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치료제 있어도 죽는 사람 있는 이유”
“에이즈 치료제 있어도 죽는 사람 있는 이유”
[인터뷰] 조명환 전 UNITAID 평가위원 “경제·사회 이슈로 접근해야”
  • 이지원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16.04.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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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 / 이지원 기자] 치료제가 개발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수많은 사망자를 낳고 있는 에이즈를 퇴치하기 위해 국제무대에서 뛰고 있는 조명환 前(전)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 평가위원(건국대학교 교수)이 ‘2030년 완전종식’을 구호로 내세우며 73조원을 모금하겠다고 나섰다.

빌게이츠재단, 빌클린턴재단 등과 국제공동체제를 구축하고, ‘항공권연대기금’을 개발하며 에이즈와의 전쟁 ‘최전선’에 서 있는 조명환 교수를 만나 범세계적인 에이즈 퇴치대책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 건국대학교 생명과학대학 조명환 교수

-. 에이즈 사회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미생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였다. 연구 결과 백인보다 유색인종에게 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부분 환자가 아프리카 유색인종이므로 에이즈 개발자로서는 상당한 희소식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제약기업과 접촉하게 되었는데, 자본력이 뛰어난 미국·유럽 등 선진국 제약사들이 자국 환자 수가 적어 수익을 올릴 수 없다고 판단하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도 사업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며 매우 안타까웠다.

에이즈를 치료하고 싶어 과학자가 됐는데, 과학자가 만든 제품을 국민들이 이용하기까지는 과학자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과학자만이 아니라 기업가·법학자·마케팅·디자이너 등 여러 주체들이 함께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특히 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현실적으로는 대부분 아프리카에 사는, 약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약이 갈 수 없는 여러 사정이 있었다.

기업이 이윤 추구의 속성상 약제 생산을 하지 않기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나와 있는 약제를 환자들, 특히 개발도상국 환자에게 공급하는 데 드는 비용은 요즘 말하는 ‘사회적 기업’의 개념과 유사하게 기업이 질 수 있는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UNITAID 활동 당시 2009년 빌 게이츠를 직접 만나 투자를 받는 등 발로 뛰며 모금 활동을 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20억달러의 기금이 마련됐다.

하지만 기부금이나 기금 마련만으로는 지속성이 없었다. 그래서 경제상황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입금액을 보장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고통없는 분담’을 떠올렸다.

비행기표 100만원 사면서 1달러 더 내는 건 고통이 없다. 마찬가지로 커피 3000원을 사면서 1원을 붙여 팔면 사람들에게 고통이 없다. 기업에서 립스틱이나 스마트폰을 팔 때도 가격에 1원, 세금에 100원만 붙여 팔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기부하게 된다. 사람들도 기분 좋게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 기업들을 설득한 비법이 있다면?

“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존재다. 그런데 에이즈는 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에이즈는 실제로 약을 써야 할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더 많은데 기업은 미국·유럽 시장만 보고 있었다.

빌 게이츠를 만났을 때, ‘아프리카만 쳐다보지 말고 방치할 경우 아프리카 같은 상황이 향후 펼쳐질 수 있는 아시아도 주목하라’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아시아 청년층이 무너지면 아시아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처음에는 왜 에이즈를 지원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그런 설명에는 곧 수긍했다. 빌 게이츠를 설득한 뒤 그런 식으로 기업인들을 설득했다.”

-. 이제 에이즈는 불치병이 아니고 치료제도 나와 있다. 그래도 아직 에이즈가 문제인가.

 

▲ 건국대학교 생명과학대학 조명환 교수

“에이즈가 단순한 의학적인 이슈가 아닌 경제·사회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제 에이즈 치료제는 48개에 이르며, 치료도 잘 된다. 그런데 너무 비싸다. 미국 보스턴대 연구팀 발표에 의하면 한 사람당 평생 61만8900달러, 한 달에 2100달러다. 출시된 약도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힘들다. 개발도상국 환자 수가 대다수임에도 그들에게는 치료약을 구입할 돈이 없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경제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이, 에이즈는 성관계에 의해 주로 전염되므로 대부분 성생활이 가장 활발한 2,30대 청년들에게 발생하고 이들이 사망하기 때문에 근로 인구가 줄어들게 된다. 우리나라는 5000만 명 중 1만 명 미만이라 그 영향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아프리카에는 인구의 20~30%가 환자인 국가들도 있다. 이러면 경제·노동 인구 구조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쳐 GDP를 낮춰 국가 전체의 경제 기강이 흔들릴 수 있다.

