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 무덤에 침을 뱉는 의학연구
망자 무덤에 침을 뱉는 의학연구
  • 주장환 논설위원
  • 승인 2012.04.20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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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헬라세포에 관한 세간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경 MBC TV ‘서프라이즈'란 프로그램에서 이 세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 후,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더니 최근 한 출판사에서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이란 책을 펴낸 후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커지고 있다.

도대체 헬라세포는 무엇인가? 현존하는 인체에서 유래한 조직배양주 중 가장 오래 전에 분리한 것으로, 세계 각지의 연구실에서 배양·유지되며 바이러스학, 암연구, 분자생물학 등의 연구재료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세포다.

이 헬라세포의 사연은 어찌보면 기구하지만 인류 의학 발전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는 면에서 본다면 매우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사연은 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 8월1일 미국 버지니아주 로어노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헨리에타 랙스는 먹고 살기 위해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헨리에타가 4살 때 그녀의 어머니는 10번째 아기를 낳다가 사망했고, 할아버지 집에 맡겨진 그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함께 자란 사촌과 자연스럽게 몸을 섞은 헨리에타는 5명의 아기를 낳았으며 1951년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그해 10월 그녀는 31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시신은 고향의 가족 묘지에 묻혔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식들은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놀라운 전화를 한 통 받는다.

사연은 이렇다. 그녀가 사망하기 전에 한 의사가 암조직 일부를 떼어내 배양용기로 옮겼다. 당시 과학자들은 배양을 통해 인간 세포를 살리려고 수십년째 시도했지만, 세포들은 매번 얼마 못가 죽고 말았다.

그러나 헨리에타의 암세포는 24시간마다 두 배로 증가했으며 시간이 지나도 결코 증식을 멈추지 않았다.

이 세포는 실험실에서 배양된 첫 불멸의 인간세포로, 그녀의 성과 이름에서 두 글자씩 따서 '헬라(Hela)'라고 명명됐다.

헬라세포는 헨리에타 사후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무한증식하고 있다. 지금까지 배양된 헬라세포를 무게로 따지면 5000만t 이상, 한 줄로 세우면 10만7000㎞가 넘는다고 한다.

이 불멸의 세포는 소아마비 백신, 항암치료제, 에이즈 치료제, 유전자 복제, 시험관 아기, 인간 유전자 지도 구축 등 의학혁명과 인간 수명연장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처럼 커다란 공헌을 한 이면에는 의료계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망자나 가족들의 사전 동의없이 몸의 일부가 채취돼 함부로 쓰여짐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헨리에타의 가족은 그녀가 사망한 지 22년이 지나도록 어머니의 세포가 어디로 돌아다니며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다. 

물론 가족은 아무런 혜택이나 대가도 받지 못했으며 가난으로 인해 식구들은 병원에도 마음 놓고 갈 수가 없는 처지에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속담에 잘 들어맞는 경우로 지독한 아이러니로 짜여진 세기의 도박판에 망자는 물론 가족들이 놓여진 셈이다.

과거 전세계적으로 흑인이나 일부 유색인종, 특정인종, 가난한 자 등을 대상으로 한 악명높은 의학 연구사례가 많았으나 인권이니 존엄이니 하는 말은 사치스러웠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저자 레베카 스클루트의 말을 빌리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차별적으로 가하는 의학연구의 횡포는 여전한 것 같다,

레베카는 "사전동의 없이 우리 몸의 일부가 채취되고 보관·연구되는 현실은 헨리에타의 시대나 오늘날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일갈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 논설위원/소설가/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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