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속 소수장애인 뇌전증 환자로 살아가기
장애인 속 소수장애인 뇌전증 환자로 살아가기
  • 신현숙 뇌전증지원센터 소장
  • admin@hkn24.com
  • 승인 2012.03.19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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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와 시저대왕, 수학자 피타고라스, 철학자 파스칼, 문호 도스또예프스키, 화가 고흐, 과학자 노벨과 뉴턴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이들은 모두 뇌전증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진 위인들입니다.

뇌전증은 그들의 생활에 불편을 주었지만, 도리어 이를 극복하고 인류에 위업을 남겨 오늘날까지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병에 대한 오해가 심하여 정신병, 불치병, 유전병, 지랄병, 귀신들린 병으로 인식합니다. 타인 앞에서 보인 한 번의 증상만으로도 학교나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퇴출되며, 배우자에게 이혼을 당하는 등 차별 사례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제 2의 노벨,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이들이 많지만 자신의 병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숨을 죽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뇌전증협회와 뇌전증학회 등 관련 단체에서 이미 낙인이 담겨진 ‘간질’이라는 병명 대신 새로운 이해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공식적인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서 결정한 새 병명이 ‘뇌전증’(腦電症)(영문: Cerebro Electrical Disorder)입니다.

병의 기전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의학적 이름으로, 우리와 동일한 사회인식 개선 과제를 가진 일본, 대만, 중국 등 간질학계에서도 관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뇌전증의 이해

뇌전증은 대뇌 신경세포의 기능적, 구조적 이상으로 인하여 과도한 전기방출을 일으켜 평소와 다른 이상한 느낌, 행동, 의식의 장애나 소실, 신체의 일부나 전체가 떨거나 뻣뻣해 지는 등 반복적인 경련을 유발하게 하는 뇌의 만성적인 이상 상태입니다. 다양한 유발 원인에 의해서 나타나는 뇌전증은 대뇌의 변화가 일어나는 부위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보입니다.

예측할 수 없이 나타나는 갑작스러운 증상 때문에 위험을 유발하는 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상당수에게 전조증상이 있어서 증상 발현 전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최근 뇌전증 치료는 진단기술과 치료법의 개발, 다양한 치료약 개발로 인하여, 과거 경련발작을 조절한다는 개념의 치료법에서 증상을 완전히 없도록 하는 완치의 개념으로까지 진전 되었습니다. 발병 조기에 정확한 진단과 함께 적극적인 치료를 한다면 70% 이상 완치가 가능하여, 현재의 의술과 치료약으로도 증상을 막을 수 없는 난치성 중증 뇌전증 환자는 전체 10%정도로 추정합니다.

뇌전증 환자의 실태 및 사회인식

현대의 의학적 발달과 치료법으로 건강이 호전된 뇌전증 환자들 역시 여전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 문제는 사회인식입니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일시적 증상이므로 대부분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갑작스런 증상의 발현을 걱정하여 필요 이상 과도한 주의와 과잉보호를 받게 되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학교, 직장에서 차별과 퇴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유전병, 귀신들림으로 오해하여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도 어려움을 경험하여 뇌전증이 있음을 주위에 알리기 원하지 않아서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소극적인 치료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2009년 전국 5개 대학병원에 내원하는 성인간질환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뇌전증환자들의 교육수준과 취업률이 일반인의 절반 수준, 실업률은 1.7배, 미혼율은 2.6배로 조사되었습니다. 2008년 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뇌전증환자의 월 평균 개인소득이 66만 4천원(cf, 자폐성 23.2만원, 지적 41.0만원, 간질 66.4만원), 가구소득이 141만 8천원(cf. 정신 112.5만원, 간질 141.8만원)으로 정신장애인 다음으로 매우 열악한 경제생활을 하고 있으며, 장애로 인한 차별 여부 역시 결혼, 취업, 직장생활 중 소득, 동료와의 관계, 승진, 운전면허 취득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다른 장애영역에 비하여 높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응답하여 간질장애인이 비장애인은 물론 타 장애인들에 비하여 매우 어려운 형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뇌전증 상담싸이트인 에필리아(www.epilia.net)에서 한국인 성인 남녀 843명을 대상으로 간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및 태도에 관하여 조사한 결과를 보면, 간질에 대해 들어본 적인 있는 사람은 98.1%, 이들 중 70%는 간질은 치료되는 병으로 알고 있었으나, 응답자 3분의 1이 간질을 정신지체 혹은 정신질환이라고 응답하였고, 간질환자와 사회적 관계 및 친구관계를 할 수 있다고 27%, 자녀가 간질환자를 친구로 삼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응답은 20%, 발작이 잘 조절되어 정상 생활을 하는 간질환자와 결혼하는 것에 동의하는 부모는 2%, 만일 응답자가 고용주라면, 일에 적합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간질환자라도 고용하지 않겠다는 이는 34%, 이 중 50%가 특별한 조건하에서만 고용하겠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에필리아의 조사 외에도 여러 조사에서 우리사회의 뇌전증에 대한 태도 및 인식은 아직도 매우 부정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간질장애인 등록 현황

2003년 7월부터 시작된 간질장애인등록인수는 2010. 12월 현재 9,772명입니다. 유병률 0.7%로 32만 명 정도인 뇌전증 환자 중 3만 명만을 중증난치성 뇌전증 환자로 보더라도 예상보다 매우 적은 인원이 등록되었습니다. 사업 개시 후 7년이 넘었으며 사회적 지원에 대한 욕구가 높은 뇌전증 환자들의 장애등록률이 낮은 이유가 무엇일까?

