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작가가 쓴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한 때 히트를 쳤다. 책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침형 인간은 흔히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게으르고 수동적인 사람으로 인식 되어져 왔다.
아침형 인간으로서 성공한 사람들의 예를 보다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데도 훌륭한 업무 능력을 보여주거나, 늦은 밤에 오히려 많은 일을 처리해 버리는 ‘올빼미형 인간’도 많다. 일단 건강상의 특별한 문제 때문에 일찍 못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또한 기본적인 능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고 출근이 늦어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일이 별로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소위 ‘아침형’이건 ‘올빼미형’이건 생활하는데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공공의 적 ‘스트레스’가 호르몬 변화 가져와
하지만 다음에 해당하면서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한다면 상황은 다르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면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사람을 단순하게 의지가 부족하거나 게으른 사람이라고 판단해 버리는 것은 금물이다.
우리 몸에는 생체 주기를 조절하거나 생체 바이오리듬에 따라 변화하는 여러 가지 호르몬들이 있다. 특히 부신 피질 호르몬(그 중에서도 코티솔)은 기상과 동시에 급격한 증가를 보이다가 한밤중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한다.
이 호르몬은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집중력을 높이고, 근력을 강화시키며 면역력을 조절하고 혈압과 혈당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아침에 일어남과 동시에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아침을 개운하게 만들고, 밤중으로 갈수록 분비량이 감소되면서 수면을 유도하는 것도 호르몬의 주요기능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장기간 혹은 심한 스트레스(사람들 간의 갈등, 불화, 이별, 사별 뿐만 아니라 감염, 질병, 음주 등도 포함)를 받으면 이러한 호르몬들의 평균 분비량이 변할 수 있다. 특히 기상 직후 호르몬 분비량의 감소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고, 하루 종일 피곤하며 멍한 상태를 보이다 밤중이 되어서야 비교적 기력이 회복되는 패턴을 반복하기 쉽다.
또한 근력 감소, 집중력 저하, 우울증, 성욕이나 성기능 감퇴, 혈당이나 혈압의 변동 뿐만 아니라 다른 호르몬들의 기능 이상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게으르다는 주변의 시선이 따갑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의지력만으로는 쉽게 극복하기 어렵고,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작은 스트레스도 다른 사람보다 크게 받아들이면서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 간단한 호르몬 분석으로 나도 아침형 인간
이런 상태는 빈혈, 간 기능 검사, 콩팥 기능 검사 등을 기본으로 하는 일반적인 혈액 검사에서는 찾기가 어렵고, 일반적인 종합검진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필요한 항목이 잘 포함된 검사를 받더라도, 피검사를 위해 병원에 온 다음에는 이미 시간이 많이 경과된 터라 기상 직후와 취침 전에 나타는 변화를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반드시 혈액이 아니더라도, 소변이나 타액(침)을 이용해서 호르몬의 농도를 분석하는 기술들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러한 검사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시간에 맞추어 검체를 받았다가 제출하면 되기 때문에 특히 기상 직후와 취침 전의 상태를 쉽게 분석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또한 통증이 없고 여러 번 검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복 측정한다면 하루 중에 변화하는 자신의 호르몬 상태를 정상 수치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아침에 천근만근 몸을 가누지 못하는 원인은 모른 채 단순히 게으른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현대 의학의 발전양상으로 볼 때 너무나 무책임한 판단이다. 중요한 일을 책임지고 있거나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는 본인의 호르몬 상태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매일 아침, 잠과의 사투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이라면 이제부터라도 가벼운 아침을 위해 호르몬 분석을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CHA 의과학대학교 강남차병원 가정의학과 스트레스&만성피로 클리닉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