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잘하면 손해보는 질환? … 의사들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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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정액수가 2770원 … 신약 처방 언감생심 … 급여체계 개선 시급
  • 송연주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14.11.14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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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재발’만은 막아야 한다. 환자 가족들은 자가부담해서라도 신약을 복용하고 싶다고 성토한다.”(유지나 정신분열병 병명개정위원회 위원)

“신약을 처방하면 주어진 수가를 초과해 병원이 손해보는 구조다. 손실액을 의료진의 수당에서 차감하는 병원도 있어, 소신있게 처방하기 어렵다.”(김성완 전남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치료효과가 높은 약물을 처방하고 싶어도 현실과 동떨어진 급여체계 때문에 처방하지 못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현병(정신분열증) 치료 현장이다.

정액수가 6년간 동결 … 신약, 하나만 처방해도 수가 초과

저소득층 조현병 환자에게 적용하는 현행 의료급여 수가구조는 외래환자 한 명당 치료·투약에 2770원의 정액수가를 매기고 있다. 때문에 약값이 비교적 비싼 비정형계 약물 하나만 처방해도 수가를 초과해 저렴한 옛날 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2770원의 정액수가는 6년간 오르지 않고 동결돼 있는 것이다.

조현병 수가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논의가 이뤄진 13일 국회토론회(문정림 의원 주최)에서 전남대 정신의학건강과 김성완 교수는 “1정당 3000원가량인 ‘아빌리파이’를 처방하면 수가를 초과해 병원이 손해를 보게 된다”며 “치료효과가 높은 신약을 쓸수록 손해보는 불합리한 구조”라고 꼬집었다.

저렴한 약물 부작용 발생 높아 복용 중단 → 질병 재발 및 사망

문제는 비교적 저렴한 약들은 부작용 발생률이 높은 옛날 약이라는 것이다.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한 환자들은 자연스럽게 약물을 중단하고, 결국 병이 재발되는 단계에 이른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첫 입원한 환자 2588명 중 퇴원 후 한달 내 약물중단 가능성은 54.3%에 달하고, 약물치료를 받지 않는 환자는 복용 환자에 비해 재발률 및 사망률이 2배 이상 높다.

김성완 교수는 “조현병은 재발률이 높아 약물 유지가 중요하다. 약물중단은 재발을 부른다”며 “그런데 처음에 부작용을 경험한 환자들은 약물을 중단하게 되고, 다시 재발해 장기입원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는 “조현병은 조기 치료가 예후를 결정한다. 질병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하면 경과를 현저히 개선시켜 만성화를 예방할 수 있다”며 “하지만 현행 정액수가가 조기치료를 방해한다. 비교적 최근 나온 약들은 효과가 높고 부작용이 적지만, 고가이기 때문에 2770원 수가로는 쓸 수 없다”고 말했다.

▲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이 13일 개최한 국회토론회에서는 조현병 수가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환자들의 고통은 더하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조현병 환자 가족들은 울분을 토했다.

“가족 중 조현병 환자 있으면 가정 붕괴”

조현병 환자 가족모임인 심지회의 한 회원은 “가족 중 조현병 환자가 있으면 가정이 붕괴된다. 환자의 형제들은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다”며 “이런 조현병 환자에게 ‘재발’만은 막아야 한다. 약물 부작용이 심해 복용하지 않다가 재발하면 결국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지나 정신분열병 병명개정위원회 위원은 “옛날 약은 몸이 무겁게 느껴지거나 눈꺼풀이 뒤집히는 등 부작용이 심해 결국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 가족들은 본인들이 부담하겠으니 신약을 달라고 말할 정도다. 의료급여 수급자도 신약을 쓸 수 있도록 수가체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발률 현저히 낮추는 장기지속형 주사제, ‘언감생심’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경구용 치료제 대비 재발률을 현저히 낮춘다. 그러나 경구용 신약보다도 훨씬 비싸 쓸 수 없는 현실이다.

김성완 교수는 “한 달에 한 번만 맞으면 되는 주사제는 재발률이 경구용의 3분의1 수준이라, 결국 전체 의료비를 줄인다”며 “하지만 필요한 환자에게 투약해도 삭감되는 경우가 많다. 30만원짜리 주사제를 처방했다가 29만7000원을 손해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준수 교수는 “주사제는 재발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됐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재발을 많이 한 환자에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학회가 노력해서 기준을 완화했지만 의료급여 환자는 해당 안된다”고 꼬집었다.

‘입원’ 치료에 몰리는 기현상 야기

2770원의 외래 수가는 의료급여 환자의 86%(2010년 기준)가 입원치료에 몰리는 기현상을 만들어 냈다.

보건의료 인력 확보 수준에 따라 차등수가를 적용하는 ‘입원’치료의 수가가 상대적으로 높아 환자들이 입원치료부터 받는 것이다. 입원수가는 G2기준 4만7000원으로 건강보험 수가(6만4681원)의 73% 수준이다. 반면 외래수가(2770원)은 건강보험(2만7704원)의 10%에 불과하다.

김성완 교수는 “의료급여 치료가 전문병원에 집중(88.9%)돼 있는데, 수가체계 때문”이라며 “외래수가가 낮아 입원 중심으로 진료가 이뤄지고, 의료급여의 상당 부분이 입원비로 지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급여 위주의 병원은 존립 위기에 놓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현병은 최하위 계층의 발병률이 높아 의료급여 환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료급여 환자 치료 병원 존립 위기

자신을 A기독병원 이사장이라고 밝힌 B씨는 “의료급여 위주 병원은 존립 위기에 있다”며 “병원을 유지하기 힘들다. 매년 느는 것은 환자가 아니라 은행 이자다. 병원들이 인계점에 도달했는데도 정부는 두 손 놓고 있다. 6년간 수가가 동결된 이유는 이를 논의하는 중앙의료급여심의위원회가 5년간 한 번도 안 열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료진도 소신껏 처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김성완 교수는 “매달 병원으로부터 의료급여 환자의 수가 초과 리스트를 받는다. 어떤 병원은 수가 초과액을 의사 수당에서 차감하기도 한다”며 “월 10만원 이상 손해보는 환자 다수가 내 환자인데, 무엇이 윤리적인 치료인지 고민하게 된다. 적정한 치료를 하고도 병원에 손해를 입히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 TFT에서 수가체계 개선 논의 … 질환 정도에 따른 차등수가 고려

보건복지부는 수가체계 개선 필요성에 공감, 지난 8월부터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TFT를 구성해 개선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다만, 단순한 수가 인상이 아니라 정신건강제도에 대한 원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김혜선 기초의료보장과장은 “단순한 정액수가 인상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며 “의료급여는 건강보험 대비 수가가 낮지만, 1인당 진료비를 기준으로 하면 오히려 건보보다 높거나 비슷하다. 정신건강제도 자체에 대한 원점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장기입원 지양 ▲외래 적정 진료 등의 큰 틀의 개선방향을 그렸다.

김 과장은 “환자의 상태를 고려한 차등수가 체계도 하나의 대안이다. 이와 함께 성과관리 체계를 도입하는 패키지를 검토하고 있다”며 “큰 틀이 나오면 내년 중 토론회를 갖고, 필요시 시범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1차적으로는 큰 틀을 만들고, 중장기적으로 계속 연구하면서 수가체계를 다듬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준수 교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조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한 단계 나아가 발병 전 증상이 있을 때 질환진행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호주의 모델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의료급여 수가는 적어도 건강보험의 절반 수준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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