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리아뉴스 / 권현 기자] 지난 주말 내내 한 대학병원에서 진행된 행사 하나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내용인 즉, 병원측이 신규 간호사들에게 노골적으로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히고 장기자랑을 강요했다는 것이었다.
해당 간호사들은 한 달이 넘는 기간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역할뿐 아니라 섹시댄스를 추는 걸그룹 아이돌이 돼야 했다. 이들은 간호사라면 누구나 꺼리는 근무 형태인 야간근무 뒤 바로 휴일인 ‘나이트 오프’임에도 지친 몸을 이끌고 춤 연습에 매진했다.
이 간호사들은 휴일에 춤 연습을 하면서 장기자랑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며 서로 끈끈한 연민의 정과 우정을 쌓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피같은 휴일에 춤을 춘 댓가인 시간외근무수당 등의 다른 특별한 보상은 없었다.
그저 높으신 분(?)들 앞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그동안의 춤 실력을 뽐냈을 간호사들을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필자가 취재 도중 한 간호사에게서 “이런 병폐와 타협하지 않고 모나면 나중에 피곤해진다”며 “오히려 윗년차들이 강요하는 분위기다. 그런 선배 밑에 있던 후배 간호사들이 나중에 선배가 되면 어느새 입에서 ‘우리 때는 더했어’라는 말이 나온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사실 간호계의 이런 군대식의 ‘까라면 까’ 문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간호사는 뭐든지 해야 한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고 오버타임은 기본이지만 병동 환경 개선부터 장기자랑, 연말행사, 게시판 꾸미기, 심지어 청소까지 근무시간외 이뤄지는 일들을 해내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대부분 간호사들은 병원의 지시에 순응하기만 하는 간호부와 상명하복식 군대문화를 꼽는다. 지난달부터 한 달간 한 서울의 대학병원이 근로기준법 준수와 적정 수준의 임금을 주장하며 파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파업 현장에 만난 한 간호사는 “수간호사에게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언급하면 돌아오는 말은 ‘다른 곳도 다 그런데 왜 유난을 떠냐?’라는 말”이라며 “고충을 토로해도 윗선으로 전달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아래에서부터 위로도 소통이 안 되고 있다. 선배가 후배의 고충을 듣지 않고 있다. 아니 인력 부족 문제로 들을 시간도 여유도 없다. 임신순번제, 인력 문제, 적정 간호 수가도 문제다. 고쳐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어디서부터 뭘 고쳐야 할까? 간호계는 먼저 의료인의 자존심을 세우고 평등한 병원문화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미권 간호사들이 의료진, 환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간호사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러한 병원문화는 그들의 문화 자체가 나이와 인종, 성별을 초월한 동등한 문화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병원의 구성원인 의료진과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서로 협력하고 이해하는 파트너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 때문이다.
자연히 서로의 업무를 존중하고 조언을 귀담아 듣는다. 간호사는 다른 의료진의 지위나 경험에 상관없이 실수나 잘못에 대해 넘어가지 않고 지적하고 생각을 전달한다. 강요하지도 않는다. 상호보완하는 협력관계인 것이다.
물론 상하관계가 뿌리 깊게 박힌 한국 실정에 어울리지 않고 적용하기 힘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간호계 내부에서라도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가 됐다.
신규간호사 장기자랑 사태는 비단 해당 간호사들뿐 아니라 의료인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간호사들 전체에 치욕을 안겨줬다. 대한간호협회는 늦었지만 인권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디 제대로 회원들을 감싸주고 서로 소통하며 똘똘 뭉쳐 이익집단으로서 한목소리를 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