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가 자초한 약가인하 소송
복지부가 자초한 약가인하 소송
  • 헬스코리아뉴스
  • 승인 2012.03.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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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인하문제에 대한 시비는 결국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가려지게 됐다. 당사자간의 협상과 설득 대신 매사를 법원으로 가져가는 요즘 세태의 한 단면이라고 치부하려해도 영 개운치 않다.

제약업계가 집단 줄소송 채비에 나선 가운데 일성신약 등 몇몇 제약사가 7일 1차로 정부의 약가인하 고시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낼 예정이다. 정부의 약값 인하 정책을 둘러싸고 복지부와 제약업계가 결국 법정에서 다투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주무당국과 관련업체들이 소송에 계류되면서 일단 이해 당사자는 뒤로 빠지고 용병인 법정대리인들이 선두에 나서 정부정책을 놓고 공방을 주도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게 됐다. 전통적으로 보건행정정책에는 사법부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사법부의 관여는 극히 예외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주무부처·관련업계 첫 법정 대결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정책수립과 집행이 원천적으로 하자를 안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인 것 자체가 불행스런 일이다. 어느 한쪽이 불법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갈등해결을 위해 법원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

제약·의료정책은 국민의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서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정책은 현실과 연결돼야 그 효율성이 보장되는 법이다. 그런데 8.12 약가인하 고시의 경우 정부가 제약업계의 현실과 연차적으로 인하해달라는 건의를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의약품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그 비용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부담한다는 점에서 복지부가 가격책정을 좌지우지하는 ‘슈퍼 갑‘의 입장이다. 더욱이 의약품의 생산, 판매 과정에 정부가 개입해 규제조치를 취하는 게 용인돼온 터다.

따라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누구보다 복지부의 책임이 크다. 현대 행정의 큰 흐름이 예방행정과 규제과잉 극복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규제를 줄이기 위한 시도는커녕 조자룡 헌 칼 쓰듯 규제의 칼날을 휘둘러왔다. 시대적 조류에 역행해온 것이다.

더구나 제약업계는 이미 정부의 ‘8.12약가인하’조치를 수용하고 다만 한꺼번에 약값을 내릴 경우 매출이 20% 정도 줄어든다며 3년간 시차를 두고 단계적으로 인하해줄 것을 건의했지만 이마저 복지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책 수립과 집행은 합리성 띠어야

이때 복지부가 정책집행에 따른 갈등해결방안으로 위협 대신 협상과 타협이라는 선진행정의 예에 따랐으면 이번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복지부는 최근 민간 어린이집 휴원사태와 관련해서는 정부 규제가 과하다고 인정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제약업계의 획일적 약가인하 조치의 연차적 시행요구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권한을 쥔 주무당국 맘대로라면 할 말이 없지만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행정을 펴는 복지부 행정은 정말 종잡기 어렵다. 복지부는 업계의 오랜 관행인 리베이트를 없애고 건보재정 건전성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워 당초 방침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다른 리베이트 관련 사건에서 법원이 판단한 것처럼 목적과 수단을 부당하게 결부시킨 꼴이다. 별개의 사안을 억지로 갖다 붙여 오늘의 사태를 자초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불법 리베이트를 주고받았으면 그건 그것대로 처리하고 건보재정 적자가 우려된다면 별도의 재정확충방안을 마련해 문제를 풀어야 옳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맬 수 없고 콩나물을 뽑을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이 조치로 제약업계의 연 매출이 1조7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다. 제약사별로 14~22% 매출감소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가뜩이나 영세한 규모인 국내 제약산업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컴퓨터 게임업계 1위인 넥슨의 연매출이 1조원을 넘었고 화장품업계 선두인 아모레퍼시픽은 2조원을 돌파했다. 반면 제약업계 1위 동아제약은 1조원을 밑도는 등 대폭적인 약가인하 충격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하다.

행정의 신뢰성-예측가능성 잃어

그래서 법률도 아닌 그 하위의 행정행위인 행정부처 자체 고시에 의한 과도한 재산권 침해가 장관의 재량권을 일탈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한 신규 의약품에 한하지 않고 이미 정부가 약값을 부여한 기등재 의약품에도 새 약가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은 소급입법을 금하는 헌법에 반한다는 위헌소지마저 있다고 본다. 이는 행정의 신뢰성과 예측가능성 측면에서도 아주 잘못된 일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지금까지의 제네릭 중심에서 효능개선, 신약개발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전환기에 서있다. 약가인하로 신약개발같은 장기적 사업에 대한 투자가 어려워지면 제약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으려는 정부구상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기왕 소송이 제기된 이상 양측은 동등한 소송 당사자로서 자신들 주장을 논리적으로 피력해 법원의 판단을 구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기 바란다. 정부는 약가인하소송 결과와는 관계없이 국가경제적 측면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제약산업 육성에 소홀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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