두려움 없는 사랑'(92) '모래시계'(95) '봄날'(05) '해변의 여인'(06) '잘 알지도 못하면서'(09) '선덕여왕'(09)
<조인스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