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의료가 만났다 …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
그림과 의료가 만났다 …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
‘의사 아닌 의사’ 장동수 대표 … 환자 치료과정, 세포변화 과정 그림으로 표현 … 해외 논문심사까지 영향 미쳐
  • 안명휘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15.05.0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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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직업은 그림 그리는 것을 주 업무로 한다. 그러나 의학과 생물학적 지식이 풍부해야 하고 그 지식을 그림에 충분히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1500여 명이,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10여 명이 이 직업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반인은 물론 의료진에게도 생소한 직업 중 하나다.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다.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들은 의학 논문에 들어가는 삽화를 그리기도 하고 의료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일러스트나 영상에 들어가는 그림들을 만들기도 한다. 환자가 어떻게 치료받는지, 특정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세포는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그리기 위해 수시로 수술방을 드나들고 매일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산다. ‘의사 아닌 의사’인 셈이다.

최근에는 의료분야 세계 유수 저널과 학회지 등재 심사과정에서 ‘좋은 메디컬일러스트’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헬스코리아뉴스는 지난 2002년 이 길을 선택해 10여 년간 활동해 온 MID(Medical Illustration and Design) 장동수 대표를 만났다.

▲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 장동수 MID(Medical Illustration and Design) 대표

- 메디컬일러스트는 무엇을 뜻하는가.

“메디컬일러스트는 의료 관련 책이나 논문에 들어가는 그림을 말한다. 환자를 위한 안내책자나 영상에 들어가는 그림도 넓은 의미의 메디컬일러스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의료진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메디컬일러스트의 핵심은 명확한 개념 전달이다. 몸 속 어느 부분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핵심만 보여주는 것이다. 위성사진과 약도의 차이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메디컬일러스트는 엄청나게 많은 언어를 축약해 인체의 구조를 설계도처럼 보여주는 그림을 말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그림이어야 한다.”

-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는 상당히 생소한 직업이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원래 조각을 전공했다. 조각은 다른 분야보다 형상을 만들거나 대상을 똑같이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게 메디컬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정밀한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도 인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중에 미술해부학 수업을 들으면서 사람의 몸에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됐다.

본격적으로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지난 2002년이다. 당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정인혁 교수님께서 ‘사람해부학’이라는 책을 쓰는데 관련 일러스트 작업을 할 미술 전공자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지원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조교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이 길을 걷게 됐다.

의사가 아닌데 해부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할 수 있는데,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에 의거 교육 및 연구 목적으로 해부학이나 병리학, 법의학 전공 교수나 전임강사가 직접 해부하거나 이들의 지도를 받는 경우 해부를 할 수 있다.”

 

▲수술 장면을 그린 메디컬일러스트레이트(자료제공=MID 장동수 대표)

- 당시 국내에 메디컬일러스트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나. 

“당시에는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이 지금보다 더 생소한 시절이었다. 막상 일을 하기로는 했는데 정인혁 교수님과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림을 그린다’는 것 말고는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림을 그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다행히 5년여 동안 해부학교실에서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던 윤관현 선생님이 큰 틀을 잡아 둔 덕에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해부학 실습실에서 매일 해부하고 실습도 같이 해 가면서 공부했다. 그때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해부를 더 많이 했다.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가 해부를 직접 해 봐야 하는 이유는 신경이 어디로 연결되는지, 혈관이 어디로 지나가는지 정확하게 구조와 위치를 알아야 명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논문에 들어가는 그림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는 사람이 정확하게 모르거나 모호하게 알고 있으면 명확하지 않은 그림이 나온다. 처음에는 객관적 그림보다는 주관적으로 그리게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메디컬일러스트레이션은 명확성과 객관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선입견을 없애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다.”

- 메디컬일러스트를 그리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

“메디컬일러스트는 어디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이냐에 따라 작업 방법이 조금 차이가 있다. 해부학교실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는 경우 먼저 해부를 한다. 해부를 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여러 각도에서 확인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 다음 스케치를 한다. 더 강조해야 할 부분은 따로 스케치를 한 다음 색을 입힌다.

색은 화려한 색보다는 그림의 용도에 맞는 적절한 색을 골라서 입힌다. 경우에 따라 필요한 부분은 특히 강조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기도 한다. 해부학교실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과 달리 논문에 들어가는 그림은 작업방법이 조금은 다르다. 우선 상대방과 상의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차이가 있다.

