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필요하지만 …”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필요하지만 …”
의학회·전공의·병원관계자 “정치적 접근, 현실성 부족 경계해야”
  • 이영주 기자
  • admin@hkn24.com
  • 승인 2014.05.13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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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통합수련제도 도입, 수련병원 의료기관인증 의무 등 수련병원의 질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으며, 수련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8개 항목과 수련시간 계측방법을 병원별 수련규칙에 포함하고 복지부 장관에 제출토록 하는 근거가 마련됐다.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8개 항목은 ▲주당 수련시간 80시간 초과 금지 ▲연속 수련시간 36시간 초과 금지(응급상황 시 40시간까지 가능) ▲응급실 수련 시 최대 12시간 근무 후 12시간 휴식(대한응급의학회가 인정하는 경우 24시간 근무 후 24시간 휴식 가능) ▲당직일수는 최대 주 3일 ▲수련 휴식시간은 최소 10시간 ▲휴일은 주당 최소 1일(24시간) ▲연간 14일 휴일 보장 ▲당직수당은 당직일수 고려 지급 등이다.

수련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표현했듯이, 이 규정이 의학 교육과 병원에 미치는 영향력은 굉장히 크다. 특히 값싼 고급 노동자인 전공의가 없으면 병원 운영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 3월 10일 의료계 집단휴진 사태 때 전공의들의 동참은 다른 직능보다 눈길을 끌었다. 

문제는 지금의 제도 개선이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에서 ‘전공의’ 관련 정책에 신경 쓰는 이유가 정치적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판이다. 

◆ 빠르게 추진된 제도 … 정치적 영향?

▲ 왕규창 대한의학회 부회장

왕규창 대한의학회 부회장(서울대병원 소아신경외과)은 12일 오후 서울 이화동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임상 제1강의실에서 열린 ‘서울대병원 의료정책 춘계 심포지엄-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따른 대학병원의 과제’에서 “정치적 행보로 보이는데 교육은 그런 대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의학 교육과 병원 시스템 및 재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제도 개선 속도를 늦추고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왕 부회장의 의견이다.

수련환경 제도 개선에 따른 최대 수혜자인 전공의도 정치적 영향을 인정했다.

이학승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장은 “정치적 흐름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보건복지부의 청사진 제시 혹은 이와 관련된 충분한 논의와 홍보가 부재된 상황에서, 최근 전공의의 역할이 대두되면서 (정부 등은 전공의 수련개선을) 일단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전공의는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인력과 재력 등이 투입되지 않으면 실현되지 않을 텐데, 전공의라는 한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만한 준비가 되어있는 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전공의조차 현실성 부족에 공감하고, 제도의 빠른 추진이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 당직수당비만 연 200억 … 풍선효과 우려

병원 입장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은 돈과 직결된다. 8개 수련환경 개선 항목 중 ‘당직수당 지급’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우려되고 있다.

“서울대병원만 보더라도 주 80시간을 초과하는 전공의 근무시간에 대한 당직비를 지출하려면 전공의 1명당 하루 28만원 정도가 책정된다. 이를 병원 전체적으로 연간 환산하면 150~200억에 달하는 재원이 추가 지출될 것으로 보인다.” 박중신 서울대병원 교육연구부장의 분석이다.

박 부장은 “수련환경 개정 기준에는 ‘당직수당은 관련법령에 따라 당직일수를 고려해 지급하라’고 나와 있는데, 복지부 담당 과장에 문의하니 관련법령은 ‘근로기준법’이라고 명쾌히 얘기했다”며 “근로기준법이 되면 여러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은 전공의 업무를 전문간호사나 전임의 등이 대신하게 되면서 의료의 질 저하, 풍선효과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박중신 서울대병원 교육연구부장이 12일 오후 서울 이화동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임상 제1강의실에서 열린 ‘서울대병원 의료정책 춘계 심포지엄-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따른 대학병원의 과제’에서 병원의 수련환경 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공의 대체인력으로는 크게 전문간호사 등 의사보조인력(PA)과 전임의·젊은 교수진으로 나눌 수 있는데, PA는 기존 전공의 업무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고,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많은 서울대병원의 전임의와 교수진들의 과도한 업무는 연구역량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박 부장의 지적이다.

박 부장은 수련의 질 저하 또한 우려했다. 전공의 수련시간 제한에 따라 연속적인 임상경험의 감소(수술기회 감소)는 전공의 실력 저하로 이어지고, 논문 작성에 집중하는 전공의만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등 전공의 평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 무엇을 고려해서 수련환경을 개선해야 하나

현재 병원에서 전공의는 교육을 받는 학생이기보다는 노동자의 역할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전공의의 근로시간 단축은 수련의 질을 향상시켜 피교육자인 전공의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휴식과 개인 시간이 늘어남으로써 환자의 안전과 진료의 질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남은 과제는 제대로 된 수련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왕규창 부회장에 따르면, 지도전문의와 책임지도전문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일차의료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안 되어있어 의료계 합의가 필요하고, 상시 모니터링 정말 잘되고 있는지 관리도 필요하다.

왕 부회장은 “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 문제 있지만 시작됐다”며 “정말 잘되고 있는지 상시 모니터링해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따른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관련해 애매한 부분을 먼저 정리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 부회장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전공의를 데려가면 얻는 게 많다. 지도전문의라고 특별히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는다. 교육하니까 (병원이나 지도전문의에게) 뭘 더 준다는 것이 이상한 논리가 된다”며 “논리가 맞으려면 지도전문의 병원 등이 원래 해야하는 걸 제대로 해야 (보상 등을)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5년 포인트를 잡아서 정부는 재원을 얼마나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책임지도전문의 역할 등에 대해 고민하는 등 수련교육에 대한 단계적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충고다.

▲ 12일 오후 서울 이화동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임상 제1강의실에서 열린 ‘서울대병원 의료정책 춘계 심포지엄-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따른 대학병원의 과제’에서 패널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박중신 부장은 “10년 먼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시작한 미국 사례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여 시행하자”고 의견을 개진했다.

박 부장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미국 제도를 거의 차용했는데, 미국에서 10년하고 최근 재평가를 해보니 초기에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박 부장은 “미국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세 조정 보완해서 환자 안전에 도움이 되면서도 전공의 수련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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