인권 문제이자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에이즈 환자들은 대부분이 개발도상국 국민으로 경제적 의미에서 약자이고 암, 당뇨병 환자와 달리 사회적으로도 차별받는 약자다. 따라서 일종의 소수자로 인권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다.

서구권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교육이 아시아·아랍권에 비해 잘 된 편이어서 에이즈 환자에 대한 두려움과 차별은 적은 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나 무슬림 국가들은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로 에이즈 환자에 대한 편견·차별 때문에 당뇨나 혈압, 암과 달리 환자들이 드러내놓고 떳떳하게 치료를 받지 못한다.

환자들 대부분은 자신이 에이즈 환자인줄도 모르고 산다. 에이즈 보균 상태에서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야 에이즈가 충분히 진행돼 면역체계가 붕괴되면서 병증이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아프리카의 환자들은 성인이 되어 에이즈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아동기에 걸린 환자들은 대부분 성인이 되기 전에 죽게 된다.”

-‘향후 15년 동안 에이즈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 73조원의 예산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학회 등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73조원은 어떻게 추산되었으며, 실현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하는가.

“5년 동안 2조4000억원을 모은 것은 UNITAID가 단독으로 해낸 일이다. 지금은 WHO뿐 아니라 많은 국제기구들이 에이즈 사업에 몰두하고 있어 모든 기관이 함께 모으면 충분히 도달가능한 수치다. 국제기구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경제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통계 등을 연구해 내놓은 수치이므로 신뢰할 만하다.

UNITAID에서는 훌륭한 경제학자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활발한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기관을 선정해 이들로 하여금 에이즈 환자에 필요한 약품을 구매해 공급하도록 기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에이즈 환자들을 돕고 있다. 직접 활동을 한다기보다는 에이즈 치료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는 적절한 기관을 찾아내 돈을 지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 간에도 경쟁을 촉발시켜 약가도 적정하게 매겨지고 품질도 적절하게 유지될 수 있게 된다.”

 

▲ 건국대학교 생명과학대학 조명환 교수

-. UNITAID의 활동은 에이즈 환자의 경제적 문제를 돕기 위해 인도의 저렴한 제네릭을 활용하는 방안과 시장에 직접 개입해 기업들이 약가를 낮추도록 하는 방안 중 어디에 초점을 맞췄는지.

“현재 에이즈 약의 80%가 인도에서 나오는 저렴한 제네릭이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가난한 환자들은 경제적으로 일상생활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저렴한 약도 구매하기 힘들어 죽어간다.

그리고 약가를 낮추는 방안도, 기본적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약가가 너무 낮아지면 효능이 좋지 않은 약도 시장에 내놓게 되므로 환자 입장에서도 좋지 않다. 따라서 에이즈 약 시장의 공급과 수요의 지점을 잘 맞추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 현재 시장에 치료제가 나와 있긴 하지만 지금으로서 가능한 치료법으로는 ‘완치’가 아닌 ‘관해’ 혹은 ‘완전관해’ 정도의 치료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계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것이 ‘완전 종식’인지. 73조원의 필요 예산은 계속적인 관리 비용까지 포함하는가.

“에이즈 환자들이 약을 먹고 병원을 다니는 등 치료를 받으며 생존해가는 계속적 관리까지 포함한 뜻이었다. 사회적인 분위기 개선으로 에이즈 환자로서도 완전한 삶이 가능한 지점까지를 완전 종식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UNAIDS(UN 산하 에이즈 전담기구)가 발표한 단기 목표는 2020년까지 90-90-90, 2030년까지 95-95-95 캠페인이다. 에이즈 환자의 95%까지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어른 41%, 어린이 32% 수준으로 완치되고 있다.”

 

▲ UNAIDS 자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개인적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서 에이즈 환자에 대해서도 쉽게 말할 수 있는 미래가 오길 소망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고 가던 친구들끼리, ‘나 병원에 갔더니 에이즈래’, ‘빨리 약 먹고 치료해라’, ‘다음부터는 조심해라’ 등의 대화를 거리낌없이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에이즈에 대한 상식이 늘어나고 치료제도 쉽게 접할 수 있고 질병치료가 개방된 분위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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