논문에 들어가는 이미지는 우선 작업을 의뢰한 의사선생님과 충분한 상의를 거친다. 필요에 따라 MRI나 CT사진을 이용하기도 한다.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쳐 가장 쉽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각도에서 그림을 그린다. 논문에 들어가는 그림은 많은 언어를 함축해 설계도처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더 직관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린다.”

 

▲장동수 대표가 그린 신경외과 교과서용 메디컬일러스트

- 최근 네이처 등 유명한 저널의 논문 심사 과정에서 메디컬일러스트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들었다.

“그게 요즘 저널이나 학회지의 추세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의사들이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을 발표하는데, 자신의 연구결과가 조금이라도 더 영향력 있고 유명한 저널이나 학회지에 실리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만큼 이름 있고 영향력 있는 곳에 투고되는 논문의 양도 상당하다. 논문이 어떤 저널이나 학회지에 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내용이다. 그런데 양이 너무 많다보니 제목, 요약문 순으로 살펴보고 그 다음 해당 논문의 삽화나 표 등이 어떻게 정리돼 있는지를 본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이 논문의 내용을 볼 때 논문에 들어가 있는 메디컬일러스트나 관련 표, 차트 등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고 논문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돼 있으면 더 높은 점수를 준다고 한다. 각 저널이나 학회지 심사위원들이 선호하는 논문의 형태나 컬러, 이미지 스타일 등도 있다. 이런 부분들도 꼼꼼하게 살펴 열심히 연구한 결과가 좋은 저널이나 학회지에 실릴 수 있도록 힘을 싣는 역할도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가 해야 할 일이다.”

- 논문을 만들 때 관련 이미지를 함께 작업하면 반응이 매우 좋을 것 같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의 경우 시간에 쫓기는 것이 현실이다. 새벽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진료와 연구 활동에 시달리다보면 논문에 들어가는 세부적인 그림까지 하나하나 신경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5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의 도움을 받은 의료진을 대상으로 ‘의과대학 그래픽지원 서비스 만족도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응답자 101명 중 99%가 서비스의 전문성에 만족한다고 응답했고, 응답자의 98%가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하는 것이 연구에 매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는 단순히 연구진의 의뢰를 받아서 요구하는 대로 그림만 그려주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논문의 내용이 읽는 사람에게 보다 쉽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고민과 많은 논의과정을 거쳐 완성된 논문의 반응은 매우 좋은 편이다.”

- ‘의학동화’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의학동화라는 게 무엇인가.

“병원이라는 공간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그 안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딱딱하고 차가운 의사나 병원이 아닌 정말 인간적이고 가슴 뭉클한 일들도 많다. 의학동화는 의료진이나 환자 등 병원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 봤으면 해서 그리게 됐다. 예컨대 아주대학교 박성용 교수 이야기를 다룬 의학동화는 박 교수가 수술설명을 마치고 내려오던 차에 있던 일을 그린 것이다.

‘수술 잘 해달라고 기도드리려고’ 이름을 물어보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병원도 다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의학동화는 무척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지만 여러 질환이나 검사 등에 대한 정보를 환자나 보호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다루고 있다.”

 

▲아주대학교 흉부외과 박성용 교수의 사례를 그린 의학동화

-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가 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나.

“어떤 일이든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어렵다. 특히 메디컬일러스트처럼 어려운 내용을 다루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딱딱한 분위기에서는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오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원만한 성격과 함께 끈기도 필요하다. 메디컬일러스트는 의사선생님들이 의뢰한 생각을 대신 표현하는 것이다.

예컨대 팔을 그려달라고 하면 사전에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충분히 상의한 다음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오기 까지 수많은 수정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으려면 낙천적이어야 한다. 일단 메디컬일러스트가 된 다음 인정을 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나는 선배들이 엄청나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경험을 전수해 줘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본인이 능력이 있다고 인정을 받아야 의사들과 수평적 관계 형성이 가능하고 수평적 관계가 형성된 다음 다양하고 창의적인 그림이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끈기가 필요하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할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 양성 교육과정이 있나.

“우리나라에는 10여명의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가 활동 중이다. 이들 중에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있고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까지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미대에서 미술해부학이라는 수업을 들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직접 해부도 해 보고 사람의 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생소한 분야이기도 하고 인력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아 전문적인 교육기관도 없는 것 같다.

미국의 경우 존스홉킨스 의대, 조지아 의대,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대, 일리노이 대학교, 토론토 대학교 등에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 양성과정이 있고 캐나다에도 두 군데 정도 있다. 우리나라도 의과대학에 메디컬일러스트레이터를 양성하는 과정을 개설해 필요한 인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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