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연합뉴스) 이준삼 특파원 =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중국의 여성약학자 투유유(屠<口+幼><口+幼>·85)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발견한 항말라리아제 '칭하오쑤'(靑蒿素·아르테미시닌)는 기적의 약으로 불린다.
모기가 전파하는 원충에 의해 발생하는 말라리아는 지금까지 많은 치료법이 개발됐지만, 지금도 매년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유아, 어린이 등 50만 명 이상이 말라리아에 감염돼 사망한다.
이런 가운데 개발된 칭하오쑤는 말라리아 환자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언론들은 지난 10년간 연인원 10억명이 아르테미시닌을 투약받았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약으로 생명을 건진 대부분의 환자가 어린아이들이었다.
이 '기적의 신약'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군의 중국 포위전략에 대항하기 위한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군사적 동기에서 연구개발이 시작됐다고 중국언론들이 6일 보도했다.
중국의 남방인물주간(南方人物周刊)에 따르면, 투 교수의 가장 빛나는 연구성취는 1969∼1972년 '문화대혁명' 기간에 이뤄졌다.
투 교수가 근무하던 중국전통의학연구원은 1969년 당국으로부터 약초를 이용한 항말라리아제를 연구개발하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이는 군사프로젝트의 일종으로, 암호명은 '523'이었다.
남방인물주간은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새로운 신약을 개발해 북베트남의 '미제타격'을 돕는데 있었다"며 "1960년 대 당시 동남아 지역의 전장에 서식하는 말라리아 원충은 기존 약품에 이미 내성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38살이었던 투 교수는 이 프로젝트에 보조연구원 신분으로 참여했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연구팀장으로 승진하며 연구개발을 이끌었다.
이는 당시 경험이 풍부했던 과학자 대부분이 우파로 몰려 숙청됐던 문혁의 사회적 배경과 관련이 깊다. 투 교수는 유학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 학자였다.
연구팀은 1971년 항말라리아 효과가 있는 100%의 '칭하오(靑蒿·개똥쑥) 추출물'을 발견해내기까지 190개의 약초 표본을 실험했다. '칭하오'는 191번째 약초였다.
연구팀은 이후에도 계속 '칭하오'를 업그레이드하는 연구를 진행하며 마침내 오늘날 매년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기적의 신약을 만들어냈다.
중국내 일각에서는 투 교수의 연구 성과가 온전히 개인의 것이냐를 두고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논란은 투 교수가 2011년 9월에 '노벨상의 전 단계'로 유명한 미국의 '래스커상'을 수상했을 때부터 불거졌던 일이다.
그의 주요 연구성과는 국가 단위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것이고 그 과정에 참여했던 수많은 연구자들의 피와 땀이 응축된 것이기 때문에 투 교수 혼자서 보답을 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한치더(韓啓德) 중국과학협회 주석은 과거 공개장소에서 아르테미시닌에 대한 연구성과는 중국 내에서 일찍부터 공인돼왔지만 주요 공로자를 특정하기 어려워 수상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논란에 대해 투 교수는 래스커상을 받은 직후 "이 영예는 나 개인에게 속할 뿐 아니라 중국과학계 전체에 속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그는 과거에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성과를 인정한 적이 없다"며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고 남방인물주간은 전했다.
그러나 중국의 주요 관영언론들은 투 교수가 아르테미시닌 개발을 주도했고, 창조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의 수상에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jslee@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