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 재판 자초한 제약행정
'샤일록' 재판 자초한 제약행정
  • 노영조 논설주간
  • admin@hkn24.com
  • 승인 2011.12.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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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가 리베이트를 없앤다면서 지나치게 능률에만 집착한 결과 제약행정에 사법적 통제를 불러들이는 패착을 두고 있는 모양새다. 과도한 행정처분이 오히려 목적달성에 차질만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시대의 변화속도를 행정활동이 따라오지 못한 탓이다.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준 영풍제약, 구주제약 등이 제기한 약가인하처분 취소소송에서 재판부가 잇따라 행정처분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약값에 리베이트가 들어있다고 주장한다면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정교하게 산정해 거품에 해당하는 부분만 인하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약가인하 처분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리베이트라는 거품을 정확히 계산하고 걷어낼 수 있는 메카니즘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행정은 어떤 목적을 실현하려는 한도 내에서 합목적성을 가져야 된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복지부는 지난 7월 철원군보건소 등에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에게 의약품 처방을 대가로 리베이트를 주다 적발된 7개 제약사 131개 의약품에 대해 최고 20%까지 약가를 인하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이 약제급여평가 심의과정에서 수치를 이처럼 정밀하게 비례해서 계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복지부로서는 예상외로 세밀히 따지고 드는 재판부의 자세에 적지아니 당황하는 듯하다. 1심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약가인하 행정처분의 효력 다툼과정에서 벌써 세 번째 제약사측에 밀리는 양상이다.

특히 2차 공판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 상인’의 재판을 연상시켰다. 거품을 정확히 측정하고 그만큼만 걷어내야 한다는 재판부의 말은 샤일록에게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1파운드의 양을 정확히 재서 안토니오의 살을 자르라는 포샤의 판결과 흡사하다.

복지부측은 “리베이트 약가인하는 징벌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약값에 포함돼 있는 리베이트 거품을 걷어내기 위한 작용을 한다”며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 사용이 가능하므로 적합한 처분”이라고 주장했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어서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재판부가 주목하는 점은 정교성과 비례의 원칙인데 이 점에서 복지부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판세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서 벗어나야

복지부가 최대 20% 약가인하를 적용한 데는 약값에 리베이트 거품이 20% 정도 포함돼 있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조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일반화하기에는 정교성과 비례의 원칙에서 어긋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이미 행정처분 직후 제약사들이 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약가인하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은 의외라 할 정도로 선선히 받아들였다. 복지부가 즉시 항고를 했으나 법원에 의해 기각되면서 보험약가인하처분 취소 소송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약사측은 동아제약의 스티렌처럼 인하처분을 받은 의약품의 철원지역 처방액이 미미한데 비해 약가 인하율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한다. 특정지역에서 팔리는 약 매출이 매우 적은데 거기서 미미하게 발생한 리베이트를 근거로 전체 의약품의 약가를 인하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입장이다.

영풍제약은 철원보건소의 자사 약 처방비율은 0.19%에 지나지 않는 등 대표성이 없다고 항변하고있다. 복지부는 리베이트-약가 연동제를 도입하면서 처방액 대비 리베이트 금액 비율로 리베이트 연루 품목의 약가 인하율을 산정하겠다는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법원은 구체적으로 리베이트가 얼마인지를 제시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앞서 1차 공판에서도 재판부는 리베이트를 근절시키겠다며 약가 인하처분을 내린 것은 실질적 관련이 없는 목적과 수단을 부당하게 결부시킨 것이라고 지적해 복지부의 약가인하처분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본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 재판에서 복지부의 앞길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재판부의 지적대로 리베이트 근절이라는 정책 목표는 좋다.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대명제다. 그러나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서 약가를 깎는다'는 목적이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합목적성을 갖추어야 하고 재량권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판부는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다.

사태가 여기까지 왔는데도 복지부가 아직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킨다는 아집을 꺾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제약업계는 여기서 더 나아가 내년 초 8.12약가일괄인하조치에 대해 업계차원에서 소송 대리인을 선임하는 등 대규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복지부가 현재의 리베이트-약가연동제 소송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패소하는 망신을 당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정부행정이 사사건건 불신을 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대한민국 의학전문지 헬스코리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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