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이동근 기자] 정부의 의료기기 인허가 개편안 발표를 두고 시민단체·노동계의 반발이 시작됐다. 정부가 과도하게 의료기기 규제를 완화했다는 것인데, 더 나아가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됐던 의료민영화 정책의 부활이라는 지적까지도 나온다.
정부의 이번 정책 발표는 ‘훈훈한 미담’으로 시작됐다. 19일 분당서울대 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0살 정소명 군과 엄마 김미영씨를 만나 그들을 위로한 뒤 정책이 발표됐던 것이다.
김씨는 1형 당뇨환자인 아들을 위해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을 체크할 수 있는 기기를 해외사이트에서 구입했고 같은 처지의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가 법 위반으로 기소유예를 받은 바 있다.
단순히 힘들어 하는 아들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한 행위가 법 위반으로 고생하게 된 김씨를 만나 위로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김씨의 사례는 수익 창출이 없었다는 이유로 국민들에게 정부 보건당국에 ‘책상물림’이라는 인식을 주었던 차에 대통령이 직접 움직이는 모습은 분명 보기 좋았다.
이어 문 대통령은 “안전성이 확보되는 의료기기의 경우 보다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하고 활용될 수 있도록 규제의 벽을 대폭 낮추고, 시장진입을 위한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부는 이날 ▲첨단의료기기 신속한 시장 출시 ▲안전성 확보된 체외진단 기기 단계적 사후평가 전환 ▲의료기기 인허가 간소화 및 평가과정 전면 공개 ▲연구중심병원 확대 및 산병협력단 설치 지원 ▲의료기기산업육성법과 체외진단의료기기법 제정 등의 정책들의 구체안을 일제히 발표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24일, 시민단체들과 노동계는 일제히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약자의 편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이들이 김미영씨 모자 사례를 보았음에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나선 것이다. 왜 이들은 이같은 입장에 섰을까를 생각해 보면 정부가 ‘너무 나갔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사실 김미영씨 사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험한 부분이 있었다. 국내에서 안전성 검증이 안된 의료기기를 개인적으로 사용했고, 또 수익성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주변과 나누어 사용했다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국내에서 안전성 검증이 안 돼 발생한 사건도 얼마 전 있었다. 바로 중국산 발사르탄 원료의약품 사태다.
당시 유럽에서 중국산 발사르탄 원료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자 우리나라에서도 이 원료에 대한 문제를 인지하고 의심 제품들의 유통을 중지시키면서 큰 혼란이 일어났다.
이 사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우리나라 정부가 발사르탄 원료가 들어올 때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그나마 원료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정부가 아닌 유럽 보건당국이 발견했다는 것이다.
즉, 이는 해외에서 들여오는 원료에 대한 국내 보건당국의 관리가 허술했다는 점과 그나마 해외 제조소에 대한 정보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던 것이다.
이처럼 지금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해외에서 들여온 의료기기를 검증 없이 사용한 것을 잘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던 것인데, 더 나아가 아예 의료기기의 선진입-후평가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19일 발표였던 것이다.
시민단체들과 노동계도 이 같은 부분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들은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국민들에게 시험하겠다는 의미’라며 정부 정책을 반대한 것이다.
사실 정부의 정책은 의료기기에 대한 신속한 출시 및 허가 지원 정도면 족했다. 김미영씨 모자 사례처럼 해외에서 개발된 좋은 의료기기가 국내에서 수입해 오는 업체가 없을 경우 식약처가 해당 의료기기를 국내에서 도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도의 정책 도입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 정책은 너무 나갔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만일 이번 정책 도입으로 인해 새로 도입된 의료기기로 인해 환자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나올 경우, 국민들은 다시 정부를 비난할 것이다. 너무 허술하게 의료기기 안전성을 관리한 것 아니냐면서.
물론 정부가 시도하는 정책이 잘 풀려나갈 수도 있다. 분명 이번 정책으로 인해 억울하게 제대로 의료기기 출시를 못하다가 수혜를 받는 업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의도와 관계 없이 한가지 문제만 생겨도 국민들은 정부를 크게 비난할 것임을 예측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굳이 사서삼경 중 ‘중용’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정부 정책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환자들의 어려움을 살피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선한 것일지라도 그 정도가 지나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