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다고 더 좋은 날이 오지는 않을 겁니다”
“열심히 산다고 더 좋은 날이 오지는 않을 겁니다”
  • 하주원 원장
  • admin@hkn24.com
  • 승인 2016.08.17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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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 아직도 옛날 어르신들은 정신과 하면 ‘미친 사람 가둬놓고 치료하는 곳’ 쯤으로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다.

집단치료를 잘 나오시던 어르신들은 잘 얘기를 하시다가도 가끔 내가 정신과의사라는 것을 인식하면 좀 불편해하셨다. 내가 다른 과 의사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씀을 하시는 분도 계셨고, 좋은 과도 많은데 왜 그리 험한 과를 택했냐고 하는 분도 계셨다.

‘정신건강의학과’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를 때 묘하게 ‘건강의학과’라고 부르시는 분도 계셨다. 그분의 인지기능 검사를 했기에 일부러 그러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미친 사람이나 가는 곳’ 식의 전통적인 편견은 45년생 이후에만 와도 거의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젊은 사람들이라고 정신과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면 거짓말이다. “기록이 남나요?” 또는 “보험 가입에 문제가 되지 않나요?”라는 젊은 분들의 좀 더 실용적인 질문과 달리 어르신들이 정신과를 찾기 어려운 까닭은 조금 더 근원적인 두려움과 거부감 같은 것이 있다.

참고로 정신과 진료는 의료법상 의무기록을 내 진료실 컴퓨터에 보관해야 하고, 보험공단에 청구를 하기 위해 질병과 약물치료, 방문내역이 전송된다. 다른 내과나 안과 진료와 마찬가지다. 상담한 내용이 어디로 가거나 정신과 진료만 특별하게 기록이 남아서 취업하는데 지장이 될 일은 없다.

어르신들이 정신과를 꺼리는 이유는 부끄러움과도 연관이 되어 있는데, 나는 그간 그 부끄러움이 ‘남들이 볼까봐’라는 것에서 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어쩌면 한 차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부끄러움이었다.

그 부끄러움의 뿌리는 바로 내 삶의 어려움은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그저 노력을 하고 열심히 살면 가난이나 낮은 학력, 돌봐야 하는 동생들, 가혹한 시댁, 불의의 사고에 대한 기억 등은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만연했다.

종교나 지역을 불문하고 우리가 잘 사는 것도 노력 덕분이고 우리가 못 사는 것도 노력 덕분이라고 하셨다. 내가 글씨 모르면서 장사해서 애들을 키웠는데, 시누이가 그렇게 나를 구박해도 원래 그러려니 하고 살았는데, 우울하고 잠을 못자는 것 따위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르신들에게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된다는 1970년대의 정신이 21세기의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었다.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약해진 자신을 용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옛날만큼 노력하고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갖기가 힘들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도 어렵다. 나는 고단하게 일을 하고 들어와서 술 취한 남편한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맞아도 애들 보며 참고 살았는데, 뺨 한번 맞았다고 울며 사네 못사네 하는 며느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왜, 어째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 좋은 세상에 힘들다고 난리인가?

불안정하고 급속하게 발달하던 ‘한강의 기적’ 시대에 비해 이미 어느 정도 발전해버려서, 그 속도가 더뎌진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이 더 성공하고, 기득권을 앞지르기 어렵다는 것을 설득하기가 참 힘들었다.

기술의 발전이 삶의 편안함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기계로 인해서 일자리는 더 줄어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만 말씀을 드렸을 때, 그런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아니 집에 계시면 하루 종일 뉴스 보신다면서 도대체 뭘 보세요?”

“어디 살인사건 났다는 것 보지”

“무슨 사고 난 것 보면 무서워서 못 나가겠더라”

“젊은 세대들이 취업 힘들다고 나오는 그런 것도 나오잖아요”

“그런 건 못 본 것 같은데...”

“근데 왜 하 선생님은 자꾸 젊은 사람들도 힘들다고 우리한테 말해요?”

“이해하셔야 덜 힘들기 때문이에요. 어르신들께서 하루 종일 뉴스 보면서 요즘 젊은 세대는 옛날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노력도 안한다고 생각하시면, 누가 힘들까요? 어르신들이 그 젊은 사람들한테 가서 뭐라 하고 해코지 하는 것도 아닌데...그런 생각으로 인해 힘든 사람이 요즘 젊은 사람들일까요?”

“글쎄...그 사람들이 힘들 것은 없지”

“우리가 성질나고 원망스럽고 힘들지”

“네 그래서 자꾸 말씀드리는 거예요. 우리 세대만 힘들다 힘들었다 하시면 어르신들이 지금 더 우울해지니까요”

미래지향적으로 달려왔던 어르신들의 젊은 시절이 현재의 절망을 낳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노력하면 다 잘 될 거야” 또는 “언젠가 내 자식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나를 잘 모시게 될 거야” 이런 것은 절대로 올바른 긍정적 생각이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미래에 대한 낙관을 강조할 때 오히려 현재가 힘들어진다.

노인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지고, 지금의 30~40대들은 질병이나 사고로 남들보다 빨리 죽지 않는 한 대부분 독거노인이 될 것이다. 앞으로 잘 될 거야가 아니라 안개 같은 환경 속에서도 현재의 기쁨과 희망을 찾는 것이 긍정적인 사고이다.

애들이 좀 더 크면 행복해질거야...라고? 그건 만1세 이하 쌍둥이들을 키울 때만 통하는 이야기이다. 어르신들 얘기에 따르면 애들이 더 큰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행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 하주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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