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다국적 제약회사
환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다국적 제약회사
  • 윤가브리엘
  • admin@hkn24.com
  • 승인 2008.04.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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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리아뉴스】요즈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듣는 인사는 “몸이 많이 좋아지셨네요”이다. 한동안 큰 고비를 넘기며 병마와 싸우느라 수척해진 모습을 보았던 이들은 내 변화를 놀라워하며 모두들 반가워한다. 정말 기사회생이란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최근 내 몸은 많이 좋아지고 있다.

8년 동안 에이즈로 투병하면서 늘 바닥이었던 면역력이 가장 높은 수치로 올랐다. 작년 이맘때보다 스무 배가 넘는 면역력을 유지하고 있다. 거대세포바이러스 기회감염과의 1년 9개월 동안의 긴 싸움도 끝냈다. 약의 내성 때문에 면역결핍 상태에서 간신히 버텨오다 거대세포바이러스와 질긴 싸움을 시작하게 된 것은 재작년. 거대세포바이러스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며 장, 신경계, 망막에 치명타를 입히고 온몸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담당의사에게 가망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들으며 내 몸과 마음도 황폐해졌다.

◆ 푸제온을 사용하면서 면역력이 회복되기 시작

가망 없을 것 같았던 건강이 회복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치료제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4년 여 동안 심한 면역결핍 상태에서 내성이 생겨버린 치료제 대신 새로운 에이즈 치료제가 필요했지만 한국에는 치료제가 없었다. 외국에는 새로운 치료제들이 10여 가지 정도 있었지만 국내에 아예 들어오지 않거나 시판 허가가 나도 공급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새로운 약 중에는 ‘푸제온’이라는 주사약이 있다. 기존 치료에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 효과가 좋은 약이다. 푸제온을 생산하는 다국적 제약회사 '로슈'는 2004년 약을 시판하기 위한 허가 신청을 했다. 당시 로슈는 주사약 한 바이엘(주사약의 단위)에 4만 원을 요구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만 5천 원으로 약값을 매겨 보험약으로 등재했다. 로슈는 자신들이 요구하는 가격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약을 공급하지 않았고 오히려 2005년,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보험약가를 올려달라는 인상조정신청만 하고 있다.

◆ 다국적 제약회사의 손아귀에 내 목숨이 달려 있다니

내가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보인 시기가 2004년부터인데 만일 로슈가 이 시기에 푸제온을 공급하였다면 그동안 내가 겪었던 죽을 고비를 안 겪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 푸제온을 쓰면서 면역력이 올라 건강이 회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로슈가 국내에 푸제온을 공급하지 않아 ‘에이즈인권연대 나누리+’ 친구들이 외국에 수소문 해 ‘AID FOR AIDS’ 라는 의료구호단체에 어렵게 도움을 받아 현재 약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내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으로 내몰리며 어렵게 약을 구하게 된 일차 원인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이윤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약을 공급하지도 않고 약값을 올려달라는 요구만 하고 약이 당장 필요한 환자들은 안중에도 없다. 철저하게 이윤만 추구하는 저들의 게걸스런 탐욕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더러운 손아귀에 내 목숨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참담한 심정과 분노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이런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에 환자들 목숨이 휘둘리고 있는데 보건복지부는 다국적 제약회사를 통제할 아무런 수단도 없고 대책도 없다. 고작 한다는 말이 “제약회사들은 평판이 나빠지는 걸 싫어하니 비난 여론이 형성되면 제약회사들이 한 발짝 물러날 수도 있다”는 관전평이다. 그러면,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결국 환자들이 나서라는 얘기인데, 정부는 뒷짐 지고 오히려 환자들에게 기대겠다는 얘기 아닌가. 도대체 어느 나라의 정부고 누구를 위한 보건복지부인지 모르겠다.

이와 유사하게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둘러싼 투쟁이 5년 전에 있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정부는 무능하고 오히려 한미 FTA를 통해 다국적 제약회사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려하고 있으니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 난 벼랑 끝에 내몰렸다

자! 이제 난 벼랑 끝에 내몰렸다! 나를 보호해줄 어떤 안전장치도 없고 다국적 제약회사는 나에게 필요한 약을 무기로 내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서는 일이다! 그러기엔 내가 너무 힘이 없고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은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화병으로 죽을 것만 같다.

나는 내일 로슈 앞으로 간다. 귀가 열려있을 다국적 제약회사가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 간다. 탐욕스런 다국적 제약회사들 때문에 한해에 에이즈 환자 210만 명이 죽어나간다. 하루에 5,753명이 죽고 이것은 1분에 4명이 죽어간다는 말이다. 이런 대량학살을 벌이며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시체를 깔고 앉아 돈만 세고 있다. 더 기가 막히고 놀라운 건 이런 일이 엄연한 합법이란 것이다! 무고한 사람들이 에이즈로 죽는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로슈 앞에서 내가 외칠 구호는 나만의 목소리가 아닐 것이다.

◆ 다시 살아봐야겠다, 단지 그것

승산 없는 싸움이라도 싸움을 하려면 으쌰! 기운을 내야 하는데 지금 나는 너무 피곤하다. 그동안 거대세포바이러스와 싸우면서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고 남아있는 왼쪽 눈도 지난여름에 망막이 떨어져 실리콘으로 고정해놓은 상태라 눈이 잘 안 보인다. 지금도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두 개 쓰고 글을 쓰려니 머리도 아프고 너무 피곤하다.

하지만 죽을 만큼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봄의 소중함을 느낀다. 아침나절에 서늘했던 기온이 어느새 따스한 햇살과 함께 온화해지고 미풍도 불어온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긴 터널 같은 시간들 속에서 때로는 지치고 주저앉고 싶은 때도 많았지만 친구들, 후원인들의 따뜻한 도움과 격려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견디고 이겨내서 다시 봄이다.

면역력이 많이 올라 거대세포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주사약을 끊던 날, 나는 친구들과 축하 파티를 열어 함께 기뻐했다. 갈 길이 너무 멀지만 다시 한 발짝 내딛으려고 한다. 다시 살아봐야겠다, 이 말은 내게, 다국적 제약회사와 싸워야겠다는 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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