현재 2급~4급까지 주어지는 간질 장애판정기준은 다른 장애영역에 비하여 매우 엄격하고 제한적이어서 중증, 난치성 뇌전증 증세를 가져야만 장애인등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증상의 경, 중이나, 경련 횟수와 상관없이 뇌전증 중세가 있는 것만으로 이미 뇌전증 환자로 차별과 냉대 속에 사회에서 소외되어 살아갑니다. 사회적 지원이 전무한 경증의 환자들의 삶은 더 열악합니다.

그래서 뇌전증협회와 학회 등 관련 단체에서는 보건복지부에 간질장애 6급을 추가적으로 확대해주기를 요청하였으나 “이유는 납득하지만 정부예산을 이유로 불가하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현실을 재고하지 않고, 판정기준을 완화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실상 장애인등록 하여도 주어지는 지원이나 혜택보다 도리어 뇌전증 병력을 노출시킬 뿐이라고 장애인 등록을 원치 않는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회적 지원이 시급한 경증의 뇌전증 환자들 중에 장애인등록을 원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직업재활 대책

현재 간질장애인 2~4급에 해당하는 뇌전증 환자들은 사실상 직업재활이 어려운 건강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장애인고용공단에서 구직과 취업을 위한 서비스를 받은 간질장애인이 2011년 2/4분기 현재, 구직자는 161명, 취업자는 56명으로 취업률 34.8%로 나타납니다. 다른 장애에 비해 직업재활이 수월한 장애임에도 간질장애인들은 취업의 기회를 얻기 쉽지 않습니다.

뇌전증 증상이 일어나도 큰 위험에 노출되지만 않는다면, 개인의 뇌전증 증세나 특징에 따라 다양한 직종에서 직업재활이 가능하며, 어떠한 장애 영역보다 사회재활과 직업활동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장애가 뇌전증입니다. 직업생활을 꿈꾸는 많은 뇌전증 환자들은 다만 6급 장애인으로라도 포함되어서 직업교육과 고용촉진의 기회를 제공받기를 원합니다. 뇌전증 장애 때문에 눌러놓은 자신의 꿈과 역량을 장애인의 이름으로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동등한 사회참여를 보장하기 위하여 다양한 장애 특성에 맞춰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과 보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뇌전증 환자들은 이동권 및 편의시설 등 장애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발생이 거의 없는 장애입니다. 가장 큰 장애가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사회인식입니다. 타 장애에 비하여 편의시설이나 보장구, 활동보조인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뇌전증에 대한 정확한 정보부족으로 장애인 인력시장에서 조차 뇌전증장애인은 기피의 대상입니다. 뇌전증 환자들은 개인마다 다른 다양한 증상과 장애의 경중에 따라서 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업무배치만 된다면 비장애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업무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뇌전증 장애의 특성상 매사에 조심스럽고 꼼꼼하며, 성실하여 비장애인보다 실수나 산재율이 적은 것으로 외국의 선행연구에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미국 간질재단 자료)

향후 사회적 과제

뇌전증 관련 모든 활동에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지만 노출을 꺼리므로 당사자들의 참여가 매우 소극적이고 제한적이라 소아환자들의 보호자들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뇌전증협회와 뇌전증학회, 등 관련 단체에서는 뇌전증 환자들의 건강회복을 위한 의료적인 노력 외에 권익보호 및 복지증진을 위한 정책개발 및 국내외적인 연대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뇌전증 환자들의 실태 및 복지서비스에 대한 욕구조사, 분석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주력 사업으로 뇌전증에 대한 사회인식 개선을 위한 지식과 정보제공을 위한 교육, 홍보사업 등 필요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모로 역부족입니다. 뇌전증환자들의 형편은 사회낙인이 심한 일본, 대만, 중국 등도 상이하게 열악하지만 일본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국립간질센터를 건립하여 치료 및 재활시설을 운영하며, 뇌전증환자들의 지역사회 활동, 직업재활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간질재단(Epilepsy Foundation)을 통해서 뇌전증환자에 대한 권익옹호운동을 전개하며,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기금조성을 통해 반차별과 권익옹호를 위한 법률 소송을 지원해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활동들이 뇌전증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 제34조 제5항에서 ‘신체장애인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질병과 장애로 인하여 불합리하고 억울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그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사회통합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국가는 그 헌법적 의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헌법에는 뇌전증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민법상, 형법상의 세칙이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은 반면, 도리어 뇌전증에 대한 사회낙인을 고착시키는 잘못된 정책과 법규가 많이 있습니다. 뇌전증을 정신보건법에 포함하여 관리하므로 정신병이라는 편견을 조장하고 있으며, 도로교통법에서 운전면허 결격자를 “정신병자, 정신미약자, 간질병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또는 알코올중독자”로 규정함으로 충분히 운전이 가능한 뇌전증 환자들도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어렵게 일괄적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공무원 임용법, 병역법 등에서 법률적인 개정과 조치가 시급한 조항이 많이 있습니다.

뇌전증은 생각보다 흔한 병이며 누구든지 걸릴 수 있는 병으로 얼마든지 생산적이고 지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장애입니다. 뇌전증을 지닌 이들이 세상 속으로 자신감 있게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국가적 관심과 함께 잘못된 인식을 털어 버리고 따스한 가슴으로 뇌전증 환자들을 받아줄 때, 한국의 도스또예프스키, 고흐, 노벨이 탄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본 콘텐츠는 대한뇌전증학회에서 보내온 기고문 입니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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